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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하며 책 읽으며-32

목사공부

신학과 4, 신대원 3, 담임목회 20년 이상 된 필자는 교회를 여러 번 개척하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도 목사란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행동(살아야)해야 바른 목사, 성서적 목사가 되는 것일까? 고민하고 있다.  

정용섭 저자의 목사공부’(새물결플러스)는 그래서 단비와 같았고 책을 다 읽고 놓았을 때 폭포수와 같은 은혜를 받았다. 물론 목사공부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동의 한다. 그리고 저자의 치열한 바른 목사, 교회사 안에서 보았던 영성 있는 목사, 하나님을 체험한 목사의 내용들을 전해줬다.

목사는 소명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섬기며, 바른 신앙적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자이다. 그런데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정용섭 목사는 세계 최정상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산악인의 자세에 비춰 목사의 삶을 말한다.


산에 오른다고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신령한 모습의 관경에 매료된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의 순간은 돈이나 명예 그 밖의 모든 것을 얻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창조자, 신비의 존재 자체에 매료되어 새로운 영()의 세계에 나아가는 자세이다.

산은 죽기까지 올라야 한다. 그 만큼 위험하다. 과정은 생명을 담보로 한다. 하나님은 단지 취미삼아 목사의 삶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홀로 죽도록 고독하기까지 하여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는 것이다.


높은 산 일수록 내려 올 때 더 위험하다. 그래서 산에 오를 때 보다 내려올 때 폭설, 산사태에 노출되어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산위에 초막을 짓자고 이야기했던 이야기는 긴장이 풀릴 때 목사의 영성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단지 몇 번 하나님을 만나고 이후에 교만에 빠지거나, 거짓 만남을 연출하거나, 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며 혼자 대형화 된 우상으로 존재하며 타락하는 경우를 만드는 이치와 비슷하다.


8000m 이상의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말고도 전 세계에 많다. 그래서 한번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 도전한다. 목사는 영성의 깊은 세계로 자주 나아가고 홀로 고독함에 빠져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주변의 삶에 호흡하면서 이 세상에 돌아감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설교, 목회, 기도, 상담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전하고 하나님나라의 뜻을 일평생 펼쳐야 하는 것이다.

최고도의 산은 오르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올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산이 먼저 등산가를 품어 주어야 한다. 인간의 준비와는 별루 연관이 없다. 하나님이 목사를 받아줘야 한다. 아무리 잘 인간적으로 준비됐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주권(主權)이 우선이다. 하나님이 목사를 품어 줄때만이 목사는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다

 

위에 설명한 목사로서의 과정을 위해 철학적 사고에 익숙하여 세상의 변화에 하나님의 유일성과 교회의 단독성, 거룩성, 보편성을 변증해야 한다. 그 방법은 꾸준한 깊은 독서와 역사변혁의 과거들을 교회사적으로, 인류사적으로 참고하기 위해 부단히 공부(훈련, 체험)의 세계에 나아가야 한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목회는 결국 예배를 타락시키고 사람들을 모으는 데만 관심을 가지며, 교회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 이런 목사들은 홀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와 연관성은 거의 없고, 교회전체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유명세는 타지만, 교회는 외형적으로 성장시켰지만 과연 진정 진짜 목사일까?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수만에 이른다. 그런데 진정 목사공부에 열정을 내는 목회자는 몇 명일까? 기도의 영성은 넘치는 것 같지만 과연 성서본질에는 얼마나 다가가는 것일까? 자가 발전하는 목사가 아니라 꾸준히 스스로의 깊은 영혼을 살피면서 목사공부에 심취해야 한다.


조성배 목사 / 반석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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