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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목사가 많이 나타나길 희망하며…

상식이 통하는 목사┃김요한 지음┃
새물결플러스 ┃312쪽┃13000원

개인적으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종이 인쇄술의 발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듯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야 힘을 발휘한다. 만약 루터의 95개조 논박문이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만 걸리고 전파되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의 시작은 먼 훗날의 이야기거나 아예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정보화시대를 넘어 3차산업시대를 바라보는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목회자들은 교회 대문이 아닌 SNS를 통해 저비용 고효율로 더욱 쉽게 제2의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어 루터보다도 더 좋은 시대를 영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폐해도 많지만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 교인들이 SNS를 이용해 복음을 설파하거나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다.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요한 목사의 ‘상식이 통하는 목사’는 SNS의 위력을 십분 활용했던 자신의 글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목사의 기준과 대안까지 상세히 서술해 낸다. 무조건 질타하는 것이 아닌 왜 목회자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공감하며 목회자의 학문, 영성, 윤리, 교회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책 제목의 ‘상식’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왜 제목을 ‘상식이 통하는 목사’라고 지었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무슨 거창한 글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 목사에 대한 개념 정의를 내려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상식적인 목사의 개념을 논하고 싶었다는 것인데 본문을 살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놀랐고, 목사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서술을 묵상하며 그동안 질타만 했지 왜 그들이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관심이 없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마치는 글에서 저자는 왜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식적이지 못한 목회자들이 나타나는지 지적한다. 칼뱅의 중세 가톨릭의 실패의 근본 원인이 부실한 사제 선발과 관리에 있다는 지적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목회자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는 좋은 목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일침이다. 목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좋은 목사 말이다.


혹자는 “일부의 행태를 기독교의 전부라고 오판하지 말라”고 반발할 수 있지만, 그런 일부가 요즘 너무 많이 눈에 띄고 있으며, 교인들이 목회자 말에 무조건 ‘아멘’으로 화답하는 수준을 이미 훌쩍 뛰어넘은 것이 현실이다. 처음부터 좋은 목사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들 모두가 안수 후 곧바로 ‘좋은 목사’란 칭호를 받는 것은 무리이기에 관리와 교육이 중요하다.


저자는 책에서 목회자 스스로의 해결 방안들을 논했지만 짧게는 20~30년이란 세월동안 몸에 배어있는 습성을 쉽게 고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에 각 교단별로 목회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철저한 관리가 뒷받침되길 희망한다.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는 신학생, 그리고 목회 활동에 슬럼프를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이들 읽었으면 좋겠다. 목회자 윤리와 영성 부분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원인을 짚으며 그 대안을 소개한다. 어쩌면 “당신이 뭘 알아”라고 반발할 수 있겠지만 목회를 한 경험한 경험자로, 연간 200여권이 넘는 신학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대표로 바라본 통찰들이 아로새겨졌기에 마냥 무시하고 넘어갈 내용들은 아닌 듯하다.


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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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