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보도를 지켜보면서 (주)세모의 회장 유병언 “목사”를 떠올렸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이면에는 구원파라는 이단사이비종교의 교주가 있다. 이 한 사람의 잘못된 신학과 그릇된 가치관, 사기성 인격과 탐심이 오대양 사건과 한강 유람선 충돌사건에 이어 300명 가까이를 수장하는 참극을 빚어냈음이 드러나고 있다.사람들은 당장 무책임한 선장과 배에 탄 사람들을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제일 먼저 빠져나온 구원파 선원들의 행동에 분노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참극은 한 사람 유병언 회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평소 “하나님의 사업을 의논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며 예배”라고 가르쳤다. “(구원파)교회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 ” “구원은 개인이 받지만 신앙생활은 교회가 한다” “일단 죄사함을 받으면 어떻게 살든 천국에 간다.” “구원파 안에 붙어있는 자만 예수 재림 시에 들림을 받는다”는 전혀 비성경적인 교리로 교인들의 충성심을 유도하여 1만여 구원파 신도들의 차명대출을 통해 5,000억원의 재산을 증식할 수 있었다.생각을 결과를 낳는다. 성경은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사람됨)도 그러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은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바울
5월은 언제나 싱그럽고 푸근하다. 신록과 젊음의 계절이다. 단언컨대 일 년 중 가장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다. 사람이나 자연 모두 마찬가지이다. 희망의 싹과 생명이 힘이 이 대 절정을 이룬다. 때문에 사람들이 5월을 가장 아름다운 달로 여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6일 성년의 날, 등이 줄을 잇는다.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한 것도 계절의 아름다움과 상관없지 않을 것이다. 12월이라고 해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지 말라는 법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5월에 가정의 뜻을 되새긴다. 그것은 아마 자연의 생명력을 통해 성숙과 조화와 상생의 듯을 배우라는 이유에서 인듯하다. 유독 사람만이 소중한 정과 기본적인 도리를 헤아릴 줄 안다. 사람으로서의 참된 가치를 높이고 되새기게 하는 날들은 5월에 몰려있다. 아름다운 계절이 사람들의 심성에 사랑이 넘치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갖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이 잘되고 화평해야 나라가 융성하고 평화롭다. 새삼 따져볼 것도 없다. 자신의 가정을 잘 돌본 다음 큰일을 도모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오늘에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 만고불변의 진리
선진교회/ 박영진 목사기독교 한국침례회 부흥사회에서 주최한 세미나를 통하여 부흥의 불을 붙여 놓은 기회가 되었다. 주제는 “부흥” 우리가 그렇게 바라며 꿈꾸는 부흥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부흥을 믿지 않고 있다. 부흥에 대하여 자꾸 변명을 하려고 한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부흥은 지나갔다. 부흥이 안 된다는 이상한 마귀 같은 소문들이 퍼져있다. 지금껏 ‘왜 부흥하지 못했는가’ 여기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했다. 부흥이 안 되는 원인을 찾으며 변명했다. 결론은 개척은 안 된다. 상가는 안 된다. 작은 교회는 안 된다며, 부흥하지 못함을 환경과 세상의 흐름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너무 약해져 있다. 이제는 기독교가 환경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단들을 무서워하고 있다. 누가복음 13:33절에서 예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다.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기독교는 약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번 세미나의 특징이 있었다. 부흥의 불을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본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앞날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몇 일전 세월호의 침몰 소식에 전 국민이 안타까워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공항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수백 명의 탑승자를 바다에 수장시켜버렸다. 솔직히 300명이 넘게 죽거나 실종됐다.하지만 유가족과 지인들을 고려한 언론과 정부는 실종으로 표기해 두었다. 문제는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와 구원파 논란으로 엉뚱하게 기독교 전체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야 구원파가 기독교와 별개지만, 밖에서는 그 같은 사실 인지가 어렵고, 또 구분의 필요조차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반기독교 정서가 만연한 중에는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교인들의 모습에서 ‘구원파’ 와 유사한 구원관이 나타난다는 비판도 있어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은 정통교단 중에서도 성경적 보수 교단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교단이 침례교단이다. 그런데 유사 사이비들이 근래에 들어 침례교 간판을 걸고 있어 적지 않은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중앙 일간지를 비롯해서, 메인 TV 방송에서도 침례교를 여가 없이 뉴스를 통해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한국침례회, 정통교단이 세월호
고등학생 300여명을 태운 세월호가 바다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이 처음엔 분노를 느꼈다. 혼자 탈출한 선장과 엉망으로 사고 수습을 하는 공무원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다. 이 나라에서 애 키우기가 겁난다는 불안이다. 젊은 부모나 예비 부모는 물론 이미 자식 다 키워놓은 중년까지 불안에 떨고 있다. 주말에 아파트 어귀에 모인 주부들은 “이런 나라에서 외동은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부는 “며느리한테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한다. 하나는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다른 주부들도 모두 맞장구를 쳤다. 자식 한두 명 잃는 것이 예삿일로 여겨진 못 살던 시절에나 오갔을 대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이런 불안감은 진도 사태 이전부터 누적되어 왔다. 아이들이 어이없이 죽어간 사건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7월 해병대 캠프에 간 고등학생 5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고, 올 2월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대학생 9명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사망했다. 모두 우리나라에 사는 아이라면 일상적으로 거쳐 가는 행사에서 당한 일이라 남의 일처
살면서 낯설고 회한이 밀려올 때가 변화되지 않는 내면과 마주 할 때이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숙성된 향기보다 초보를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볼 때이다. 경주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하고 그것을 기뻐해야 하는데 그 반대일 때 더욱 그렇다. 쉽고 편한 가벼운 길을 좋아하며, 안일하게 살고 싶은 어린 모습은 당황스럽게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며 대우받고 인정받는 것에 예민하다가, 살며시 관심 있는 모습을 볼 때 놀란다. 심는 대로 거두는 하늘의 추수법칙을 믿으면서, 속성이나 꼼수로 해결하고 싶은 게으른 착각도 여전하다. 힘들고 어려운 짐을 벗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면서도 사명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말을 걸어온다. 신앙생활의 나이테가 쌓여갈수록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로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는 고백이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편리하도록 줄이고 바꾸어 쉽게 걷기보다, 정해진 것을 메고 정해진 거리만큼 가는 것이 몸에 익숙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쉽다.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왔으면 적응되고 익숙해져서 세상이 오히려 낯설어야 하는데 말이다.사명의 무게만큼 지고가야 하는 것이 십자가이고, 그 거리만큼 걸어가야 하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개인감정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찬양한다. 부활이 기독교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활절이란 단어의 기원을 알고 있는가? 부활절은 영어로 ‘Easter’이다. 이스터라는 용어 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성경적인 명칭이 아니다. 이스터(Easter)는 바로 아스타르테(Astarte)이다. 이스터나 아스타르테는 하늘 여왕의 이름(렘 7:17~18)이다. 이 이름들은 여신 아스다롯(Ishtar)의 다른 이름이다.(『두 개의 바빌론』, Alexander Hislop ) 영어 사전에 보면, 이스터는 ‘빛과 봄의 여신’ (goddess of light and spring)이라고 되어 있다. 부활절이란 단어는 앵글로색슨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교(異敎)의 새벽 여신으로부터 유래한 용어이다(카톨릭 백과사전, 1987년 판). 그러므로 이스터라는 단어는 기독교가 아니라 그 기원을 이교(Cult)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성경은 부활을 이스터(Easter)라 하지 않고, ‘the Resurrection’ 이라고 한다.(벧전 3:21) 하여 로마 카톨릭이 지키는 부활절 날짜와 성경적인 교회가 지키는 부활일 날짜는 당연히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
서방교회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부활절 전까지 6주간 반 계속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한 것을 본 받아 일요일을 제외한 40일을 금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 8주 전부터 시작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금식 일에서 제외한다. 부활절 축제 전에 준비와 금식에 기간을 지킨 것은 사도시대부터였다. 이 기간은 침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시기였고, 죄인들에게는 참회의 기간이었다. 초기의 수세기 동안 금식규율은 엄격했으며, 동방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서방에서는 이 규율이 점차 완화되어 엄격한 금식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면제되어 재의 수요일와 성 금요일만이 사순절 금식일로 지켜졌으나, 참회예절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영국성공회는 사순절을 금식으로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침례교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에서는 사순절을 다양한 예배와 전례로 지켜지고 있다. 3월 5일 수요일부터 사순절 기간이 시작된다. 기독교인들에게 사순절은 특별한 의미와 유래가 있다. 2014년 사순절은 좀 특별한 절기가 됐으면 한다. 그 동안 경심했던 것을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40일간(주일을 포함하면 실제적으로는 46일) 특별히 하나님의 뜻
지난 2월 26일,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박모(60)씨와 그의 두 딸 A(35)씨, B(32)씨가 숨진 채 발견돼 집주인 임모(73)씨가 신고했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봉투에는 현금 70만원과 함께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박씨의 남편이 12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계는 급격히 기울었고 박씨의 두 딸은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 상태로 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병원비 부담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동두천에서는 30대 엄마가 네 살짜리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경기도 광주에서는 40대 가장이 중증 장애를 앓는 열세 살 딸, 네 살배기 아들까지 데리고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했으며, 울산에서는 기초수급자인 지체 장애 어머니가 무직자 아들과 숨진 채 한 달 만에 발견됐다. 이 모두가 일주일 새 벌어진 일들이다. 이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조선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의 청빈한 삶은 예수를 닮은 듯한 모습으로 투영되면서 감동과 칭송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 그런 교황이 금년 8월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교황의 방문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뉴스다. 가톨릭은 반대하지만 교황 프란치스코의 행보 하나 하나가 너무나 큰 파급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이전의 교황과는 다르다. 가톨릭의 교리와 주장들의 이전 모습과는 다른, 탈권위적으로 방탄차가 아닌 무게차를 타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생일에 가장 소외받는 노숙자들을 초청하는 일들은 성경에서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예수님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도시풍과 력셔리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그는 도리어 시골풍으로 검소함과 실용성으로 삶을 이루어 가고 있는 감동 메이커이다.이런 그의 삶은 결국 높이 평가를 받아 ‘올해의 인물’로 지난해 선정된 것에 이어, 지난 3월 20일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 50인 가운데 1위로 선정됐다.(미국 포춘지) 염주교가 추기경이 되는 경사와 함께 한국 천주교는 교황의 방문이라는 또 하나의 축제를 준비하게 됐다. 비난만 할 수 없는 그들이 보여주는 삶들은 오늘 기독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