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한복음에서 ‘인자’(사람의 아들) 칭호가 나오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요한의 신학적 교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는 인자 칭호가 첫 번째로 사용된 구절(1:51)을 중심으로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연결자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연결자 혹은 계시자를 가리킨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이번 호에서는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의 대화에 나오는 인자 구절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해 알아본다.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의 대화는 처음에는 ‘너’와 ‘나’의 개인적 대화의 내용(3:1~10)으로 시작하여 ‘우리’와 ‘너희’라는 공동체 사이의 대화(3:11~15)로 진행한다. 이 단락에서 ‘인자’ 구절들은 공동체 사이의 대화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제시되며 인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듭나게 만들어주시는 생명의 제공자로 제시된다. 예수님은 사람이 왜 거듭나야 하는지에 관하여 다시 ‘진실로’ 말씀을 통하여 니고데모를 설득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또한 한 환자는 원장에게 자신의 빈한함을 호소했고, 원장은 또 한 번 기가 막힌 처방전을 내립니다. “직원들이 퇴근 한 뒤 뒷문으로 오시오, 내가 문을 열어 두겠소.” 어떤 가난한 여인에게는 아예 탈출을 사주하기도 합니다. 치료비가 없다고 호소하는 여인의 손을 잡고 짤막하게 기도를 드린 뒤, 장기려는 눈을 빛내며 말했던 것입니다. “기회를 봐서 환자복을 갈아입고 탈출하시오.” 장기려는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의사가 된 날부터 지금까지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책임감을 잃어버린 날이 없었다. 나는 이 결심을 잊지 않고 살면 나의 생애는 성공한 것이고, 이 생각을 잊고 살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기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기독교에 침투한 맘몬신을 일생 내내 혐오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예배당이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지 아니하고, 사람의 예술품으로 맘몬의 재주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성전에서 비둘기파는 자들을 징치한 예수님처럼, 그는 이 말로 우리들 마음속에 활개치는 탐욕의 멱살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배부른 제사장들, 종교 귀족들, 개 교회에서 로마황제처럼 군림하는
“자포자기”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자기가 할일은 포기하고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기분 내는 것” 그것이 자포자기입니다. 인도의 민담입니다. 고매한 스승 밑에서 수행을 하던 제자가 스승에게 달려왔습니다. “스승님, 드디어 제가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애 많이 썼구나. 그런데 이 강을 건너는 배 삯이 얼마더냐?” “20루피입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너는 20년 동안 그 고생을 하고 20루피를 번 것이니라.”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거의 경지에 오른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일은 새들에게나 맡겨 두세나….”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걸어서 강을 건너고, 새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그는 초능력자일까요? 아니면 질서 파괴자일까요? 아니 그보다 인생을 허비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영광 받으실 때는, 강을 걸어서 건너고, 하늘을 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그 일을 이루며 살았을 때입니다. 아무리 신발이 예뻐도 발에 맞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동방의 나라 조선에서 평생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장기려 박사입니다. 장기려 자신은 부인했지만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모델이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던 의사였습니다. 일제치하 1928년 17세에 경성의전(서울의대) 입학시험을 보면서 “하나님 이 학교에 입학시켜 주시면 평생 불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몸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했고, 1932년도에 수석으로 졸업한 뒤 그 당시 가장 뛰어난 수술 실적을 소유한 백인제 박사 밑에서 조교로 있으면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장기려는 스승으로부터 경성의전 교수 또는 도립병원장으로 가라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제안받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평양의 후미진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치료비가 없어 평생의사 얼굴 한 번 못보고 죽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셨고 병든 자들을 기도로 고치셨는데 그는 의술로써 그리고 더 크게 인술(仁術)로써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을 심었습니다, 해방 이후 김일성의 외삼촌 강양욱이 조선기독교 연맹을 조직하고 그에 반대하는 목사들이 탄압 받던 시절, 김일성 대학에 재직하던 그 역시 북한 보위
“사전오기의 신화, 홍수환 선수가 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링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련의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저는 인생이 링보다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링에서는 두들겨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되면 말려 주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에서는 맞고 떨어지면 아예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최윤규 저(著) ‘물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책이 있는 마을, 13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싸움의 3대 요소’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펀치력, 맷집, 그리고 말리는 사람입니다. 머리카락도 가른다는 취모검(吹毛劍), 마이클 타이슨 같은 펀치력이 있어야 싸움에서 이깁니다. 그런데 맷집이 없으면 허사입니다. 실력이 좋아 열 대를 때린다 해도 한 대는 맞게 됩니다. 한 대 맞고 넘어지면 열 대 때린 것도 소용없습니다. 바다에 파도가 항상 있듯이, 인생에는 바람이 항상 붑니다. 따라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잡초가 강한 것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들되 뿌리를 깊게 하기 때문입니다. 맷집입니다. 거인이나 대가들의 특징 중 하나는 좋은 의미의 둔감력(鈍感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눈, 그 독한 입들을 견뎌내는 둔감력이 있어
어느 한 교인이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개새끼”라로 했다며 이집 저집에 다니며 성토를 했다. 듣는 사람마다 “목사님이 욕을 해서는 안 되지! 하나님 말씀만 전해야지!”라고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사건의 전후 실체는 이랬다.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한 예화의 서두에 “옆집 개가 새끼를 일곱 마리를 낳았는데 개새끼들이 너무나 귀엽고 예쁘다”는 말을 했다. 이해력이 부족해서 온 사소한 말로 시작되었지만 한 목회자를 욕쟁이 목사로 만들었다. 잘못 듣고 잘못 말을 전하는 작은 실수로 인해 교회 안에서도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실수! 그러나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그의 책 ‘정신분석학 입문’에서 “성적 리비도”나 “꿈”에 대한 주제보다도 먼저 맨 첫 장에서 ‘인지왜곡’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즉 비정상적인 사람은 잘못 듣고, 잘못 말한다는 것이다. 잘못 들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왜곡된 말을 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인지왜곡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가위질해 버리고, 듣고 싶은 말만 잘라 모으는 고도의 편집기술을 통해 ‘거짓을 진리로, 진실을 거짓으로’ 둔갑시켜 듣는 이들의 마음을 현혹시킨다
Ⅴ. 중생 교리의 실제적 적용 남침례교 조직신학자들이 중생 교리를 전개하면서 주로 사용한 성구는 요한복음 3장 3~8절과 디도서 3장 5~8절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3~8절은 중생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 말씀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3~8절과 디도서 3장 5~8절 말씀은 침례중생설로 왜곡되거나 중생자 교회회원권을 지지하는 말씀으로 활용됐다. 1. 중생과 하나님의 나라(요 3:3~8) 대그와 보이스 그리고 무디는 요한복음 3장 3~8절에 나타나 있는 중생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해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멀린스는 중생과 하나님의 나라 관계를 아주 간략하게 묘사했고, 카너는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멀린스는 요한복음 3장을 중생에 관한 고전적인 말씀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그는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3장 3~5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가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공관복음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건을 다루지만, 요한복음은 그 사건을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더 강조한다는 것이었다(요 5:24~29; 11:25~26). 멀린스는 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중생과 관련시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에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그러나 한 사람보다는 옆에 누군가를 붙여서 함께 일하신다. 몇 사람을 살펴보면, 모세에게는 아론을, 다니엘에게는 세 친구들을, 베드로에게는 요한과 야고보가, 그리고 바울에게는 실라, 바나바 외에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하여 더 아름답고 큰 일을 이뤘음을 볼 수 있다. 목회를 하면서도 좋은 멘토와 친구를 만나고, 좋은 교우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사역을 하며 함께 하나님을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동역자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옆 가까이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동역자도 어느 땐 한 몸처럼 가깝다가도 조그만한 일로도 원수가 되기도 한다. 또 여러 가지 일로 떨어져야만 하는 일들이 생겨 함께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목회를 하며 부족한 것이 투성이인 모습으로 사역을 혼자는 다 할 수 없음에, “동역자를 붙여 주세요.” 간절히 기도했다. 어느 날 마음속에 소리가 들렸다. “네 옆에 있지 않느냐?” 눈을 들어 몇 몇의 얼굴과 이름들을 떠올렸다. 딱히 확신이 안 생겼다. 지나고 나면 그래도 돕는 자라고 생각했던
부산 보수동 어느 헌책방에는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글귀가 벽에 붙어있다. 주인에게 어떤 책이 더욱 그렇느냐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성경이라고 대답을 해줬다. 전에 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경의 위대함을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전광 목사라는 이가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를 두고 ‘성경이 만든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 존 워너메이커는 일생동안 성경을 사랑했으며, 체신부 장관이 되어 인터뷰할 때에 “장관은 부업이고, 주일학교 교사가 본업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어린이 사역에 헌신하고 봉사했었고, 크리스천 기업가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YMCA건물을 지어주는 일을 했었는데 그를 가리켜 성경이 만든 사람이라고 전했다. 나를 예수님과 교회로 인도해준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대학 시절에 연설문에 잠시 관심을 가진 때가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문을 모은 책을 발견하고 관심 있게 읽게 됐다. 그의 ‘사랑’이란 제목의 연설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전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요1:3) 그분을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들이
카너도 멀린스와 같이 “하나님 편과 인간 편”의 전개 구조로 그의 중생관을 전개했다. 그에 의하면, 중생을 체험한 사람은 자신이 중생의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오직 중생은 인간이 하나님께 복종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아울러 카너는 중생을 가져오는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반응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이 제공한 구원의 선물을 인간이 믿음을 통해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고, 인간은 그 구원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카너는 중생의 과정에서 인간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카너는 멀린스와 같은 중생관 전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인간 편의 능동성을 그보다 더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디는 에베소서 2장 8절에 근거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구조를 세운 후, 여기에 요한복음 1장 16절과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연결시켰다. 즉 요한복음 1장 16절의 “은혜 위에 은혜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측면을 보여준 것이고,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씀은 인간의 측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무디는 요한이 구원을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