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요한복음을 토대로 요한의 기독론적 교훈에서 로고스 기독론에 관한 신학적 해설을 시작했다. 지난 호에서는 요한이 헬라인에게도 익숙하고 헬라계 유대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인 ‘로고스’(말씀)를 사용해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적 존재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과 요한복음서 시작의 첫 소절(요 1:1a)부터 그 로고스의 존재론적 영원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했다. 요한은 만유의 기원과 관련해 헬라인들의 오래된 질문에 대해 그 자신의 대답을 명료하고도 분명하게 제시했다. 요한에 따르면, 그 로고스는 태초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로고스의 창조 활동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의 근본적인 존재성에 관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라고 표현한 것과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다”(골 1:17)라는 것과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 창조되었다”(골 1:16)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 로고스의 영원한 존재성과 창조주 되심에 관한 요한의 교훈(요 1:1~3)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교훈이다. 요한은 그 로고스의 영원한 존재성에 이
새해가 되고 2월이 되면 한국은 졸업식으로 자녀들이 있는 가정들은 희비가 넘쳐난다. 미국에서의 5월은 졸업의 계절이다. 작년 5월에는 막내딸이 대학을 졸업하는 모습을 멀리서 인터넷으로 밤늦은 시간까지 지켜보며, 우리 가족이 두 번의 졸업식을 하던 2013년 5월을 생각했다. 유학생으로 가장이지만 학위를 마치고 졸업하던 해에 첫째 딸도 대학 졸업을 했다.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다. 학업, 생활을 위한 일, 그리고 목회로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날들과 이민목회 속에서 잠시 잃어버렸던 주님과의 시간들을 둘째 딸의 졸업식을 통해 깨닫게 됐다. 한국의 졸업식과 대부분 미국 졸업식 가운데 차이점 중의 하나가 꽃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졸업식을 하는 학교 앞에 꽃 시장이 줄을 잇는 것과 다르게, 미국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된 어느 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한국식으로 생각하여 꽃을 한아름 안고 갔다가 우리만 꽃을 들고 있는 모습에 당황해 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보통 기념일에 꽃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지만 졸업식은 꽃보다 앞의 진로에서 더 실용적인 것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졸업식의 많은 인파 중에서도 자기의 자녀와 가족을
목회자 독서를 위한 실제적 방안 책 읽기는 앎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얻는다. 책 읽기에 대한 지평을 넓혀 가면 갈수록 흥미는 더 많아지고 보람도 쌓여간다. 글자로 기록된 고귀하고 값진 언어들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말하고, 보다 높고 뜻 깊은 사고들을 갖게 한다. 집중하고 도전하다보면 독서는 목회자에게 커다란 혜택을 공급하는 막강한 지혜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적어도 위대한 책에서 얻는 주된 이득은 여기저기 흩어진 진리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함양하는 것이다. 책 읽기는 시간과 함께 활용되는 것이기에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한 권의 책이 내일 당장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의미를 되새기다보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와 성장이 이뤄지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책이든 그 속엔 그 책 다음에 읽어야 할 책이 숨어 있다. 지면에 아예 책 제목이 인용문과 함께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그 책을 찾아내야 할 때도 있다. 어느 경우든, 독서는 또 다른 독서로 유혹한다. 책을 계속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여건을 형성해
본문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강해자로서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설교자 자신의 결단이다. 설교자 자신의 논리가 아니라 성경의 논리에 따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만 본문의 구조를 설교에 반영할 수 있다. 제리바인(Jerry Vines)과 짐세딕(Jim Shaddix)도 설교의 중심생각과 소주제가 설교본문에서 나오며 현대의 청중들에게 적용되는 설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본문의 생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본문을 관찰해야 하는가? 성경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어떠한 논리로 전달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본문에 육하원칙의 기본적인 질문(누가, 어디서, 무엇을, 왜, 언제, 어떻게)이 던져지고 본문에서 답을 구하고 정리하다보면 본문의 구조를 파악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가령 예를 든다면 본문연구시 시간과 장소에 따른 변화를 파악하므로 본문진행의 발자취를 적어봄으로 본문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본문 안에서 주제의 변화를 파악한다. 이때는 주된 단어의 변화를 파악해 본문의 진행을 파악해 알 수 있다. 강해자는 본문 연구시 문장의 흐름도를 그려보고 다시 재구성하므로 본문의 구조를 좀 더 명확
Ⅵ. 결론 지금까지 루터의 신학 사상을 기초로 한 전통주의적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과 새 관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을 비교해 살펴보고 그 장점과 문제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의 갈라디아서 구원론을 제시했다.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성도가 어떠한 구원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의 삶과 열매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고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원론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전통주의적인 구원론과 새 관점주의자들의 구원론이 같은 갈라디아서의 본문을 가지고서도 서로 상이한 구원론을 전개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 갈라디아서를 썼던 사도 바울의 구원론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를 연구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올바른 구원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갈라디아서를 연구하면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자 했던 구원론은 삼위일체적인 하나님의 사역의 관점에서 볼 때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역사적으로 갈라디아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구원론의 기본 토대가 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갈라디아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어떤 신학이 지지되며, 어떤 설교가 선포되고 어
더함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 대한민국 땅에 이렇게 건물이 많고, 교회당 건물 짓느라 지치고 상한 영혼이 저렇게 많은데, 저까지 포함시켜주지 마소서!”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개척은 옥천 시내 개인 주택 집을 수리해 1년간 생활했었고, 지금 함께하는 30여명의 교인들 중 70%는 그때부터 모여든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4년전 이 인포리에 임대하여, 현재까지 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매년 한해의 재정을 다음해로 넘기지 않는다는 더함교회 재정 원칙에 의하여 저희는 매해 남아서 이월될 재정은 100% 구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진 않지만, 지난 4년간 총 재정 수입이 9000만원 정도 됐는데, 지난 4년간 건축빚을 갚아가면서도 구제, 선교비로 총 1800만원 정도가 지출됐습니다. 이 오지 산골마을에 문제투성이로 변변한 직업 하나도 없는 평균나이 69세 교인들이 대부분인 작은 교회가 이제까지 온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라 교인들 모두 기뻐하며 그들이 그 일에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기적에 동참하고 계시는 분들 중 대부분은 교회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리 자식들이 모셔가려고 해도 버티고 있는 할머니들
5) 전기 읽기 전기는 어떤 인물의 생애와 활동을 적은 기록이다. 따라서 한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서라고 보면 된다. 전기는 사람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역사를 읽다보면 상대적으로 그 시대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인물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면 한 인물의 삶을 살펴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 인물의 시대와 그가 연결된 사건들을 생동감 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한 시대의 역사는 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발판이 된다. 각 시대마다 불꽃처럼 살다간 믿음의 거장들은 후대 젊은이들의 심장을 태운 불쏘시개가 되어왔다. 6) 인문서적 읽기 인간의 선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하면 인간의 타락과 범죄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인간의 양면적인 삶을 알아가고 연구하고 배워가는 한 방편으로 인문서적 읽기는 목회자에게 필요한 독서이다. 왜냐하면 인문서적에는 인간의 양면적인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서적을 통해 목회자는 인간이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 심령 속에 잠재되어 있던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언어와 손길과
스티븐 스미스(Steven Smith)는 본문이 이끄는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본문의 3가지 요소가 고려되어 설교형성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요소는 본문의 내용과 본문의 구조와 본문의 역동성본문의 커뮤니케이션 효과)이다. 이러한 세 요소가 균형 있게 설교 형성에 반영돼야 본문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현대에 다시 살려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에 충실한 설교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1. 본문의 내용 본문이 이끄는 설교의 첫 번째 구성요소는 본문에 충실한 내용이다. 매주일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는 일은 영광스럽지만 매우 부담스러운 사역이다. 목회현장에 있는 설교자는 매 주일마다 현장의 필요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공동체에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칼슨(D. A. Carson)은 성경적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설교할 본문에 지배되고 직접적으로 설교가 본문으로부터 형성됨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배 중 말씀이 선포되는 과정 중에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지식이 우선시되기보다 오늘 공동체에게 허락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전달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Ⅵ.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성령론적 측면의 구원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근거로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제시한다.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그 믿음의 주체로서 성령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갈라디아서 3장에서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도 없고, 성령이 주시는 선물로 믿는 자들 안에 ‘믿음’이 주어진다(고전 12:3, 9). 바울은 서신서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내적관계는 이미 전제되어 있고 구원의 역사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의 다른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새 언약을 체결하신 사건으로 인식했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 봤다(행 13:33). 그는 또한 성령을 그들 안에서, 또 그들 가운데 언약이 실현되는 방법으로 본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신칭의’를 성령에 관한 논의를 통해 개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양자가 서로
우리나라의 신교육기관은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대부분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사저(私邸)에서 시작한 조그마한 공부모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학당(學堂)이 되고, 과정과 수학 연한에 따라 전문학교와 대학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일보가 창간 90주년을 기념해서 펴낸, 한국 근대사에 나타난 변화 100경(景)을 수록한 “이고위감(以古爲鑑)”에는 구한말인 1923년에 일어났던 민립대학(民立大學), 즉 사립대학 설립운동에 대한 회고 기록이 있다. 구한말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은 1919년 3월 1일 만세 사건을 경험한 후에 국민의 자각과 민족자존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대학 설립 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923년 3월 29일에 전국 각지에서 462명의 인사들이 종로의 청년회관에 모여서 민립대학 설립을 위한 기성회(期成會) 창립 발기대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1921년에는 월남 이상재, 이승훈, 윤치호, 김성수 등이 대학 설립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서 국내는 물론 만주의 간도와 하와이에도 지부가 설립될 만큼 여론이 조성되었다. 민립대학 설립취지에는, “생존을 유지하며 문화의 창조와 향상을 기도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