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슴이 많이 아프다. 우유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에게 죄송하고…. 하지만 진실은 알려야겠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널리 혜량하시기 바란다. 아직까지도 우유 섭취에 대한 찬반양론이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완벽식품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겠지만, 무수한 가정의 식탁에 오르내리고, 음식점의 단골 식재료로 사용되며, 특히나 성장기 어린이에게 필수 영양식처럼 인식되고 있는 음식이라면 결코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거대 낙농업자들과 우유회사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우유가 몸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한편, 잘 만들어진 우유 광고를 지속적으로 내보내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이경원 박사, 미국 자연의학 의사).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완벽 식품 우유, 과학적 근거가 없다. 다음은 티에리 수카르(Thierry Souccar)의 책, 『우유의 역습 (LAIT, MENSONGES ET PROPAGANDE』을 추천한 몽펠리에 의과대학 암 전문 외과의 교수 앙리 주와유의 글이다. “우리는 우유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락토올리즘(lactohol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라고 예수님은 첫마디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금년은 12월 18일이 주일이라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5년 전 1991년 그해 9인의 사형수 중에 마리린 몬로의 비명사한 36세 나이와 같은 강영리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운전기사와 눈이 맞아 7년 전 남편을 교살(목 졸라 죽임)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모도 교살하려다 미수범으로 발각되자 두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고 1심과 2심에서 사형선고 받아 대법에 항소했으나 기각으로 사형집행이 확정되었다. 다른 죄수들은 그해에 사형집행이 되었으나 강영리는 늦게나마 감옥에서 복음을 받아 철저히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금식기도로 참회하며 다른 죄수들을 사랑하여 베풀고 열심히 전도하여 80여명이 회개하는 모범수가 되는 바람에 5-6년이나 덤으로 옥중에서 연명하게 되었다. 치정과 돈에 빠진 포악한 살인마가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으나 91년 12월 18일 오후 2시 교도관의 호출로 감옥문이 열리자 그녀는 접견인줄 알고 기뻤으나 교도관이 사형집행이라 할 때 잠깐 놀라 당황하다가 곧 침착하게 추스르며 아래와 같이 유언했다. 남은 영치금은 동료 죄수들에게 돌리고, 묘지는 전주 문중산의
내가 이 동네 구두수선공을 알게 된 것은 20여년 전으로 돌아간다. 유명회사의 (브랜드)가 있는 가방 끈을 고쳐달라고 내밀었더니 자기 전공분야기 아니라 하면서 일언지하에 수선거절을 당한 사건으로 인해 그를 알게 되었다. 자기는 구두수선공이지 가방수선공은 아니라서 가방을 잘못 고치면 어쩌나 생각하는 직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까짓 대강 고쳐주고 수수료 받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구두수선에도 전공 버전공이 있다는 철학이었다. 이번에는 등산용 막가방의 손잡이가 떨어졌기에 이것을 큰 바늘로 쿡쿡 박아달라 했더니 아무 말도 없이 튼튼히 박아 주는 것이었다. 마침 신고 갔던 구두도 닦아 주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보통 때 그는 나의 구두를 광내주고도 일체 수수료를 한사코 사양해 왔다. 그러나 오늘은 짐짓 내 마음이 꼭 수수료를 주고 싶어서 지갑을 꺼내자 그는 목사님과 자기 사이엔 돈이 오고가면 안 되는 관계라고 극구 또 거절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지갑을 다시 주어 넣었다. 멍하니 좁은 구두방 박스 안에 앉아 있노라니 어떤 청년이 구두가 발을 조이며 불편하니 구두의 좌우를 좀 넓혀 달라는 주문을 해 왔다. 그러면서 이 청년은 그게 아버지 구두인데 아버지
“몇 주 전에 산 복권표인데 알아봐 주세요”라고 했다. 기계에 넣어 확인해 보더니 5,000원으로 5장 구입한대로 5,000원 본전을 내어주었다. 부산서 개척교회 시절 교회당을 지하와 1층 올리고 2층과 준3층을 증축할 돈이 없어서 ‘에라 로또나 한번 걸리면 되겠지!’하고 부산역에서 만원 복권을 샀으나 허탕 친 일이 40년 전 그때 있었는데 ‘이번에는 본전이 되었으니 그래 다음에는 세 번째로 시도해 볼까?’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요사이 매스컴의 주제가 돈으로 흐르는 세상이다. 지금뿐만 아니라 예부터 세상은 ‘돈, 돈, 돈!’ 그놈의 돈이 무엇이길래! 생각하다가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제일이다’는 세상의 흐름을 보았고, 보고, 또 그런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리라. 세계 선교를 하려면 돈에 부대낄 때가 한두 번이었던가? 지난 10월 19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길거리와 숲 그늘밑에 모일 2만명 전도집회도 주강사로 못간 세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돈 2,000만 원 준비였다. 기름이 있어야 차가 달리는 것을 이제야 절실히 깨닫게 되다니!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전10:19)는 솔로몬의 청지기 정신을 모른 채 남에게와 구령선교에 퍼주고 이제껏
현대의학과 자연의학의 세계는 아주 다르다. 우선 질병의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법도 전혀 판이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의학(대체의학, alternative medicine)의 세계에서는 질병의 원인이 단순한 만큼 그에 대한 치료법도 단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의학의 질병관이 너무나 단순하며 때로는 신비주의적이고 미신적이며 비과학적이라고 현대의학에서는 질타할 수도 있다. 이 비과학적이라는 말에 오늘날 전 세계 자연의학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막스 거슨(Max B. Gerson) 박사는 차라리 자신은 비과학적인 세계에 들어가겠다고 공언한 바가 있다. 막스 거슨이 젊었을 때의 전문분야는 내과와 신경과였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심한 편두통을 앓아 많은 고생을 했는데 그에 대한 치료법을 아는 의사가 없었다. 많은 선배 의사들에게 편두통에 대한 치료법을 물어 보았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그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 고생을 감내하면서 생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편두통에 대한 치료법을 반드시 찾아내리라 결심하고서 틈이 나는 대로 옛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저는 “모태 신앙인”이었습니다.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못 해 신앙인”이라고 말합니다. 30년 넘게 큰 어려움이 없이 평탄하게 살아오면서 믿음 좋으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신앙도 뜨겁지 못하고 영혼에 대한 간절함도 느끼지 못한 채 안일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제가 전도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된 것은 서울로 이사 오기 전에 다녔던 수원교회 조충구 목사님을 만나고부터였습니다. 목사님은 매주일 오후 교인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나가셨는데 그 때 웬만한 신앙인은 모두 나가는 터라 저 또한 그냥 따라 나갔습니다. 그동안 아는 사람에게 교회에 나오라는 말은 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게 되었고, 3주차 나갈 때는 간절히 기도하고 나가서 처음으로 나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불과 10여분 만에 그 사람이 뜨겁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2년 이상 주일 노방전도를 나가며 전도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을 때, 학교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전도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13주 과정인 전도훈련에 참가했습니다. 그 전도훈련은 1주일에 한번 교육받고, 그 방법대로 그 주간에 1명이상에게
마태복음 5, 6, 7장을 통칭 산상수훈이라 칭한다. 이 제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산에서 내리신 교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훈이라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 무거운 짐인 듯해서 통칭하던 수훈이라 하지 않고 장수를 말하게 된 것이다. 평상시에는 필자도 산상수훈으로 부담없이 부르고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5:39~41) 나눠 줘야 한다는 교훈에 이르러서는 선뜻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서강대학교 영문학 교수였던 고 장영희 씨는 그의 에세이 “내 생애 단 한 번”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신부가 옆 좌석에 있는 사람들과 각인이 지금 갖고 있는 것으로 서로 나눠 주기를 해 보라고 해서 겪은 경험이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가방이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서로 나눌 물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봉헌금만 가지고 달랑 맨 몸으로 갔던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주머니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구원은 마치 손의 손등과 손바닥처럼 회개와 믿음의 양면성 가지고 있다. 신구약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회개의 촉구’이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언제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향하여 목이 곧고, 얼굴이 뻔뻔하고, 이마가 굳은 백성이라고 외쳤다. 목이 곧은 것은 교만한 것을 말하는 것이요, 얼굴이 뻔뻔하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요. 이마가 굳다는 것은 회개하는 지혜가 없이 자기의 소견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선지자였던 침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고 외쳤고,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마3:11)라고 선포했다. 예수님은 침례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에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
웬 세상에 별일이 다 있는 것 같다. 열대 사막에서 난로를 팔고 추운 지방에서 냉장고를 팔며 사하라 사막에서 스키기구를 팔아서 돈 버는 기업 세상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상술(商術)이라 하고 마케팅 정신이라 한다. 마켓 3.0시대의 브랜드 관리자는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브랜드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그러고 보면 브랜드 관리자가 지닌 고유한 상품은 없다. 오직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유동하는 제품만 그 때 그 곳에 출현했다가 어느 사이에 또 사라진다. 묻노니 복음도 상품 복음인가? 성도는 복음의 소비자인가? 성도의 욕구와 기호에 따라 복음이 바꿔져야 하는가? 복음도 일종의 브랜드란 이름을 붙여야 잘 팔리는가? 우선 보기에 그런 것 같다. 기독교 방송에서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브랜드 설교 경연대회같이 느껴지는 서글픔이 있다. 설교자는 복음 생산자가 아니라 단순한 선포자이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 선포자다. 병원에서 치료행위도 있지만 반드시 영안실이 있다. 비행기를 타도 탈출구와 탈출방법부터 가르친다. 달리는 버스 벽에도 파괴 망치가 비치되어 있으니 만약의 경우 깨고 탈출하라는 경고문이 있다. 그런데 교회에도 탈
약 400년 전인 1592년에 영국에서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목사님은 위의 표어를 들고 침례교회 목사로서 처음으로 선교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그분은 목사님들의 모임 중에서 “여러 목사님들이여, 마태복음 28장에 있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도전했습니다. 그 때 나이든 칼빈주의 목사님께서 “젊은 목사, 앉으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전도를 하고 싶으시다면, 당신과 내가 없이도 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으면서 세계 지도를 연구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는 여러 나라에 가서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되리라’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소명을 위해서 외국선교회를 조직했으며 그 선교회에 의해서 그는 인도의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를 위해서 선교비를 모았으며 또 그의 선교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캐리 선교사는 인도의 칼캇타에서 선교를 시작한지 7년 만에 성경을 번역하여 반포함으로 그해 3,000명의 결신자를 보았습니다. 덴버(Denver) 병원의 보조의사로 일하던 사람이 럭키 산맥의 기슭에서 혼자 낚시를 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산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전도사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사람 사는 집에 성경의 좋은 말씀을 가르쳐 주려고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로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어찌 저렇게 박정하게 말할 수 있을까?” 교회에 나간 지 얼마 안된 어린 나였지만 믿는 사람으로 너무 야박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은 의문(?), 다음엔 놀람(!), 그리고 결론(.)으로 이단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후 “파수대”라는 책자를 가지고 집집마다 골라 교인 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이단”이니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고 내어 쫓으라고 설교 중에 또 크게 말씀하셨는데 그때가 1951년 8월 3일 처음 교회에 나간지 한 달쯤 지났으니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후였으리라. “이단”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를 이(異) 끝 단(端) 자로 처음은 신앙이 같은데 끝이 다르게 변질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1:10~11) 저동교회에 같이 나가는 동창생 이진호와 김성화 등과 얘기도 나누
현대의학이 오늘날의 정통 치료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불과 20세기 초였으며 그때까지는 모든 나라에서 대체의학(代替醫學, alternative medicine)이라고 불리는 자연 치료법, 즉 자연의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날과 같이 현대의학이 절대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기초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6)가 세균을 발견하여 모든 질병의 원인이 세균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대의학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그러나 파스퇴르의 주장이 아무리 훌륭하고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막강한 세력이나 힘 있는 국가의 지원이 없이는 그러한 논리를 세계 모든 대학과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세계 모든 병원에 그토록 신속하게 파고 들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세균이 모든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주장을 폈던 파스퇴르 자신도 주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게 되자 재고를 하게 되었으며 죽기 전에는 결국 자신의 논리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질병의 원인은 세균의 출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질병의 치료에는 반드시 세균의 박멸이
인공지능(人工知能) 즉 AI(Artificial Intellgence)는 표현 그대로 사람이 만든 지능이다. 지금까지 사전에도 AI라는 단어는 없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기계였기 때문에 사전에 명사가 실릴 시간이 채 없었다. 인공지능이란 기계가 이세돌 바둑기사를 이긴 이후부터 인간은 패배당했다는 자조(自嘲)스러운 한숨도 나왔다. 그런데 사람은 인공지능 기계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인간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SDF서울 디지털 포럼 2016년 기조연설에서 스튜어트 러셀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우리가 만드는 인공 지능 시스템은 능력이 많아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만들어 내고 발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인간이 원치 않는 것일 수 있다.” 러셀 교수는 손에 닿는 모든 게 금으로 바꿔 굶어 죽은 미다스왕의 이야기를 교훈 삶아 인공 지능 기계가 인류에게 긍정적인 도움도 주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정적인 해도 될 수 있다고 했으니 말하자면 새로운 무기, 대량 살상 무기 같은 문제다. 가령 가정용 AI로봇이 배고픈 아이에게 고기를 준다고 하여 산 고양이를 식재료로 선택한 사건이다. 로봇이 인간의 가치와 감정을 100% 이해할 수 없기에
25년 전 미국 샌디에이고 부흥성회를 성료하고 애임스(Ames)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디자인 미술을 공부하는 작은 딸의 후견을 살핀 후 아침 일찍 눈길을 헤치고 나와 데모인(Des Moines) 공항에서 미네아 폴리스까지 온통 미국 북부는 눈 덮인 천지로 아름다운 설경을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서북항공(NW)19번 보잉 747 비행기는 미네아 폴리스를 떠나 지름길인 알래스카를 경유하여 동경을 향해 날아갔다. 화장실 순서를 기다리던 중 비행기 뒤쪽 비상구 창문을 통해 천하장관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캐나다 록키 산맥의 각양각색의 설산 광경을 승객 몇 사람과 교대로 내려다보며 기상천외의 감탄을 연발했다. 우뚝우뚝 솟은 고산의 빙하와 깎아지른 암벽에 새색시의 치마폭처럼 감싼 설산의 모양은 수억 년을 품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담고 있었고, 크고 작은 산맥과 산맥 사이의 깊은 계곡을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하얗게 얼어붙어 장사진을 이루고 주마등처럼 끝없이 나타나고 사라져갔다. 가끔 나타나는 각양 호수는 햇빛에 반사되어 청록옥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 화장실 사이에서 뚱뚱한 할머니가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헛디뎌 그만 미끄러져 쿵하
이웃 종교로부터 빈 수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전한 내용이 없으니 어떻게 한다냐? 밤낮 설파해봐야 뻐한 그 말이 그 말이고 그래서 내용이 따분한 종교의 생리, 그냥 있을 수 없으니 뭔가를 내보여야 하기도 하겠고 그래서 전통문화니 뭐니 이름을 붙여서 행사를 하고 있는데, 약수터 약수 이야기, 천사가 내려와서 마시고 비상천했다는 전설이야기, 풀잎 뜯어 녹차 만드는 묘한 차 만들기, 거기다가 어떻게 차를 마서야 하느냐는 다도(茶道) 강습, 전통주 만들기에 이어 전통 된장과 고추장 만든다고 늘어진 항아리의 행렬들. 찬란한 문화유산이라고 건축 색채 그리기, 고전전인 한국 전통적인 춤 이야기, 불교의 여승의 승무(僧舞)는 유명한 춤이요, 그 묘사는 대단한 시(時)였다. 그 한절을 여기에 소개하면 이런 것이렸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깍은 머리 /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조지훈 나는 어린 시절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자갈로 이어진 소위 신작로(新作路) 길 위에 황소가 끄는 수레를 익히 보면서 살았다. 빈 수레는 유난스럽게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그 위에 빈 드럼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