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석학은 자유는 인간의 자기 이해 곧 ‘자신이 무엇이며 무엇이 되느냐’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니버의 그러한 자유정신을 위한 인간의 사랑은 생활의 법칙이라는 내용을 이끌어 올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부정의 소리에서 중요하고 심오한 결론을 이끌어낸 것 같이 우리는 자연과 이성의 구조에 대한 사랑과의 관계도 숙고할 수 있다. 사랑은 법보다 고차원적 단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행위의 강제력이 없고 성문화되지 아니한 법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우선 법으로 처리하려 한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도덕적 율법인 사랑을 잊어 버리기 쉽다. 사랑은 인간을 위한 법이며 사랑의 법은 인간의 제한된 상태에서의 인간을 위한 무제한의 법이며, 인간은 자신의 종말까지 자기 자신을 형성해 갈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또한 인간의 사상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자신의 빈약 속에서 그것을 견지할 수 없다. 지고의 사랑 아가페(agape)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하나님의 법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인식이 불가피하게 궁지에 빠진 자신을 위해서나 자신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보다 잘 견지된 자신을 위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개판 오분 전”하면 개가 판을 치고 많아서 엉망진창인 듯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는 6.25 전쟁 때 배고프고 굶주린 피난민들에게 밥을 배급하기 위해 준비한 밥이 다 되어 솥뚜껑을 여는 시간을 알리던 고함소리라는 것이다. ‘배식 판(版)을 연다(開)’는 의미인 것이다. 겪지 않은 일이지만 상상은 간다. 굶주림에 배를 움켜주고 있다가 그나마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니 오합지졸 난장판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알려 줄이라도 서라고 고함치며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에서 ‘개판 오분 전’이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유래는 한자의 고칠 개(改)의 의미로, 씨름판에서 쌍방이 서로 옥신각신할 때 그 판을 무효로 하고 다시 한다고 할 때 ‘개판’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또한 난장판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지기 전에 다시 시작하는 ‘개판 오분 전’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람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진도에 사니 ‘폭풍전야’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피부로 실감한다. 폭풍이 오기 전이면 그렇게도 매일 몰아치던 바람이 하나도 없이 잔잔해 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낙엽도
필자는 지난 호에서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본질적인 의미에 관하여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봤다. 20세기가 시작하면서 일부 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묵시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언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의 성취로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심판하시는 주권적 권능의 행동이라는 것과 그 나라의 도래는 매우 임박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의 실현은 아직은 미래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다가 ‘다드’라는 학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의 시제에 관한 연구와 비유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현실의 실재가 되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틀을 미래에서 현재로 옮겨와야 한다고 제시했다. 다드의 연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천국은 “이미 아직 아니”의 틀 곧 “이미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완성과 완결은 아니다”라는 틀에서 이해하는 관점이 이뤄졌다. 이번 호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이해에 있어서 구약 성경의 배경과 중간기 유대교의 배경을 알아보려고 한다. 예수님의 교훈들은 기본적으로 구약 성경의 말씀들과 그것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 위의 말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강조하며 꺼낸 말이다. 국내외 정치 싸움에 어린 것 들이 아사 직전이다. 그것들이 무슨 정치를 알겠나. 그 것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나. 그것들은 어른들의 정치는 모른다. 배가 고파서 아직 빵 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이데올로기의 변화와 차이 설명도 무의미하다. 우선 고픈 배를 채워주는 게 어른들 특히 정치인들의 우선 과제가 아 니냐는 의미가 레이건의 말 속에 들어 있다. 한국의 통일부 장관 김연철 씨가 4 월 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말을 강조했다. 북 한의 주민이 배고파하니 인도적 차 원에서 식량을 지원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냐고 한 것이었다. 레이건이 식량 지원할 때 하역비용을 제공했는데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아서 정치적으로 이용 되지 않았나 우려가 있다는 코멘트도 김 장관이 했다는 것이다. 사실 톤당 12달러를 독재 정부의 주었었다는 등. 내가 지금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과 한국 정보 장관의 그 말을 가지고 와서 말하고자 하는 결 론적인 의미는 딴 곳에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 엘 백성을 위기에서 구하시기 위해 홍해를 가르시고 자연적 위기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조하셨다. 요단강 강물을 3번이나 도하했는데, 첫 번째는 여호수아가 인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두 번째는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 하기 전 겉옷을 취하여 요단강을 갈라서 엘리사와 같이 건넜고, 마지막은 엘리야의 승천에서 떨어진 두루마기를 엘리사도 주워서 엘리아의 하나님을 외치며 치니 요단 강이 육지처럼 갈라져서 건넜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 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7~18).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850인 제사 장들과의 대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재물을 태우고(왕상 18:30~40),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 상 18:42) 일곱번째 기도해 비를 내리게 했다. 또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 내고 니느웨 성에 회개를 선포하여 다 회개한 것 등을 살펴보며 이 시대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한복음 14:17) 신앙생활 하면서 때때로 여러 의문이 많이 발생하곤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있었다면 찬송가 151장을 부를 때였습니다. 1절 가사를 보면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주 보혈 흘렸네”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벌레 같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내가 나를 생각해 봐도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고,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벌레보다는 나은 존재라고 늘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에 성령께서 내 영혼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보여 주셨는데, 나도 모르게 벌레 같은 이 죄인을 넘어 “하나님! 저는 벌레보다 못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평상시에 우리 맨눈으로 공기를 보면 늘 깨끗하게 느껴지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통해서 보게 되면 엄청난 먼지가 공기 중에 있음을 알게 되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알고 난 후로는 예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
매년 11월 15일이면 영국 북서부에 있는 샌턴 브리지라는 시골 마을에서는 ‘세계 최고의 거짓말쟁이 대회’가 열린다. 19세기에 이 마을에서 살았던 윌 릿슨이라는 노인을 기리기 위한 행사인데 그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늘 거짓말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수상자가 되려면 심판들과 청중들 앞에서 어떤 최고의 거짓말을 해야만 됐다. 거짓말도 ‘선의의 거짓말’ ‘악의의 거짓말’ ‘허풍치는 거짓말’ 등으로 다양하다. 누군가 유머스런 거짓말을 모은 것을 읽어봤더니 황당무계했다. ‘동물원에서 개미가 코끼리를 물어 죽이는 것을 봤다’ ‘산불이 났는데 덩치 큰 사내가 오줌을 눠서 껐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여자의 입이다’ 이런 것들이었다. 세계 최고의 거짓말 대회에서 2007년 우승자는 영국 성공회 소속 한 주교였는데 그는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 대회는 세계인들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정치인과 변호사는 참가 불가이다. 이들은 워낙 거짓말에 익숙해 있을뿐더러 프로들로 봐서 아마추어들과 겨루는 것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하루 평균 16번씩 20,000
사랑이라는 말은 어떤 말보다도 아름답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랑에는 “아가페” “필레오” “에로스” 의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아가페는 신이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를 대속 제물로 주기까지 죄인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말한다. 필레오는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인격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에로스는 육체적인 사랑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한다. 남녀 간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 에로스(eros) 육체적인 사랑 섹스일 것이다. 섹스는 부부간의 사랑에 있어서 최고의 사랑표현이지만 대상이 달라질 때는 사랑이 아니라 쾌락의 수단이 되고 죄가 되므로 하나님은 에로스 사랑 즉 섹스를 금지한 대상을 정해줬다. 첫째, 짐승과의 수간이다. 짐승과 변태적인 성행위를 금지하고 남자든 여자든 짐승과 교합하면 사람도 죽이고 그 짐승도 반드시 죽이라고 했다.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침례교 창시자 존 스마이스는 처음부터 청교도 주류 교회론인 장로교주의를 반대하고, 회중교회주의와 영성주의를 강조하는 교회를 추구하였다. 그러던 중 1609년 초, 성공회와 청교도들이 충격을 느낄 일을 결행했는데, 그것은 유아세례를 부인하고 믿음을 고백한 성인에게 침례를 실시한 일이었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의 이유는 스마이스가 가까운 곳에 있던 워터랜더 메노파교회의 침례 행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스마이스는 성인 침례를 이단적인 행습으로 생각했으나, 침례를 연구하면서 신자의 침례가 성서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스마이스와 게인스보로 교인들은 전에 받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신앙고백에 근거한 침례를 받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신자의 침례를 받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스마이스는 신앙고백을 하고 스스로 자신에게 관수 형식으로 침례를 행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관수로 침례를 베풀었다. 드디어 최초의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스마이스는 1609년에 쓴 ‘짐승의 특성’(The Character of the Beast) 이라는 책에서 유아세례는 교회를 성도와 불신자가 혼재된 공동체로 만들어 적그리스도적인 교회가 되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아들은 회심할
설교 방식과 연관하여, 본문의 문학 장르를 고려한 효율적인 전달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언제나 설교자에게 연구 과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문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손상되지 아니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말씀으로 청중의 귀와 가슴에 들리게 하는 것이다. 이는 설교자로 하여금 청중은 어떤 방식으로 전할 때 잘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전달 방식과 연관하여 설교자가 언제나 유념할 것은 어떤 틀에 고정되지 아니하고 유연성 있게 변화를 주면서 전달 방식을 다양화시키는 것이다. 현대 문화의 특성상, 오늘날의 청중은 어떤 특정한 방식과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설교자가 이점을 고려한다면 전달 방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2. 설교 실제 1) 시편 13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자주 국가이다. 국민, 영토, 주권을 갖춘 격(格) 빠진 데가 없고 자주독립국인데 친일친미로 나라의 입지를 지켜야 되는 듯 하는 인상을 지님이 유감이다. 친일친미 다 치우고 친신(親神) 국가면 얼마나 좋을까.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라고 해서 모범국가로 보이 지는 않는다. 거기도 세상 다른 나라들에게나 생기는 온갖 일들이 그대로 생기고 있다. 미국을 우방 국가요, 한미 동맹 국가라 하니 이만 두고 곁에 있고 일본과의 한국 관계는 여전히 들쭉날 쭉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 웬만하면 친일파로 매도한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국을 극진히 사랑하는 뜻에서 한국에 임했다고 하는 비판 없는 전제만은 그만두기로 하자. 일본 땜에 경제와 문화가 이렇게 발전했으니 일본의 공도 잊지 말자는 논리를 펴면 의당 친일파란 소리를 듣는다. 대한민국 사람은 반일 종족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논리 가 소위 친일파에 맞서서 결국 국론통일이 못되고 있다. 제발 일본이 한국을 뜨겁게 사랑하던 나머지 부득이 강점해서 도우려 했다는 말은 그만두자. 그렇다면 강점 해소를 위해서 싸운 애국자들을 무참히 고문하고 투옥하고 죽인 이유는 무엇인 가. 지금 상태에서 과거의 원수라도 현재와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살같이 바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비치고 힘써서 일하세 오늘은 찬송가 450장을 부르다가 잠을 깨어 일어나니 아침 5시였다. 지금까지 50여년 목회하며 새벽기도에 익숙해 일어나는 시간인데 엊저녁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로 기도하다 늦잠을 들게 되었다. 이번 중국의 홍수로 6000만 이재민이 생겨났고 피해 금액은 우리 돈 30조원이란 보도를 접했다. 이뿐인가? 블랙 스완 검은 백조가 왔다. 무슨 징조 인가? 1970년 시골 목회를 하던 중 대만에서 발간된 중국공산당사란 책을 읽고 울었는데 이번 중국이 우한에서 교회당 십자가를 끌어내리며 450여 교회당을 폐쇄, 파괴하고 300명 선교사를 추방하더니 코로나 유행병이 유행함에 울었다. 연변 과기대 창립 10주년 행사에 축사순서를 마치고 백두산과 두만강 도문 등의 관광을 마치며 김진경 총장은 이전에 미국 플로리다 대학 동창생이 강택민 주석의 비서실장이기에 북경에 같이 가서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요청에 ‘목사가 정치가를 만나 뭘해’하는 생각으로 거절한 것이 복음전도를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예수님과 알렉산더 대왕
상담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대화의 기술은 단연 공감이 다. 상대의 아픔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공감을 통해 드러난다. 상담의 90%가 공감만으로 이뤄진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감이 100% 가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걸을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할 때가 온다. 혹은 허용되는 행동과 허용 되지 않는 행동에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법정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편지를 안 써준다고 상담 소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펄펄 뛰다 돌아간 내담자는 다시 상담을 받을 기회를 상실한다. 가족과의 관계가 칭찬 으로만 일관할 수 없다. 물론 칭찬을 충분히 많이 해야 하지만, 문제가 있는 행동을 지적하고 선을 그어야 할 때도 많다. 아이들에게 늘잘한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나친 칭찬과 허용이 아이를 망치기 때문이다. 배우자에게 잔소리를 아예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 간의 관계가 위로하는 것에서만 그칠 수는 없다. 늘 편을 들어주면 상대방과 틀어질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제 좀 그만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언제까지 똑같은 불평을 계속할 것인지, 언제까지 주저앉아 있을 것인지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말이다. 해남 우수영과 진도를 연결하고 있는 진도대교가 놓여 있는 곳인 울돌목에서 1597 년 일본군 300척이 넘는 배후의 배와 울돌 목으로 진입한 133척과 싸워야 했던 조선군 에게 남은 판옥선 12척과 지휘선이 전부였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승리의 함성을 봤던 것이다. 50년간 개척자로 일하셨던 어느 원로 목회자께서, 항상 열악한 조건에서 몸으로 부딪혀 나가야 했던 개척 일군으로서 어려울 적마다 이순신 장군이 최악의 조건에서도 굴하지도 포기하지도 아니하고 긍정적인 사고와 최선의 열정으로 임하였던 모습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진도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진도대교에서 명량 축제가 열린다. 백과사전의 기록으로 울돌목은 해남군 문내면 학동과 진도군 녹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말한다. 이곳의 가장 짧은 거리는 300여 미터이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약 20미터이다. 이러한 지형적 요건으로 인해 이곳에는 급류가 흐르는데 특히 만조 시에는 시속 23킬로미 터의 빠른 물살이 흐른다. 물살은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를 소용돌 이치며 흐르는데 격류가
현대인들 중에는 텃밭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거기다가 농작물을 심고 가꾸 면서 알뜰하고 재미난 생활을 하길 원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북이스라엘 왕 아합도 텃밭에 애착심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왕궁 가까이에 있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했던 이유는 그 곳을 자기 채소밭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왕상21:1~2). 그는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거나 돈으로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나봇이 거절하자 실의에 빠져 침상에 드러누워 식사까지 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처 이세벨이 불의한 방법으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강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왕상 21:15~16). 하나님이 기획하신 에덴동산에는 텃밭이 있었을까? 강이 발원되어 동산을 적시고, 각종 실과나무가 있어서 임의로 따먹을 수 있었던 즐거움의 동산에 그런 밭이 필요했을 까? 창세기 2장 15절엔 “여호와 하나님이 그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전해준다. 아마도 대농(大農)은 아니었을 터이고 텃밭을 경작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상상해 봤다. 하나님께선 수많은 종류의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지으셨지만 그것들에게 땅을 경작 하게 했다는 말씀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에덴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