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비에게 패륜을 행하는 아들, 아비에게 반역하는 아들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문학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비극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4대 비극 햄릿, 오델로, 리어왕, 맥베드 등을 비극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테베왕‘오이디푸스’의 신화는 우리를 많이 슬프게 합니다. 자기의 친부인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어머니 인줄 모르고 자기 왕비로 맞은 ‘오이디푸스’의 신화는 더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 같습니다.최근 우리 극장가에서 흥행한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조선 21대 영조 왕이 그의 둘째 아들 세자 ‘이선’을 뒤주에 넣고 죽인 슬픈 역사입니다. 하지만 어떤 역사나 작품, 신화도 비교 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 왕 때 일어납니다.다윗 왕의 삼남 ‘압살롬’의 반역과 패륜사건은 너무 엄청나서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패륜아이고 반역자인 아들 “압살롬을 끝까지 사랑한 이 사랑에서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사랑을 발견하게됩니다.”사무엘하 15장은 압살롬의 숨길 수 없는 반역의 마음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김승진 침례신학대학교 교수가 최근 저술하 여 출간한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현장들(서울: 나침반출판사, 2015)에서“제9장 아직도 미완성인 종교개혁”의 내용 중 일부를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 하에 게재한 것입니다. 앞으로 몇 차례 나누어서 본지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http://mall.godpeople.com/G=9788931815023을주소창에 놓고 클릭하면 책에 관한 상세한 소개를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던 루터의 개혁사상은 새로 발명된 인쇄술로 인해 유럽의 각 도시 주민들에게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인문주의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던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은 물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지도자들도, 성직계급제도와 관료주의적인 교권체제의 타락한 교회에 대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개혁에 공감하고 있던 일부 크리스천 정치인들은 은밀히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공공연히 개혁적인 사상을 가진 선각자들을 후원하였다.교회사학자들은 이처럼 세속권력가들의 후원을 입은 종교개혁을“관료후원적 종교개혁”(Magisterial Re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16세기 당시의 주류적인 개혁의 흐름을 형
정교분리(政敎分離)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4세기부터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16세기까지 교회와 국가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체제를 유지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 간에 정권 탈취를 위한 암투가 그치지 않았다. 그 중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으로는 신성 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그레고리 7세 교황이 머물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휴양지 카노사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었던, 소위 “카노사의 굴욕”사건(1077년)과 왕과 주교 간의 권력 투쟁을 그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가 그 좋은 예이다.구교는 여전히 제정일치를 견지(堅持)하고 있으나, 프로테스탄트 교회(新敎)의 입장은 종교는 한 정권이나 국가와 흥망성쇠를 함께 할 수 없는 불변하는 영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국교가 된다거나 어떤 정권이나 정당을 지지하고 나서면 언제인가 그 정권이 실권할 때 종교도 함께 쇠퇴하고 말 것이다. 불교를 국교처럼 섬기고 고승(高僧)들을 왕의 사부(師父)로 모시던 고려가 멸망하면서 불교가 당한 어려움과 기독교 신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두루 차지했던 제1공화국이 무너지면서 기독교가 입은 도덕적 피해가 이를 증명해
민주주의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인‘다수결주의’의 단점을 논할 때 으레 등장하는 단어가 중우정치(ochlocracy, Mobocracy)라는 단어다.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고 개념 지을 수 있다.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민중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폭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으로 부족한 다수의 빈민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 ‘빈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플라톤은‘배의 비유’에서 선주, 선원, 키의 조종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선주’를 민주정체의 주인인 민중 ‘선원’은 민중 선동가인 현실정치인 ,‘키의 조종’은 나라의 경영을 의미한다.민중을 상징하는 ‘선주’를 “덩치나 힘에서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지만, 약간 귀가 멀고 눈도 어두운 근시안이라, 항해와 관련한 다른 것들에 대해 아는 수준도 평범하다”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민중선동가를 포함한 현실정치인을 상징하는 ‘선원’은 “점잖은 선주를 최면제나 술 또는 그 밖의 다른 것으로 세뇌함으로써 판단이성을 마비시킨 다음, 배 안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배를 지휘하는”존재들이라고 비판한다.그런데 항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은 선원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해 무관심 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인들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겪는 시련과 환란을 겪는 삶에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그들의 삶의 내용이 다릅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은 신자들을 어떻게 도우시는가? 이 질문 앞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의 자서전적 기록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도우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바울사도께서 로마 감옥에서 기록하신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를 줍니다. 지금 바울 사도는 로마 감옥과 법정을 오고 갑니다. 그의 죄명은“로마를 어지럽히는 폭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첫 번째 투옥생활에서 석방된 후 끊임없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다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 다시는 석방될 수 없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순교의 잔을 마셔야 되는 사실을 예감한 바울 사도께서는
그리고 중보와 동시에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자원봉사 및 교회의 자원들을 사용하도록 격려하고 실행하도록 격려하여야 한다. 더불어 교회는 기존의 경조부(慶弔部)에 더하여 시한부 환자를 돕기 위한 완화돌봄 사역부서를 만듦으로 효과적인 완화돌봄 사역을 할 수 있다.사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경우 임종을 눈 앞에 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그렇게 낯설거나 불편한 사역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평신도 사역자들의 경우, 제대로 완화돌봄에 대해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을 경우, 말기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적절한 훈련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완화돌봄 사역팀은 규칙적으로 환자가 겪는 외로움, 소외감, 두려움, 우울감, 분노,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짐이 됨에 대한 부담 등의 영적 정서적 필요를 효과적으로 돕기위해 기초적인 경청 및 임종과 사별에 관련된 상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이러한 교회의 완화돌봄 사역팀은 말기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원봉사 사역자 중 의료관련 종사자들은 환자의 신체적 필요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다른
축도로 사용하는 고린도후서(13:13) 본문은, 알다시피 바울이 서신을 끝맺으면서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복과 평안을 기원한 말이다.이것은 동사가 사용되지 않은 기원문으로서 직역하면“함께 하시기를”이다. 이 축도본문에서 바울은 아무에게 아무 것도 강권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본문으로 축도하는 목사들 중에는 마지막을‘지어다’하고 명령(지시)조로 끝맺는 이들이 종종 있다.그것은 아마 우리말성경에“있을 지어다”로 쓰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는 바와 같이 성경에는‘있을 지어다’가 본문보다 작은글자로 인쇄 되어있다. 이렇게 작은 글자로 인쇄된 낱말이나 짧은 구절은 원문에 없는 것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인데(창21:33‘아브라함,’요6:62‘ 어떻게 하겠느냐,’고후13:11‘ 말하노니,’갈1:4‘대속하기’등), ?개역한글판?성경을 개정하면서 고치지 않고 보존했기 때문에‘있을 지어다’로 남아 있는 것이다.축도는“, 예수그리스도의은혜와하나님의사랑과성령의교통하심이”[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를 구하는 것이므로 목사는 하나님 편에 서서 명령조로“함께 하실 지어다”하며 선포하거나 지시할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함께 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부활의 예수는 세 번째 현현 사건에서 제자들이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베드로와의 대화에 집중하신다. 이 장면에서는 부활의 주님과 베드로 사이의 대화가 중심을 이루며 그 대화의 내용은 주로 베드로의 목자로서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 장면은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를 부인한 것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실패로부터 그의 회복을 다룬다.예수는 베드로에게 그가 예수를 사랑하는가를 세 번 질문하고 베드로는 예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세 번 확인시키며 예수는 베드로가 그의 양을 먹이도록 세 번 위임한다. 예수의 삼중 질문과 그 후의 삼중 명령은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것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13:38; 18:17, 25~27; cf. 막 14:66~72parr.). 그 연결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보기는 더 어렵다.원문에는 세 번에 걸친 질문과 대답에서 단어들(특히 ‘사랑하다’는 동사)이 변경되었다. 그래서 이 변경이 주는 의미의 차이에 관한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예수의 연속된 질문이 베드로와의 관계 회복에 역점을 둔 반면, 예수의 명령은 베드로의 목회자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과 관련하여 여기서 베드로에
알려진 바와 같이 신곡(La Divina Commedia)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시성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종교적 대 서사시이다.단테의 시대는 절대 권력을 가진 교회가 성경 번역과 보급을 금하고 연옥교리를 만들어서 죽은 자를 위한 제사와 헌납(獻納)을 권장하고 면죄부를 팔던 암흑 시대였으며, 한 편에서는 르네상스가 태동을 꿈꾸고 종교개혁 운동이 기지개를 켜던 때였다.단테가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옛 로마의 시인 버질(Publius Vergilius Maro, 70~19BC)이 나타나서 단테를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한다. 단테는 지옥에서 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성물과 성직을 매매한 죄로 지옥에 떨어진 교황 니콜라우스 3세 등 수많은 영웅호걸과 명사들을 보았다. 연옥을 지나 천국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버질은 자기는 아직 천국에 들어갈 만큼 참회하지 못해 더 이상 갈 수 없다면서 단테가 사랑했던 소녀 베아트리체를 데려다주고 사라진다.이 작품에는 사후 세계의 정황과 시인이 만난 사람들이 현실처럼 묘사되어 있어서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실낙원(Paradise Lost, 失樂園)과 함께 문학적
광복과 해방, 그리고 자유를 돌이켜 생각나게 했던 8월도 지나갔지만 그 몇 주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 어떤 가치로도 바꿀 수 없는 것, 바로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70년 전 일제 36년의 식민통치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어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우리들의 눈으로 세계를 돌아보면 아직도 수많은 국가의 국민들이 그들의 국가와 정치권력들에 의해서 폭정과 폭압, 폭력에 시달리며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가 승리하지 못하고 자유가 구속 당하고 있다. 소위 자유국가라고 말은 하지만 경제가치가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의 가치를 억압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타협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영적 자유’이며 이것이 ‘참 자유’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는 이 세상 그 어떤 자유의 가치와도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 자유’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영적 자유’ 인 ‘참 자유’를 누리게 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3. 완화돌봄의 실제적 방안 제안1) 개인적 접근방안완화돌봄은 당사자와 그 가족 모두에게 질적으로 매우 좋은 나눔과 작별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완화돌봄에서 목회자는 ‘회고방법’‘추억상자’(memory box)와 ‘화풀이벽’(anger wall), ‘미래편지쓰기’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환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 및 마음의 부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회고 방법은 공식,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한 인생의 회고(Life Review)로서 환자와 함께 환자 자신의 삶을 회고해보는 것은 그 환자로 하여금 삶의 의미와 그 속에 담겨있는 영적인 축복과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첫번째 공식적 방법은 환자로 하여금 사진이나 일기, 개인 기록 등을 통해 기억할 수 있는 대로 1~5년 단위로 주요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본인의 느낌 평가 등을 기록하게 하고 그것들을 환자자신의 관점으로 크게 정리하게 한다. (예: 황금기, 새싹기, 등등.) 두 번째 공식적 방법은 사진들이나 기타 구술하고 그것을 녹음하여 목회자가 활자로 정리하여 환자자신으로 하여금 재구성하게 한 후 의미의 재부여한다. 비공식적 방법으로는 오래된 사진이나 개인소장품, 혹은 방안에
묘지로 뒤덮이는 국토우리나라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어 산을 보면 능선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무덤들이 보인다. 야산(野山)에 묘 하나를 쓰려면 작은 불도저가 숲을 파헤쳐 길을 내고 묘주변의 숲을 모두 제거한 뒤에도 시야를 트기위해 앞쪽에 있는 크고 작은 나무들을 모두 잘라내야 한다. 이렇게해서 무덤 하나를 만들려면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희생되며 숲과 자연 경관 또한 이만저만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현재 한국은 국토의 1%를 묘지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가동되는 공장 면적의 3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현행 장묘제도에 의하면 개인 묘지는 1기당 9평 이하로 제한되어 있어서 일견 합리적인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 면적의 3배에 해당한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매년 여의도 면적의 1.2배(900ha) 너비의 땅이 묘지로 잠식된다고 한다.우리나라보다 국토가 월등히 큰 중국도 이미 문화혁명 때 화장(火葬)을 입법화해서 산과 들에는 무덤을 만들지 못하도록 조치했고, 일본과 미국과 온 세계를 통틀어 죽은 이를 땅에 묻고 봉분을 만드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된 부활신앙한국인이 화장을 꺼려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조상
‘개망초’, ‘미역취’, ‘민들레’, ‘토끼풀꽃’, ‘곰보배추’, ‘가락지나물’, ‘개똥쑥’, ‘벼룩나물’…. 내게는 그 이름마저 생소한 잡초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있다지만 웬만해선 그 존재조차 모를 뿐 아니라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잡초들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는 그 잡초들을 맛난 음식으로 탄생시켜 가족은 물론 손님들 대접하는 상에까지 내놓는 이들도 있단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흔하게 귀하게 잡초처럼’이란 제목의 KBS-TV ‘인간극장’ 주인공 이야기다. 너무 감동이 되어 예배 시간에도 보여드렸더니 우리 성도들도 꽤 감동되어 하셨다. “우리 삶에도 이런 잡초 같은 은혜들이 많은데, 그냥 무심코 밟아버리기만 했다”는 설교자의 도전엔 꽤 뜨끔들도 하셨다.그러고 보니 누구 뭐랄 것도 없이 사실 나부터도 그랬다. 무슨 화려하고 거창한 꽃과 열매가 아닌 바에야 흔하고 반복되는 일상 같은 잡초 같은 것에는 별 관심도, 별 감사도 하지 못했던 삶이 내게도 있었다. 성도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온 목회자로서 솔직히 부끄러운 일이다. 숨겨진 잡초 같은 보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잊었던 감사, 익숙해져버린 축복, 흔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의 말씀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옥(이하 ‘음부’와 뜻을 같이함)은 실재하는 곳이라고 그 베일을 벗겨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교회들은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지옥에 관한 메시지를 증거 하지 않는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현대 산업사회에서 매일매일 지친 교인들이 주일날까지 유쾌하지 못한 지옥에 관한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가? 라는 반론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음부(지옥, Hades)에 대해서 분명히 증거 하셨다. 우리 주님께서 음부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시면서 특정한 두 사람을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사람은 부자(rich man)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럭셔리 하게 살았다.” 또 한사람,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있었다. 누가는 부자는 ‘한 부자’라고 기록하고 있고 거지에게는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 부자가 있어 … 나사로라 이름한” 주님의 말씀에서 호화롭게 사는 부자와 헌데를 앓는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가상의 예화가 아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그 곳에서 오셨고 그 곳의 말씀을 증거 해 주셨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사로는 땅에서 매일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며 살
따라서 목회자는 완화돌봄의 효율성을 위하여 시한부환자를 돌볼 때 사회경제적 지위, 성별, 가족 구성원의 지원 정도 등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환자를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임박한 죽음의 현실에 처한 환자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독특한 행동양식을 하게 만든다. 따라서 완화돌봄에서는 이러한 환자 개인 특유의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할 때 목회자는 돌봄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이 밖에도 신체적 상태에 따라 분노와 두려움과 불안이 다양하게 표출되며,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과거 삶에서의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들, 특히 사랑했던 이들과의 사별에 따른 슬픔의 기억이나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성취나 감사하는 일들의 기억을 회상하고 싶어 한다. 특별히 분노는 불치병의 진단 및 확진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불안과 두려움 역시 이 시기에 함께 표출되는 감정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임박한 죽음과 좀 더 오래 생존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죽음이 가능한 가깝지 않다고 믿고 싶어 한다. 나이가 젊을수록 또는 이루고 싶은 중요한 일이 있을 경우 죽음을 부인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높다. 2) ‘확실한 그러나 불명확한’기독교 신앙전통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