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영국 스코틀랜드의 어느 작은 시골 장로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일화를 읽은 일이 있다. 당시 공업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는 작은 시골교회인지라, 목사님이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또 그 동리의 사람들은 까다로운 사람들로서, 저들의 마음은 차가웠고, 복음의 진리에 대해 도리어 매우 적대적이었다. 이러다 보니 그의 사역을 통해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장로들의 선동에 의해 목사님은 강제로 교회를 떠나게 될 판이었다. 하지만 이 시골교회를 고생하며 섬겨오던 목사님의 사역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주일 예배 중 헌금 쟁반이 돌려지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쟁반을 받아 바닥에 놓고는 일어나 그 위에 올라섰다. 이 이상하고 괴이한 일을 보고 책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자. 그 소년은 “나는 어리지만 목사님의 삶과 사역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오늘 나는 드릴 것이 없어 나 자신을 고스란히 하나님
부족하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도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났지 않느냐?”는 어느 분의 질문을 받으며, 주님의 마음이라고 믿고 진도에 내려와 목회를 위해 기도하던 시간을 회상해 본다. 몇 년 전 생각하기조차 힘든 시간을 몸소 겪은 진도 땅, 그것도 수많은 눈물과 통곡으로 얼룩진 팽목항에서 몇 분 거리에 교회가 있는 마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하신 말씀이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마을의 노년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지 못한 마음이 느껴졌다. 민속공연을 광고하는 홍보지에 “굿 보러 오세요.” 공공연하게 적어 놓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교회에서 굿한다”고 말하는 지역이다. 한국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영적 무지 속에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슬퍼진다. 복음을 들고 문화가 전혀 다른 선교지로 달려가는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말은 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와 다른 환경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요, 선교사가 아니겠는가? 더욱이 고령화 되어가는 한국의 농어촌은 연령적으로는 더 어리고 젊은 타 문화권의 선교지보다 변화도 없고 희망도 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환
이외수란 작가가 거미에 대해서 여러 면으로 칭송하는 글을 썼다. 우리나라 거미들은 독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온순한 벌레라고 했고, 부화한 새끼를 위해서 자기 살을 뜯어 먹이며 기르는 에어리 염낭 거미를 예를 들면서 모성애가 숭고하다고까지 극찬했다. 특히 그는 거미줄로 지은 거미집에 대해서 ‘그것은 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고 투명한 실로 허공에다 섬세하게 드리워 놓은 한 편의 시이며 노래’라고 표현을 했다. 누구든지 거미가 허공에다 거미줄을 친 것을 보면 놀라고 신기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거미줄은 견고성이나 영구성 면에선 언제나 형편이 없다. 1995년 6월에 100평 남짓한 예배당을 준공했다. 23년 전 일이지만 그 때 재정난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몇 개월에 걸쳐서 지은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입당을 하고 며칠 지나서 예배당 바깥 한 곳을 보니 왕거미가 거미줄을 쳐놓았다. 얄밉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우리들은 몇 달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건축했는데 왕거미는 하룻밤 공사로 우리의 예배당에다 자기의 주거용 사업용 거미줄을 쳐놓았던 것이다. 그 날 왕거미와 거미줄은 당장 없어졌다. 단번에 빗자루로 거미줄을 쓸어버렸고 왕거미는
한국에서 상담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보지만, 아직도 상담소의 문턱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민을 왔던 그 당시의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사는 해외 거주자들에게 상담이란 왠지 수치감과 의구심을 유발하는 단어이다. 의사를 보러 간다는 말은 시장 간다는 말처럼 쉽게 이야기되고 정보를 나누지만,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는 숨기고 싶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의 자녀들이 상담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면 바로 가슴이 철렁하다. 정신력과 영성으로 이겨야지, 뭘 상담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린다. 그래서 어쩌다가 상담을 요청하는 ‘희귀한’ 한국 분들의 사정은 의외로 심각하다. 자녀와의 갈등이 극에 달해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아동보호기관에게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있기도 하다. 이미 한쪽에서 이혼을 결심한 경우 법적인 수속을 밟을 때쯤 상담소를 찾기도 한다. 중독으로 인해 가족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이미 모든 것을 잃을 때에야 문제를 깨닫기도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과 치유의 역사들을 보지만, 이미 상처 입고 신뢰를 잃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돌이키기 쉽지 않다. 기다리다가, 괜찮다고 자위하다가,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가 필요하
회복은 무조건 옳다. 하나님의 복음은 망가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기적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최근 한 선교단체에서 개최한 이단관련 특강에 다녀와서 말했다. “아빠, 세상에는 별의 별 이상한 이단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JMS, 구원파….” 어느 덧 다시 학기말이 됐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캠퍼스의 CCC, IVF, JOY, SFC 등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분주하다. 선교단체 마다에서 개최하는 여름수련회에 많은 학생들을 초청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같은 시기 같은 곳에서 동일하게 분주해지는 것이 이른바 캠퍼스 이단들이다. 이 시기가 되면 구원파는 IYF(IVF가 아님)라는 교묘한 이름으로 각 단과대학 거의 모든 화장실 소변기 위에 여름방학에 학생들이 보람있게 보낼 수 있도록 초청한다. “굿뉴스코해외봉사단”이라는 위장 단체를 내세워서 해외봉사 초청 스티커를 부착하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천지는 UNPO(United New University Peace One)이라는 위장 단체를 내세워서 학생들을 유혹한다. 이 단체는 “새로운 문화로 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멋진 단체명의 의미를 내세우고, 마치 자기들이 U
그렇다면 바람직한 설교는 무엇일까? 좋은 설교는 성경 본문과 오늘날의 청중을 견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설교이다. 성경 본문이 처음 쓰일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서 말씀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를 통해 의도하신 뜻을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전달해야 한다. 남침례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는 헤셜 요크(Hershael W. York) 박사는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청중들과 교감을 강조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청중들에게 성경적 정보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고 믿는다”라고 비판한다. 이와 같이 편향된 설교 접근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침례교회 설교는 어떠한가? 한국침례교회는 대체적으로 복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신학노선을 지향했다.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성경본문의 계시를 강조하고 연구하지만 실제로 청중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많지 않은 경향이 있다. 한진환 박사의 설명처럼 “청중을 그저 메시지를 전달받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여길 뿐 그들을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한 변수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침례교 설교도 본문과 청중 간에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이 지방회는 독일 선교사 목회자로 떠날 전도사를 위해 목사안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목사 후보자 전도사는 침례교 목사안수 요건을 다 갖춘 자인 것만은 사실이나 갑작스러운 독일로의 선교 목회를 떠나는 만큼 서둘러 목사안수를 받아야만 했었다. 듣건대 목사 안수를 받는데 꽤나 시간을 요한다고 하는데 이 지방회는 속전속결식으로 목사안수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코 약식은 아니나 속식(速式)이었다. 이 지방회는 두어달 만에 면접시취, 구술시취, 논제시취를 끝냈다. 이미 독일에 체류한 전도사가 2주간의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곧 현지로 돌아가야 하겠기에 속전속결로 해줬다. 이 지방회는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게 해야 하는 지방회였다. 듣건대 목사 안수를 받는데 엄청난 경비부담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지방회는 무경비 안수를 치렀다. 주변을 보면 시취위원이니 안수위원이니 해서 몇 차례 모일 때마다 식사대접, 그놈의 거마비에 혼줄이 나는 어린 전도사들의 처지였다. 그러나 이 지방회는 그런 전례가 없다. 지방회에서 모든 것을 사양하는 바람에 목사안수 후보자는 겨우 사정하에 간단한 중식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 특전을 얻었다. 전도사를 독일 선교사 목사로 추천한 교단의 어떤 어른 목
조선 말기 당시 관직은 참봉이었던 홍봉조씨는 1850년경 일찍 무인도인 동해의 고도 울릉도(鬱陵島:답답한 언덕 섬)에 맨 먼저 들어와 살았다. 1890년 어느날 배를 타고 남쪽으로 독도(獨島)에 나갔는데 왜놈 어부들이 물개잡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어부들을 몰아낸 일이 있었다고 홍봉조씨의 손자 홍순칠(洪順七)씨는 말했다. 또 직간접으로 1950년초 어려서부터 저가 들어온 독도를 지킨 얘기를 아는대로 아래에 적어본다. 홍순칠씨가 초대 참모통장 최병덕 장군의 호위병으로 복무한 일이 있어고, 6·25 사변중 원산 전투에서 탱크를 타고 수색하다가 부상을 당해 1953년 봄 상사로 제대한 뒤 고향 울릉도에 돌아왔을 때, 울릉도 첫 개척자인 조부 홍봉조씨는 일본 사람들이 독도는 자기의 영토라고 표지판을 세워놓았다고 분노하는 말씀을 들었다. 통일신라때 거칠부 이사부 두 장수의 군대가 동해의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하고 남긴 울릉도 태하동 해변가 석벽의 글씨가 증명한다. 지금도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 글은 자못 조심스러우면서도 역사적 사실이기에 강력한 자부심으로 쓰고 있다. 당시는 전쟁중이라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한다면 유엔군 사령부 지휘하의 국군병력이
한국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말 중 하나가 4차 산업 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 로봇과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등을 융합하는 기술적 변혁의 움직임이다. 미래학자들은 지금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성년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는 이들 중에 70%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10년 이내에 길에서 운행되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무인자동차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러한 고도의 기술적 변혁은 이미 시작됐고, 사회 각 기관에서는 혁신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기독교 연구기관에서도 근래에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되고 있다. 그렇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설교자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현대 설교자에게는 ‘해야 할 일’(to do lists)이 많다. 또한 목회환경이 변화하기에 사역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캠벨 몰간(Campbel Morgan)은 “사역자의 최상의 임무는 설교이다. 우리가 범할 수 있는 큰 위험
4) 귀납적 개요 설교 본문 : 요한복음 3:1~15 주제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중생의 길 서론 : 이 땅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성공과 업적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삶의 공허감과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I. 수많은 성취와 업적들(과학, 부와 재물, 학문, 지위 등등)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여전히 삶의 목마름과 갈증이 있음 - 수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는 인생 - 위대한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 - 본문의 니고데모 이야기 - 그러나 영적인 것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혼란 가운데 있는 인간 - 현실과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인생 - 영적 진리(거듭남)에 어두운 당대의 지성인 니고데모와 같은 현대인들 II. 알 수 없는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인생 - 인간적인 능력(돈, 명예, 권력, 쾌락 등)을 의지하여 끊임없이 추구함 - 소유하면(위에 것들) 소유할수록 영혼의 갈증은 고조 됨 - 한국 정치인들의 말로 -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 등등 III. 길과 진리 되시는 주 예수님만이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줌 - 모든 사람
지난 5월 6일 저녁, 최우중 목사(보은구인)와 필자는 5박 6일 일정으로 필리핀 바기오에 소재한 헌드레즈타임즈아카데미중고등학교와 영어어학원연수원(이준성 선교사) 학생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치기 위해 떠났다. 거의 4시간가량을 비행한 후 클락공항에 도착해 이준성 선교사와 조우했다. 1년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참으로 눈시울이 불거진다. 우리가 처음으로 교제했을때와 비교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초지일관 변함없는 거룩함과 경건의 영성으로 점철된 그를 만날 때마다 마치 사도 요한을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바기오에서 현지의 선교사역을 22년째하고 있는 이 선교사의 닉네임은 “요한 선교사”로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락공항에서 바기오까지 약 3시간 30분의 거리를 중간 휴게소에 들려 한번 차를 마시고는 쉼없이 달려 이윽고 새벽시간에 목적지인 바기오 헌드레즈 아카데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장고의 여정을 달래기 위해 숙면을 취했다. 새날이 밝아오자마자 인자하고 상냥스러운 이준성 선교사의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한정식으로 아침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정말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어찌나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강식으로의
우리 교회가 매입한 농지에 지하수를 세 곳이나 팠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업자들이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문제는 올해는 그 교회 땅에 교인들이 함께 깻잎농사를 통한 수익사업을 하기로 해 모든 준비를 했는데, 날씨가 너무 뜨거워 지면이 말라버려서 교인들이 깻잎 어린 모를 심는 족족 말라서 비틀어집니다. 고민 하다가 우리 이장 교인 형제님의 트럭을 가지고 와서(저희는 차키를 서로 아무 때나 공유하는 교회입니다.) 800리터짜리 큰 물통을 싣고 바로 옆 교인 하우스에 가서 물을 받아 가져와서, 우리 농사짓는 밭으로 가져와서 일일이 물조리개로 주는, 다시 30~40년 전의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일일이 10리터짜리 물조리개 두통으로 최소 80m 이상 되는 골을 수도 없이 다니며 일일이 물을 주어 거의 90%이상 살렸습니다. 뜨거운 태양에 생명의 싹이 죽어가는 것을 보니, 견디기 어려워, 8시간동안 점심밥도 못 먹고 시리얼로 대신하며 20kg을 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여러 번씩, 물을 줬더니 집에 들어와 스마트폰 어플에 제가 하루 종일 걸은 양을 보니 8.65km가 찍혔습니다. 그렇게 철야기도회 설교와 기도회 인도를 준비하며 교회당에 왔는데, 다리가
“당신들이 떠나간 후 우리에겐 더 큰 일들이 남았지요. 약 800 가정을 돕는 일, 거의 수천 명의 영혼을 돌보는 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맡기심에 감사하고 있어요!” 우리들이 단기선교한 필리핀 프라리델제일침례교회 마루자 청년이 서울교회 선교대원이었던 김정연 양에게 보낸 편지(이메일) 속의 내용이다. 또 오소리오 담임목사의 전화내용을 더해 간추려 본다. “우리는 한 달 동안의 양육계획을 짰어요. 첫 주에는 아는 사람 순으로 정리하고, 둘째 주에는 구원을 위해 새신자 교재를 사용하는 것, 셋째 주에는 반응의 평가를 살펴보고, 넷째 주에는 그들 결신자를 교회예배에 참석토록 초청하는 것으로 정했어요. … 우리는 각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임무와 큰 책임을 감수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두 힘써 일하고 있어요.” 지난 두 번의 집회 중 수백 명의 결신자들이 있었는데 양육관리를 안하면 다시는 옥외전도집회를 안할뿐더러 30여명 전도단원은 다른 도시나 나라로 갈 것이라고 경고한 후의 소식이었다. 집회 준비를 의논할 때나 집회 후 떠나올 때에도 새신자 양육(follow-up)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강도 높게 부탁했는데, 지금 오소리오 목사와 성도들은 선교집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 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1~12) 위의 “이런 일”이란?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우상 숭배자들”과 “간음한 자들”과 “주를 시험한 자들”과 그리고 “원망하던 자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멸망을 받은 사건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기록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깨우치게”란 단어는 개역개정 성경의 단어로서 그전의 성경의 단어와는 좀 차이점이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 이전의 개역한글 성경에는 “경계”란 단어로 써져 있습니다. 그리고 NIV영어 성경에는 “WARNING”즉 “경고”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깨우치게”란 “깨어있어라, 정신을 차리라”는 말로,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딸 때는 따는 데만 몰입해서는 안 되고 감나무 가지가 약하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경계”라는 말은 자동차 도로에서 차들이 오고, 갈 때 중간에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선을 무시하고 차선을 넘어가게 되면 가히 상상하기조차도 힘든 무시무시한 사고를 당하
설교 구성 착안 사항 서론은 완성된 이야기로 제시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중간에서 단절됐다. 설교자는 서론에서 청중의 마음에 잃어버림에 대한 생각을 직면하도록 유도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본문에서 잃어버린 아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잃어버린 상태에서 다시금 발견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것과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형성시켜 준다. 설교자는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수사적 효과를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청중이 잃어버린 상태에 대한 무게감을 느끼기 원했다. 서론에서 중단됐던 이야기는 결론으로 이어져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공군이 잃어버렸던 조종사의 위치를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그 조종사를 무시해 버릴 수 있었다. 그 조종사가 격추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고, 그를 비난하면서 버려둘 수도 있었다. 당신은 공군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그들은 그 조종사를 찾으러 나섰다. 대여섯 대의 항공기와 수십 명의 해병대를 파견했고, 수백만 달러의 돈을 지불했다. 이 모든 것이 한 명의 격추된 조종사, 즉 자신의 힘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사람을(작은 아들)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오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