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위협받는 믿음 (3)

유수영 목사와 함께하는 창세기 여행 36
(창세기 16장 1절 ~ 16절)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창 16:6)

 

자식을 낳는 일에 실패한 사래였지만 아브람의 아내라는 지위만큼은 놓칠 수 없었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자식을 낳는 일은 막을 수 없어도 그 이상으로 올라서지는 못하게 하고 싶었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하갈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해야 했고, 그렇게 하갈을 향한 학대가 시작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학대했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갈은 본래 시녀였고, 임신했다고 신분이 바뀌지는 않았을 테니 사래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었겠죠. 문제는 자기 알 바 아니라는 듯 한 발 떨어져 팔짱 끼고 있는 아브람입니다. 게다가 학대를 막기는커녕 다시 한번 사래의 행동에 눈감아 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갈이 임신한 아이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상속자로 주신 아이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뒤로 아브람은 사래가 단호하게 나오면 막지 못합니다. 평생 고통받고 살았던 사래에게 더욱 큰 아픔을 안겨 줬던 과거의 잘못 때문에 그녀를 막지 못하고 매번 한 걸음 물러나기만 했죠. 결국, 누구의 도움도 얻지 못한 하갈에게는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시녀에서 주인의 상속자를 임신한 여인이 됐다가 다시 도망자가 된 셈입니다. 정말 극적인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 16:11)

 

하갈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광야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애굽 땅이죠. 아브람에게서 도망친 하갈이 갈 곳이라고는 자신이 태어난 애굽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고, 직접 찾아가 장차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해 주셨으며, 이스마엘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셨습니다. 사실은 모두 사래가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하갈이 먼저 듣고 말았네요. 사래가 알았다면 엄청나게 서운했을 일입니다. 창세기를 읽고 있는 우리도 이런 실수를 종종 합니다. 응답받은 하갈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응답받지 못한 사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나타나 말씀을 주신 이유는 그녀를 사래보다 더 사랑했거나 사래보다 중요하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이스마엘에 대한 계획이 하나님께 있었고, 그것을 하갈에게 알려 줄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죠. 창세기를 읽으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과 계시가 사람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뤄짐을 보고 있습니다. 하갈도 예외가 아니었죠. 이 일을 통해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 주신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 16:13)

 

성경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 부른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모세, 기드온, 에스겔 등이 자기만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불렀고, 아브람도 훗날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제물을 보고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죠. 그런데 이 모든 사람보다 먼저 애굽 사람 하갈이 놀라운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나를 살피시는 분’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고, 그 땅의 이름도 브엘라헤로이(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우물이라는 뜻)가 됐습니다.


이스마엘의 이름을 지어 주신 하나님께 이름을 지어 드리는 방식으로 응답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 안에 그 사람을 향한 계획이 예언처럼 담겨 있다면 사람이 지은 하나님의 이름에는 사람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한 하갈은 이때 인생과 신앙 모두에서 크게 성장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가 애굽에 가서 성장하고 돌아왔다면 애굽 사람 하갈은 그들로부터 쫓겨나 광야에 가서 성장했네요.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창 16:15)

 

하나님을 만나 이스마엘에 대한 약속을 확인한 하갈은 브엘라헤로이를 떠나 아브람과 사래가 있는 헤브론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선 7절부터 14절까지의 기록이 창세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하갈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아브람과 사래에게 모두 다 말했을 겁니다. 그래서 아브람도 훗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테죠. 사래의 학대가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을 겁니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덜 미워지거나 화가 누그러질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하나님 약속을 가지고 돌아온 하갈을 전처럼 강도 높게 괴롭히지는 못했겠죠. 하갈 역시 이전보다 성장한 만큼 성숙한 태도로 사래와 아브람을 대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하갈에게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과제가 생겼고 사래는 하갈과 더불어 커가는 이스마엘도 경계해야 했으며 아브람은 과정이 어땠든 유산을 물려줄 아이가 생겨 만족했습니다. 잔뜩 뒤틀렸던 가족 관계와 위협받았던 신앙이 적당한 균형을 찾은 듯이 보였는데, 아브람 가족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 생각보다 훨씬 컸고 이들이 가야 할 목적지는 아직 먼 곳에 있었으니까요.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