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랄 로버츠의 신유은사 강조 오순절운동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랄 로버츠에 의해 불붙은 신유은사 집회의 대성공 때문이었다. 그는 1950년대 중반에는 오클라호마 주 오순절 성결교회 출신의 한 무명 복음 전도자에 불과한 목회자였지만, 이제 텔레비전을 통해 복음전파를 시도한 최초의 신유사역자가 되어 미국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자 1960년대 초까지 수백만 명의 미국 사람들은 자기 집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오랄 로버츠 목사의 신유사역을 지켜보면서 오순절주의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됐다. 한편 로마가톨릭교회의 주교들은 오랄 로버츠의 은사집회가 미국 전역의 천주교 성도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이라는 책과 오랄 로버츠 목사의 전기를 쓴 알칸소 대학의 데이빗 헤럴은 오랄 로버츠 목사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종교인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오랄 로버츠 목사는 1965년 오랄 로버츠 대학을 설립했고, 1980년대에는 “믿음의 도시”라는 병원을 개원함으로 1960년대 이후에 떠오른 은사 운동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평가됐다
일반 계시의 한계 일반 계시의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 계시는 창조의 과정과 목적, 인간 타락의 원인과 결과, 그리스도의 성육신, 형벌 대속적 죽음, 부활, 승천, 재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성령님의 사역, 교회 그리고 종말과 관련된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들에 대한 진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그분에 대한 참된 예배는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 백성에게 주신 특별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 없는 상태로 창조됐고 아직 범죄하기 이전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창조하신 목적과 사명에 대해, 장래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에 대한 예표로서의 언약적 연합인 결혼에 대해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에 대해 직접 계시하셔야 했다. 즉 죄가 없는 상태의 아담과 하와라 해도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과 분명한 가르침이 없다면 창조 세계와 자기 양심에 대한 관찰만으로는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인간은 일반 계시 조차도 순수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됐고 오히려 그것을 억누르고 왜곡시킬 수 밖에 없게 됐다(롬1:18
(1) 은사 북미주, 팔로알토라는 도시에서 교회를 개척하던 시절, 나에게 꿈에도 소원이 있었다면,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성장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큰 교회의 목사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성장의 비결을 배우며, 따라 하고 흉내 냈던 적이 있었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갖는 교회 성장에 대한 간절함은 정말 눈물겹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고, 나답게 목회하는 것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나답게 목회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대로 목회하는 것이다. 목회 현장은 창업 현장만큼이나 치열하고 삭막하다. 목회는 또한 100미터 경주가 아니고 장거리 마라톤이다. 전쟁과도 같이 치열한 목회현장에서 인내하며 싸우는 과정에서 남의 것을 가지고 따라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끝까지 완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일할 때, 완주할 수 있다. (2) 열정 병원에서 심전도 검사를 해 보면, 검사 결과가 그래프처럼 그려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프를 통해서 나의 심장이 어느 부분에서 올라가고, 낮아지고, 빨라지고, 느려지는지 알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의 열
오늘날 기후 위기는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착취를 정당화했던 산업 사회의 논리가 불러온 비극이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이해는 기후 위기 시대의 도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연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를 반드시 정립해야 한다. 구약성서는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두 개의 기본적인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자연을 창조하셨다(창 1:1). 둘째, 자연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있다(느 9:6). 자연에 대한 두 가지 이해의 틀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어 가던 고대 교부 시대에는 플라톤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헬라 철학의 자연 이해와 구분하기 위해 후자에 비해 전자가 강조됐다. 영혼과 육체(혹은 정신과 물질)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신적인 것(혹은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적인 것을 ‘악한 것’ 혹은 ‘하등한 것’으로 여겼던 플라톤주의의 자연 이해는 1세기 로마 제국의 엘리트들에게 넓게 퍼져 있었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도 그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초기 이단 중 2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마르키온(Marcion)과 발렌티누스(Valentinius)는
성 마가교회가 끼친 영향 이 같은 성 마가 교회에서 일어났던 소동은 미국 언론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현지 언론에서 “이제 방언은 미국 교회에서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오순절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냉동 성도’(God’s Frozen People)로 불리는 성공회에서도 방언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네트 신부와 약 70명에 달하는 그의 지지자들은 비록 그 교회에서 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경험한 새로운 오순절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그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트는 워싱턴주의 시애틀에 있는 작은 도시 교회인 성 마가 교회에서 목회청빙을 받았다. 새 주교가 베네트의 오순절주의적인 성향을 알면서도 이를 제의한 것은 그 교회가 당시 문을 닫기는커녕 오히려 그 지역의 가장 큰 성공회 교회가 된 역사를 그 주교가 직접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짧은 기간 안에 베네트는 매주 2000명의 성도를 목양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그 후 20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매주 20명의 성도들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빈슨 사이난에 의하
J. D. 페인은 교회 개척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흔히 말하는 이동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믿는 자들을 위한 또 다른 교회 개척이 아니고, 교회의 규모가 커져서 교회를 둘로 나누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믿지 않는 자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회가 형성되는 것을 교회 개척이라 했다. 그렇다면, 교회 개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전도가 될 것이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끝나지 않고, 그 교회가 다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또 하나의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배가 혹은 재생산하는 교회가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교회 개척의 길이라 하겠다. 교회 개척의 현장은 개척자들이 전도해,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재생산하는 교회로 이끌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 사역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기에, 오늘의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 사역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지면을 통해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개척자는 사도적 교회 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8:22) 바울의 말과 같이 지금 지구의 모든 피조물은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북극 지역 기온이 평년보다 30도나 올라 영상권까지 치솟았고, 남극도 일부 지역에서는 평년보다 40도나 높은 기온이 관측됐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남극과 북극 한 곳에서의 기온 상승은 경고에 그치지만 두 극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기온 상승은 기후 재앙과 같은 모습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례로 지난 3월 인도 델리와 파키스탄 신드주 자코바바드에서는 기상 관측이 이뤄진 122년 동안 유례없는 폭염으로 적어도 90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로와 학교 유리창이 녹아내리고 새들이 체력 고갈로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살인적인 폭염, 엄청난 폭우, 초대형 산불, 극심한 가뭄 등이 빈번해지는 것을 보면 지금은 지구조절 시스템이 붕괴 직전에 있는 기후비상사태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에 따른 최악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기후 위기 시대에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가장 긴급한 사명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구를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계시란 문자적으로는 휘장을 거두어서 휘장에 가려져 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계시를 먼저 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결코 그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으며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분의 주권적인 행위이며 계시의 대상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고 선포함에 있어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의 신에 대한 담론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계시하신 진리에 절대적 권위를 둔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두 종류가 있음을 인식한다: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이번 글에서는 일반 계시의 정의, 역할, 그리고 유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일반 계시란 내용상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것에 대한 지식이다. 일반 계시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인간이다. 일반 계시의 매개체는 창조 세계(시 8:1~3; 19:1~6; 롬1:19~32)와 인간의 양심이다(롬2:11~15). 일반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느낌
교회 개척을 시작하기 전, 나는 교정공무원으로 10여 년 넘는 시간을 담안에 있는 수용자들과 함께했다. 첫 임용지인 천안에서 1년 만에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광주교도소로 전출을 가게 됐다. 그곳에 가보니 살벌했다. 무기수뿐만 아니라 장기수가 너무 많았다. 살인, 강도 등 눈빛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들과 어떻게 씨름하며 지낼까?’ 걱정이 앞섰다. 마침내 담당업무가 주어졌다. “사형수 담당!” 순간 머릿속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큰일이다. 사형수 담당이라니….’ 두렵고 떨렸다. 돌아보면 그곳에서 7년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사형수들과 함께 지내며 보냈던 시간들이 나에게 큰 유익이 되었던 기간이었다. 그중에서 1993년 12월과 1997년 12월은 필자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교도관 생활 평생을 해도 한 번을 사형장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2번이나 들어갔다. 운명의 장단과 같았다. 사실 사형집행이 있는 날이면 분위기가 완전히 저기압 수준이다. 전날, 늦게 그 소식을 알고 몇몇 종교위원 목사님들께 전화했다. “OOO 목사님, 내일 교도소에 조금 일찍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나는 사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이미 거리에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달이나 남은 시점부터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가게마다 반짝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이 영롱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으로 화사했고, 크리스마스 캐럴로 인해 어둡고 칙칙한 겨울에도 마음이 밝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교실에서도 색종이와 반짝거리는 재료들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성탄카드를 만드느라 분주했었다. 교회는 당연히 크리스마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들마다 크든 작든 성가대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준비하느라 한 달여 전부터 간식까지 챙겨 먹으며 부산스러웠다. 아이들과 청소년들도 연극이나 성탄절 발표에 마음이 들떠 준비하는 데 열심을 내었다.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축제이자, 마을의 축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아졌다.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 어려워졌다. 카페나 백화점 등에 가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듣기 어렵다.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