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보도를 지켜보면서 (주)세모의 회장 유병언 “목사”를 떠올렸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이면에는 구원파라는 이단사이비종교의 교주가 있다. 이 한 사람의 잘못된 신학과 그릇된 가치관, 사기성 인격과 탐심이 오대양 사건과 한강 유람선 충돌사건에 이어 300명 가까이를 수장하는 참극을 빚어냈음이 드러나고 있다.사람들은 당장 무책임한 선장과 배에 탄 사람들을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제일 먼저 빠져나온 구원파 선원들의 행동에 분노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참극은 한 사람 유병언 회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평소 “하나님의 사업을 의논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며 예배”라고 가르쳤다. “(구원파)교회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 ” “구원은 개인이 받지만 신앙생활은 교회가 한다” “일단 죄사함을 받으면 어떻게 살든 천국에 간다.” “구원파 안에 붙어있는 자만 예수 재림 시에 들림을 받는다”는 전혀 비성경적인 교리로 교인들의 충성심을 유도하여 1만여 구원파 신도들의 차명대출을 통해 5,000억원의 재산을 증식할 수 있었다.생각을 결과를 낳는다. 성경은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사람됨)도 그러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은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바울
선진교회/ 박영진 목사기독교 한국침례회 부흥사회에서 주최한 세미나를 통하여 부흥의 불을 붙여 놓은 기회가 되었다. 주제는 “부흥” 우리가 그렇게 바라며 꿈꾸는 부흥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부흥을 믿지 않고 있다. 부흥에 대하여 자꾸 변명을 하려고 한다. 지금 한국 교회에는 부흥은 지나갔다. 부흥이 안 된다는 이상한 마귀 같은 소문들이 퍼져있다. 지금껏 ‘왜 부흥하지 못했는가’ 여기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했다. 부흥이 안 되는 원인을 찾으며 변명했다. 결론은 개척은 안 된다. 상가는 안 된다. 작은 교회는 안 된다며, 부흥하지 못함을 환경과 세상의 흐름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너무 약해져 있다. 이제는 기독교가 환경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단들을 무서워하고 있다. 누가복음 13:33절에서 예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다.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기독교는 약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번 세미나의 특징이 있었다. 부흥의 불을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본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
살면서 낯설고 회한이 밀려올 때가 변화되지 않는 내면과 마주 할 때이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숙성된 향기보다 초보를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볼 때이다. 경주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하고 그것을 기뻐해야 하는데 그 반대일 때 더욱 그렇다. 쉽고 편한 가벼운 길을 좋아하며, 안일하게 살고 싶은 어린 모습은 당황스럽게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며 대우받고 인정받는 것에 예민하다가, 살며시 관심 있는 모습을 볼 때 놀란다. 심는 대로 거두는 하늘의 추수법칙을 믿으면서, 속성이나 꼼수로 해결하고 싶은 게으른 착각도 여전하다. 힘들고 어려운 짐을 벗고 가벼운 것으로 바꾸면서도 사명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말을 걸어온다. 신앙생활의 나이테가 쌓여갈수록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로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는 고백이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편리하도록 줄이고 바꾸어 쉽게 걷기보다, 정해진 것을 메고 정해진 거리만큼 가는 것이 몸에 익숙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쉽다.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왔으면 적응되고 익숙해져서 세상이 오히려 낯설어야 하는데 말이다.사명의 무게만큼 지고가야 하는 것이 십자가이고, 그 거리만큼 걸어가야 하는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개인감정
지난 2월 26일,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박모(60)씨와 그의 두 딸 A(35)씨, B(32)씨가 숨진 채 발견돼 집주인 임모(73)씨가 신고했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봉투에는 현금 70만원과 함께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박씨의 남편이 12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계는 급격히 기울었고 박씨의 두 딸은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 상태로 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병원비 부담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동두천에서는 30대 엄마가 네 살짜리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경기도 광주에서는 40대 가장이 중증 장애를 앓는 열세 살 딸, 네 살배기 아들까지 데리고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했으며, 울산에서는 기초수급자인 지체 장애 어머니가 무직자 아들과 숨진 채 한 달 만에 발견됐다. 이 모두가 일주일 새 벌어진 일들이다. 이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조선일
물처럼 변화와 적응을 잘 하는 것도 없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그릇을 채우고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난 그릇에 적응한다.물은 비가 되고 눈이 되고 얼음이 되고 안개가 되고 서리와 구름이 되고 수중기가 된다. 어떤 상황에도 자유자재로 적응하는 놀라운 변신의 생리를 갖는다.우리도 물처럼 여러 환경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물은 천하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준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 된다.사람은 물이 없으면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논밭에 물이 마르면 모든 곡식이 죽고 만다. 가뭄에 단비처럼 고마운 것이 없다. 목이 타는 갈증에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상쾌한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은 물처럼 남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정화해야 한다. 물은 남과 다투지 않는다. 물은 앞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있으면 돌아가고 때로는 땅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때로는 높은 둑이 있으면 조용히 넘쳐 흘러간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과 다투지 않는다.덕이 있는 사람은 함부로 싸우지 않는다. 물은 칼로 벨 수도 없고 창으로 찌를 수도 없다. 만물 중에서 지극히 유하고 약하다. 그러나 물은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 불도 물을 당할 수가 없다. 견고한 돌과 쇠붙
사막을 여행한다거나 등산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물을 준비해야 한다. 군인은 전쟁터에 나가거나 훈련에 임하기 전에 군장 검사를 받는다. 이 때 수통과 물의 준비는 필수적이다.목이 타는 상태로는 여행도 등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배고픈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목이 타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 일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실상 육체적인 목마름 보다는 영혼의 갈급함이다.사람들은 육체의 갈증은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영혼의 갈급함은 해소는커녕 인식조차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많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주님을 찾기에 갈급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옛날에 비해 더 잘 살고, 과학의 발달로 더 편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하다”, “낙이 없다”, “살 맛이 안 난다” 하면서 마치 사막을 걷는 여행자처럼 목말라 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의 온갖 쾌락에 젖어 있다가 죽어서는 손가락 끝에 물 한 모금이 없어서 영혼을 태우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육신의 편함만 도모했지 영혼을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어떻게 해
며칠 봄기운이 완연하자 교회 작은 화단에도 생명잔치가 한창이다. 불과 지난 주만 해도 살아있는지 분간한 길이 없던 작은 나무들과 풀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 봄이 주는 경이로움과 가득찬 축복을 느꼈다. 오늘 주일예배에 올려지는 권사님의 기도를 들으면서도 해마다 새롭게 재해석되는 복음의 핵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 분의 기도는 이렇다.“사랑의 주님! 그리스도의 고난과 아픔과 부활의 환희를 나타내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마음의 천박함과 정신의 공허함과 영혼의 교만에서 우리를 구원하사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보여주신 당신의 사랑과 목적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고 계실 때 주님 따르던 많은 무리들은 어디로 갔으며, 세칭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밤을 지냈을까요? 주님께서 금식기도하시며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하며 고통받으셨을 때에도, 주께서 관원에게 붙잡히시고 그들에게 조롱당하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 따르던 무리들은 어디로 갔으며, 주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구름처럼 따르던 열성인파는 어디로 피신하였으며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였습니까? 주
다음세대의 신앙계승을 위해서 교회교육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기독교교육적인 관점에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다음세대의 신앙계승을 위해서 교회교육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한국교회 미래 부흥의 핵심 사안교회변화의 시작은 미래를 통찰하는 비전에 있습니다. 개인에게도 비전이 필요하지만 교회도 비전이 필요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목회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비전, 목회비전을 재정립할 때입니다. 수많은 교회가 시대에 맞지 않는 교회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전은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비전은 목적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시대가 변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사명’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마다 하나님이 가치 있게 여기시는 시대적 소명인 비전을 시대에 맞게 재정립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 있습니다.목회자에게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자신과 교회의 역량을 분별하고, 시대(현재와 미래)를 분별하는 세
목사의 정년은 교단에 따라 대략 68세, 70세, 75세로 각기 다르며 우리 교단은 개 교회에 따라 달라 80세가 넘도록 현직인 경우도 있지만 대략 70여세 정도 인 것 같다. 생산직에 비해 길다고 할 수 있는 교수의 정년도 65세인데 그에 비하면 목사의 정년은 정말 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정년은 반드시 온다.나의 형제는 8남매다. 막내인 내가 오십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형제 중 절반은 이미 은퇴를 했다. 친구들 중에서도 일반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은 벌써 자신들의 은퇴가 멀지 않았음을 이야기 한다. 그들에 비하면 목사인 나의 정년은 많이 남았다 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도 정년 즉 은퇴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유엔인구기금(UNFPA) 2013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남성 기대수명은78세 여성은 85세라고 한다. 그리고 2011년 한국의 종교인 평균수명은 82세라는 모 대학의 연구보고도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20년 후에는 기대수명이든 평균수명이든 훨씬 더 길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본다면 내가 70세에 은퇴한다고 할 때 대략 15년을 더 산다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이 15년이 되는 것
믿음은 우리 삶에 가장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 믿음이 없었다면 인류는 그 어떤 기술적인 업적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금맥이 있다고 굳게 믿고 광산을 개발하던 두 광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그들은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물자에 허덕이면서 여러해 동안 열심히 땅을 팠지만 금이 발견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광부 한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권을 친구에게 넘긴 뒤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로부터 겨우 일주일 뒤 남아 있던 광부는 근방에서 가장 큰 금맥을 발견했다. 하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면 일시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간의 모든 노력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성공으로부터 멀어진다. 이 세상이 당신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고 느껴지는가? 그것은 당신이 이 세상을 위해 뭔가 해낼 능력이 있다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미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은 잠시 머물다 지나갈 뿐이라는 겪언을 나는 좋아한다. 만일 지금 인생이 절망적으로 느껴진다면 당신이 과도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는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보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과도기는 그야말로 과도기일 뿐이다. 야구용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