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차 정기총회가 폐회했다. 제69대 총회 의장단도 선출했고 총회 주요 사업을 정리하고 몇 가지 의미 있는 결의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총회가 우려했던 사안들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국 상처만 남거나 건설적인 결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특히 7년 만에 통과된 ‘여성 목사 안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서 규약을 개정해서 처리했지만 결의 과정에서 소수의 착석 대의원으로 규약을 개정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또한 신학교 이사의 행정 처분 문제, 침례병원 이사회 소환, 전 총무의 환수 문제 등 여전히 교단의 잡음으로 남아 있는 사안들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대의원들의 분위기와 흐름에 편승해서 결의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 교단이 보다 포용력을 발휘하고 결의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함을 깨닫는 계기도 됐다. 또한 교단의 적잖은 부채로 건축시기부터 우려를 낳았던 여의도 총회 빌딩이 완공된 이후, 운영 계획이나 부채 청산 계획, 입주 계획 및 오류동 총회빌딩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첨예한 논쟁만 벌어진 채 모든 짐을 유지재단이사회에 넘겨 놓은 상태이다. 지금부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임대 사업이 활발
몇 년 전에 성도님 한분이 예쁜 포도나무 분재를 하나 사오셨다. 관리를 잘 못해서인지 잎이 점점 시들고 신통치 않아서 마당 한 곁 수도가 옆 화단에다 옮겨 심었다. 화분에서 꺼내 보니 잔뿌리는 없고 큰 뿌리만 남겨두어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만들어 관상용으로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 첫해에는 뿌리를 내리고 되 살 이를 하느라 고생을 하며 겨우 잎이 살아나고 가지가 움트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새순이 나오고 제법 잎도 무성해 지고 꽃도 피고 대여섯 알 달린 포도송이가 한 두 송이 맺었다. 그러더니 금년에는 새순이 왕성하게 뻗고 무성해져서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서 지금 한창 익어가고 있다. 분재 화분에서 시들시들 다 말라가던 포도나무가 좋은 땅에 화분이 아닌 좋은 땅에 심겨지니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렇게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보니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눈으로 본다.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 물 길러 나온 한 여인을 만나 말씀을 을 통하여 그 심령 속에 영생하는 생수를 주시고 그 일로 인하여 기뻐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는 모습
언제부턴가 ‘간첩’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게 됐었는데, 최근 소위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을 통해 옛 기억들이 다시 나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민혁당을 만들어 주사파의 대부로 불리다 전향한 김영환 씨는 이석기 같은 사람들이 전국에 약 1천 명 정도 더 있다고도 하니 숨이 좀 막힌다. 실제로 이석기 의원이 보여준 그간의 행동들이 내란 음모였는지는 앞으로 검찰과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작금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국민입장에서 지극히 염려가 된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갈등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가 있는 한 진보는 존재한다.그러나 진보주의와 종북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둘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것은 진보세력과 종북세력 모두 민주라는 이름아래 서로의 목적을 위해 합종연횡 한 결과다. 이번 사태로 어정쩡한 두 부류가 선명하게 분류되기를 희망한다. 보수만이 옳은 것이 아니다. 보수를 견제하고 보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진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진보가 보수를 무조건 비난하고 반대 방향으로만 나간다면 오늘과 같은 종북에게 먹혀 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북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옳은
100세 시대를 사는 요즘은 누구나 건강에 관심이 많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건강에 좋고 어떤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해로운지에 대해 관심이 많을뿐더러 조금 비싸더라도 소위 웰빙 음식물을 구입하려고 애를 쓴다. 음식만 아니라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친환경 제품들을 구입하려고 노력을 한다. 정보매체들이나 기업들 역시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겨냥해서 건강과 관련된 방송들과 상품들을 계속 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행하는 건강법들도 많은데 ‘하늘건강법’, ‘야채스프건강법’, ‘8체질건강법’, ‘톡톡 건강법’, ‘디톡스 건강법’, ‘씨앗건강법’ 등 굉장히 많다. 필자는 이 외에 다른 건강법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그것은 ‘체온건강법’이다. 체온건강법이란 한마디로 체온을 정상 범위 내에서 자신의 평소 수준보다 1℃높이면 면역력이 강화돼 질병을 막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시작한다. 건강한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5℃인데 체온이 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36℃면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몸을 떨게 되고 35.5℃면 배설 장애와 알레르기가 발생하고 35℃면 암세포가 활성화 된다고 한다. 34℃는 물에 빠진 사람의 경우로 소생 가능성이 50%로 줄어들고, 3
한국 4대 명절의 하나인 음력 8월 15일은 중추절 가배, 가위, 한가위라고도 한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다.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년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 때 6부(六部)의 여지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15일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편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을 했던 것에 유래가 됐다고 한다. 또 반보기의 풍습도 있었는데, 반보기란 시집간 여자가 친정에 가기 어려워 친정부모가 추석 전후로 사람을 보내 만날 장소, 시간을 약속하여 시집과 친정 중간쯤에서 만나는 것이다. 지금은 이 풍습이 없어졌지만 추석 뒤에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에 가서 놀다오게 한다. 추석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로 자리 잡고 있으며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간다. 여기에 더해 추석 명절은 종교적인 행사가 포함된다. 문맹인들은 생존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신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믿었다. 또한 모든 교육은 어떤 식으로든 신과 관련되었으며, 따라서 종교적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촌동네가 고향인데, 한두 시간 쯤 가면 바닷가가 있는 곳이었다. 좋은 학교도 못 나왔다. 식구도 많아서 다복하고 화목했지만, 가정 형편은 어려운 편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장남인 그가 가장을 역할을 하며 가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좋은 학교를 다니지 못 하고, TV에 출연해 유명세를 타거나 따로 영재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나이인 10대나, 20대, 30대엔 무얼 했는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는 일찍 결혼하기도 했지만,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신앙생활을 잘 했다. 모태신자라고 할 수 있고, 교회 출석도 잘 했다. 성경공부도 열심히 했고, 기도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철야기도도 빠뜨리지 않았다. 수려하게 잘 생긴 편도 아니고, 이렇다 할 내놓을만한 반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잘 하는 청년이었다. 고등학교나 제대로 나왔는지, 좋은 대학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어느날, 침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기
한국의 많은 교회가 예배 중에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을 고백하고 있다. 요즘은 우리 교단에도 예배 중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 침신대 모 교수의 논문 발표에 의하면 사도신경을 사용하는 교단 교회수가 30%가 넘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신앙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언급하자니, 답답하다 못해 가슴이 조여 온다. 기도하면서 이 글을 쓴다. 그러나 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 이 글을 통해서 사도신경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과연 사도신경의 내용이 얼마나 성경적 믿음과 일치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의 내용을 두 번에 걸쳐서 나누어 쓰고자 한다.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들은 왜 사도신경을 믿음의 고백으로 인정할 수 없는가? 첫째, 익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도신경은 열 두 사도들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의 산물이요 유산이기 때문이다. 셋째, 사도신경은 참 성도들의 믿음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사도신경은 천주교와 신약교회를 함께 묶으려는 종교통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로마 카톨릭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 시대는 추락하기 쉬운 환경들이 널려 있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비상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 미소는 구부러진 것을 곧게 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비결은 성령을 받으면 된다고 한다. 거칠어진 심령을 옥토처럼 바꾸는 것도 하늘에서 성령이 임해야 한다고 한다.중국의 한 농부가 바닷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 허리를 펴고 쉬려던 찰나, 농부는 바닷 물이 해안에서부터 신속하게 휩쓸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바닷물은 마치 먹이를 보고 덤벼드는 성난 짐승같은 파도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밀려 나갔다. 순간, 그는 그렇게 밀려나간 바닷물은 바로 거대한 해일이 되어 덮쳐올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농부는 해안 근처의 논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살리려면 언덕 위로 도망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뛰쳐내려가 일일이 알릴 시간이 없었다.그래서 그는 자기 논에다 불을 질렀다. 불은 멀리서도 잘 보였기에 해안 근처에서 일하던 이웃들은 전부 다 일어난 불길을 보고 그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리고 언덕 꼭대기의 안전한 지대에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
과거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은 목회자의 설교와 교회운영 능력과 탁월한 지도력이 그 주류를 이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국교회의 병폐는 지도자의 독선적인 운영이 교회를 병들게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동역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요즘 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고 바람직한 교회가 되어 떠나가는 교회가 아니라 돌아오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리스도인들 중에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교회가 오히려 비리와 부패, 오만과 독선으로 지탄받는 일이 많아지자 실망한 교인들은 교회를 등지고 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는가?”라는 질문에 “믿음이 없어 떠난다”고 단정하고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물론 본인의 신앙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떠나는 사람에게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교회 내부의 문제가 교인들에게 실망과 상실감을 안겨 주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치유의 방법이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독선적인 교회운영을 함께 세워가는 민주적 교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이다. 재벌 총수가 죽으면서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들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때에, 누나가 동생과 대화를 나눈다. “아마 네가 5살 때쯤이었지. 이웃집에 놀러갔다 오더니 그네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 우리 집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무들이 작아서 그네를 만들 수 없었고, 그네를 만들 수 있는 단 한그루의 나무는 너무 비싼 나무인지라 엄마가 반대를 했지. 그때 내가 아빠와 함께 그네를 만들었다. 그 이튿날 너는 하루 온종일 좋아라 그네만을 탔지. 얼마나 많이 탔던지 코피까지 흘리더라. 네가 12살 때에 그네 다섯 개를 만들어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니?” 쉽게 말해 내가 너를 그렇게 사랑했노라고, 네가 정작 필요할 때에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너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니 이제 네가 나의 필요를 채워줄 때가 아니겠냐는 암시가 들어있을 법한 고백이었다. 이 말에 눈물을 글썽이던 동생이 어머니가 비밀로 해달라는 정보를 누이에게 전달해준다. 그 사랑에 감복한 것이다. 살다보면 현재를 놓침으로 인해 후회스러운 적이 몇 번 있다. 오래 전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던 시절 사고가 발생했다. 결혼식 광고를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사
무더운 여름, 산에 오르면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 자라는 늘 같은 자리에서 든든히 서 있는 나무들의 변함없는 모습에 마음이 머문다. 봄에 새순이 돋아 연초록의 작은 잎들이 뜨거운 태양볕에 푸른 잎의 싱싱함을 드러내고 서 있는 물푸레나무. 이름의 느낌처럼 푸르고 싱그러움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난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새로 자란 가지 끝에 작은 꽃이 피고 가을에는 갈색의 열매를 맺는다.산에서 자라고 혼자서 있는 나무들도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나무의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신이 나약해지고 현실이 가혹해져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인생의 물음이 바로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이다.조엘 오스틴 목사는 ‘최고의 삶’에 대해 “믿음이 이긴다, 이제 믿음으로 당신의 시대를 열어라”로 이시대의 상심한 이들에게 일상생활에서 희망의 메시지로 그의 저서를 읽는 동안 믿음과 용기로 충전 하는 상황도 있었다.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 하는 관점에서 그 사람의 그림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같은 상황의 문제라도 부정적인 마인드로 보느냐,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활하고 있느냐에
바다 속에서 괴물처럼 살아 가는 밀향고래가 있다. 하루에 500kg가량의 먹이를 먹는다. 길이가 20m, 무게100톤 이상이나 되는 이 동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먹이가 필요하다.고래는 오징어, 상어, 물개, 심지어 물에 빠진 사람까지도 먹는다. 고래는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삼킬 수 있다. 이가 전혀 없거나 조금 나있는 작은 고래라도 조그만 해양동물, 물고기, 새우, 해파리 등을 수 없이 먹어 댄다고 한다.수염고래는 게으르기로 유명하다. 아주 느린 동작으로 먹이를 먹는다. 단순히 입을 벌린 채 물 속을 다니다가 조그만 해양 동물들이 턱에 걸리면 입을 닫는다고 한다.그러면 물은 빠져나가고 그 먹이들은 목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또 입을 벌려 먹이가 또 다시 턱에 걸리기만을 기다린다. 바다에서 바닷속이라 할지라도 성장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자주 이동을 하면서 생활을 한다.여름에는 북쪽 바다로 겨울이 모면 남쪽 바다로 이동을 한다. 고래는 태어난 후 7개월 동안은 소, 양, 새끼와 같이 어미의 보호를 받는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 삼킬 수 있을 때까지 어미의 젖으로 자라난다.킬러고래라고 부르는 돌고래의 한 종류는 떼를 지어 다니며 자기보다 큰 것들을 공격해
얼마 전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TV방송과 언론들은 120년의 한국교회를 위기라고 결론을 내려 충격을 주고 있다.기독교의 유력 인사들과 단체에서는 방송중단을 건의했으나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KBS 2TV 생방송 시사 투나잇에서는 “한국사회를 말한다”가 한국교회를 잘 분석했고, 교회의 잘못된 점을 제대로 지적했다는 후속방송까지 내보냈다. 과연 그럴까? 교회가 분석의 대상일까? 교회를 일개 프로그램의 소수 인력이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을까? 방송에서는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기획의도를 드러냈고 그 과정에서 몇몇 교회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그리고 여론조사로 구색을 맞췄다. 기독교가 방송사의 분석대상인가 하는 점은 잠시 접어두고, 기왕에 교회를 진단하려면 신뢰성 있는 준비가 필요했다.우선 검증된 다수의 인력과 충분한 기간을 들여 연구를 하거나 인정할만한 연구기관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했어야 한다. 짧은 기간에 몇 명의 방송 스태프가 1,200만 명의 기독교인을 분석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프로그램은 과일칼로 고래를 해체하는 몰골이 되고 말았다. 기왕 분석에 나섰다면 공과를 제대로 조명해야 했다. 방송은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끌고
집에서 가까운 보문산 둘레길을 걷다가 허리도 구부정한 어르신이 힘겹게 낫질을 하고 계신다. 단칼에 꺾인 풀 사이에는 비비추(뜰에 심는 백합과 다년생초이며 7~8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라는 관상식물이 있었다.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인데 ‘할머니 눈에는 풀 이상의 의미가 없으신가보다’ 하면서 “이거 조금 있으면 꽃도 보실텐데요”하고 말 끝을 흐렸더니 할머니 말씀이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잡초가 별거야? 제 자리가 아니면 다 잡초지. 내가 몰라서 잡초가 아니라 꽃잔디길을 만들려고 하는데 자꾸만 삐져나와서 꽃잔디 자리를 차지하니까 잡초가 되는 거지.” 미국에서 살다온 지인 얘기로는 미국에서 마당 잔디 관리의 주적은 번식력 강한 민들레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이 잔디밭의 잡초제거에 별 약품을 다 써보아도 효과가 없자, 온갖 식물에 관한 정보를 당연히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곳이니 뾰쪽한 답이 있으리라 기대를 하면서 미 농무성에 편지를 띄웠더니 돌아온 대답이 “Learn to love weeds(잡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시오)”였다는 이야기를 했다.어떤 대중가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새 정부 출범 6개월을 앞두고 발표된 세제개편안으로 인하여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중산층에게 집중적으로 적용된 세제개편안과 증세는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지지율까지 떨어뜨렸다. 급기야 정부는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세제재편안과 증세에 대한 세 부담 기준선을 상향 조정하는 땜질 처방을 내놓았지만, 이미 돌아선 민심은 돌이킬 줄 모르고 연일 들끓고 있다. 야권은 마치 물이라도 만난 듯 어색한 몸짓을 촛불 아래서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를 맘껏 즐기며 안중에 국민이 없기는 매 한가지다.복지와 세금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복지는 외치고 증세는 비난한다.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복지는 원하지만 증세는 싫다는 것이 오늘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의 정서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책임이 제일 크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복지와 관계하여 세금증세의 필요성을 인정 하지만 과세 대상과 적용에 대한 불합리한 형평성에 대해선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작금의 사태는 복지와 세금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데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세제개편안에 종교인 과세가 포함됐다. 그동안 갑론을박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