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건반은 88개다(중략). 모두 똑같은 길이와 높이로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모니가 아니라 소음이다.” 장문정 저(著) ‘사람에게 돌아가라’ (샘앤파커스, 4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베토벤이 힙합곡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별 볼일 없는 작곡가라고 한다면, 수박이 호박을 보고 너는 왜 멋진 줄이 없냐고 한다면, 가로수들이 전봇대를 보고 너는 왜 나뭇잎 하나 없냐고 한다면, 짬뽕이 짜장면을 보고 너는 왜 얼큰한 국물이 없냐고 한다면, 코끼리가 돼지를 보고 네 코는 누가 베어갔냐고 한다면, 솔방울을 먹을 수 없다고 소나무를 쓸모 없는 나무라고 한다면 미칠 것 같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소인(小人)에게는 다름이 곧 틀림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이라도 생각의 다름이 있습니다. 다름은 다양성이고 각 개별체의 특별함입니다. 수박이 부럽다고 호박이 제 몸에 줄을 그을 필요 없습니다. 태양이 부럽다고 달이 제 몸을 불덩이로 태울 필요도 없습니다.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월든(이레
(2) 여가와 친교의 장 노년기에 경험하는 소외감과 고독감, 그리고 역할 상실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돕는 방법은 좋아하는 여가활동이나 의미 있는 일의 장을 열어줌을 통해 가능하다. 노인사역의 기회를 제공해 교회 내부 자원의 역량을 모아 노인들이 요구하는 여가활동의 기회를 마련하며 친교의 장을 만들어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노인들 스스로 의미 있는 사역에 동참함으로 역할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며 인생에서 보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교회에 보탬이 되는 내용으로 사역을 구성해 노인들의 욕구도 충족시켜 자기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며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게 함으로 역할 상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3) 목양과 선교사역 노인사역은 일반 사회복지사업과 차별화되어 성경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한 사역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인들의 중추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분야는 기도사역일 것이다. 기도는 젊은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운 노인들이 집중할 수 있는 사역이며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더 깊어지는 특성이 있기에 오랜 신앙의 경험을 소유한 노인들이 매진함을 통해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설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쉽고 정확하게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본문 설명 중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청중에게 이성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본문 설명을 통해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본문 설명은 설교자에게도 유익하다. 알렌 박사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말씀이 설교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 성경의 권위와 강해설교는 서로 연관이 있다.” 강단에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할 때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권위를 경험하게 된다. 본문을 바르고 적절하게 설명할 때 설교자는 권위 있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유익을 얻게 된다. 4. 본문이 이끄는 설교를 위한 본문 설명의 특징 미주에서 본문이 이끄는 설교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알렌 박사는 설교에서 본문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설교는 성경의 본문에 기초를 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본문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석해야 한다. 성경 본문은 단순히 설교의 재료가 아니다. 본문은 설교의 근원이다.”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본문이 담고
“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으면 이단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습니다. 제가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처음 입학했었던 1980년대초에만 해도, 침례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공예배에서 암송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의 기독교계에서 (비록 일부 기독교지도자들에 의해서겠지만) 이단시 되기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글귀인 사도신경 그 자체가 이단분별의 잣대가 될 수 있습니까? 왜 꼭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만 고백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사건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저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저를 살리시기 위해, 저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그리고 저를 대신해서, 십자가 형틀에서 고통을 받으셨고 피를 흘리셨고 죽으셨습니다”라고도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형화된 문귀대로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다고 그를 이단시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 침례교인들은 신조(신경)뿐 아니라 위대한 개혁가나 신학자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3) 이 말씀은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성장하면서 차츰 고통으로 이해가 됐다. 인생의 시험엔 자신의 정욕에 미혹되는 시험, 멸망케하는 마귀의 시험이 있으나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의 축복과 삶의 여러 가지 시험은 극복해 승리해야 한다. 만 7세가 되니 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외가에 가니 5학년 전일순 누나가 나를 불러서 입학시험을 미리 가르쳐 줬다. 일본 선생 앞에 반듯이 서서 경례를 하고 이름은 한명국이가 아니고 “니시하라 하데히루 상” (西原永春)이라고 부르면 “하이”(예)라고 똑똑하게 대답하고 일본말로 1부터 10까지 숫자를 말하라하면 “이찌 니 산 시 고 로꾸 시찌 하찌 규 주”라고 시키는 대로 대답해 시험 합격으로 1944년 9월 1일 도동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 곧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가장 혹독한 시험에 합격해 믿음의 조상이 됐고, 동방의 의인이요 가장 큰 부자인 욥에게 내린 가혹한 절망의 시험에 합격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이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진 십자가의 참혹한 시험의 결과는 인류구원과 부활의 영광에 오른
12세기 중국 송나라는 금나라의 확장에 밀려 멸망 직전이었습니다. 급기야 금나라가 공격을 하자 북(北)송의 휘종은 아들 흠종에게 제위를 넘겨주고 남쪽으로 피신했고, 흠종도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수도 개봉을 포위한 금나라를 돈으로 회유할 생각만 했습니다. 이때 기막힐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부상서 손부(孫傅)가 도성의 방어를 도교 도사(道士)에게 맡기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이때 곽경(郭京)이라는 도사가 도술을 부려 육갑신병(六甲神兵)을 부르기만 하면 금나라를 무찌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흠종은 기뻐하며 그를 불렀습니다. 도사 곽경은 출생일시가 육갑에 맞는 7,777명의 백성을 선발해 육갑신병을 구성한 뒤 성문을 활짝 열고 출병했지만 이길 리 만무 했습니다. 결국 금나라 군대가 성문으로 진입하여 쉽게 도성을 점령해 버리고 북송은 멸망했습니다. 금나라 태종은 잡혀온 송나라 흠종에게 중혼후(重昏候), 그 아버지 휘종에게는 혼덕공(昏德公)이라는 칭호를 내려 주었습니다. 이는 모두 정신이 혼미한 사람,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모욕적인 칭호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4장을 보면 블레셋과의 전쟁 때 하나님이 아
이 글의 목적은 ‘본문이 이끄는 설교’를 위한 본문 설명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해 설교현장에도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필자는 설교의 기능적 요소를 설명하고, 본문 설명을 위한 자료와 효과적인 본문 설명을 위한 점검 사항과 본문 설명을 위한 기술을 제안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한국 침례교회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본문 설명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고 다양한 본문 설명 방법의 기술을 소개하려 한다. II. 설교의 기능적 요소 설교는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과 하나님의 계시된 메시지를 성령의 능력으로 잃어버린 영혼에게 전해 중생을 경험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닮아 풍성한 삶을 누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도록 안내하는 신성한 소통 행위이다. 이와 같이 전인격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설교는 청중의 다양한 영역에까지 영향을 끼쳐야 한다. 이러한 설교를 만드는 것은 마치 조립식 집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좋은 설교라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기능을 가진 건축재료(설교의 기능적 요소)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각각의 기능적 요소들이
교육의 과정은 그들이 지니는 기본적인 특성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노인들이 처한 환경과 필요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이뤄져야 하며 궁극적으로 구원과 영적성장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필요를 발전시키는 목표로 진행돼야 한다. 이와 같이 노인목회는 재교육의 과정을 통해 인생의 재설계를 도우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자산화해야 할 것이다. 4) 노인자산에 대한 이해 증진 교회가 노인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역자를 포함한 성도들이 노인자산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해야 한다. 성경은 육신적으로 연약한 노인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 90:10)이라 말하며 육신의 연령은 70세에 이르면 유약해지는 것으로 묘사했으나 그가 광야에서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며 출애굽 할 당시 나이는 80세의 노인이었다. 이러한 성경의 예는 인간의 신체연령은 70세에 다다르면 연약해지나 인생의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한 지혜는 오히려 노인의 시기에 더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혜서로 일컫는 잠언과 인생의 교훈을 담은 전도서의 배후에 있는 저자들은 대부분 노인이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안겨 주리라” (눅6:38) 울릉도 저동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은 배석문 선생이셨다. 배석문 선생의 딸 배정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현재 용인시 명선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배성태 목사이다. 배성태 목사는 울릉초교의 초교파 목양회 회원으로 훌륭하게 목회하고 있는데 교회 소식지인 우모하 비전센터에 은혜로운 글이 실려 함께 나누고자 한다. 예배당, 구 본당, 제1교육관으로 불리던 이곳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봄에 새 움돋는 나무들처럼 우모하비전센터로 새 옷을 입는다. 60년 전 졸지에 큰 아들을 잃은 설움에 식음을 전폐하고 죽기만을 기다리던 여인. 이 여인이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께서 매일 찾아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줬다. 그렇게 두 달 후 여인은 깊은 늪을 헤치고 나와 예수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감격과 눈물로 소원했다. ‘주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교회를 지어 바치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을 적금 부어 만든 5000만원과 덜 입고 덜 먹고 저축한 5000만원으로 둘째 아들이 내어 놓은 터 위에 우리 명선교회가 섰다. 34년 전 한 가족의 헌신으로 세워졌던
신조(신경)들 가운데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정확하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떤 공의회(종교회의)에서 결정됐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신조들의 영향을 받아 4~5세기경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약 8세기 중반 경에 그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두제자들이 한 문장씩 진술했던 것들을 모아서 사도신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신경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문헌적 역사적 증거가 전혀 없는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유럽의 북방지역으로부터 남하한 야만인들(Barbarians)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 사도신경은 그들에게 기독교신앙을 요약해서 가르치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중세시대에 로마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었던 “라틴 벌게이트”(Latin Vulgate)를 직접 읽을 수 없었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기독교복음의 내용을 잘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에 당시 성도들의 신앙과 신앙생활에 좋은 안내자 역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5절의 말씀입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거리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마구 말하지 않고 마구 행동하지 않는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제주도에 가보면 엉성해 보이는 구멍 숭숭한 돌담들이 있습니다. 이 돌담은 거센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바로 구멍의 간격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간격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 늘 신선합니다. 지구가 태양을 사랑한다고 하여 뛰어든다면, 달이 지구가 좋다고 달려와 안긴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별빛이 고운 것은 그 빛이 아주 멀리서,아주 오래 전에 출발해 지금의 우리 눈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별이 지척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한갓 돌멩이에 불과하다고 업신여겼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 때 보게 됩니다. 건축물의 기둥들도 서로 좋은 거리를 두며 세워져 벽과 지붕을 받치고 있습니다. 별과 별 사이에도, 꽃과 꽃 사이에도,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간격이 있어 서로 자라듯이 당신과 나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가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칼릴 지브란은
세상 사람들의 죄의 기준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 법을 지키면 선이 되고, 어기면 죄가 됩니다. 즉, 법을 지키면 의인이 되고 법을 어기면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제정하신 법을 기준으로 하여 볼 때면 가장 낮은 차원의 선인 것입니다. 때때로 사람이 정당성을 근거로 제정한 법이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 사례로, 이 지구상에는 동성애를 합법화로 규정해 놓은 나라가 24개국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 보기에는 죄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는 큰 죄로 여겨지는 것도 있습니다. 2018년 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천안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과 함께 동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법대에 들어가기도 어려운데 그는 엄청난 과정 속에 변호사가 됐고, 또한 현재 국회의원직을 맡아 일하고 있는 그가 새삼 달리 보였습니다. 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전문성이 있는 그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서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
그렇다면 한국 침례교회의 설교는 어떠한가? 한국 침례교회는 성경을 신앙생활의 최우선으로 하는 신앙고백이 있다. 하지만 강대상에서 그날 예배 중 봉독한 성경 본문 말씀을 얼마나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침례교회의 성경중심의 신앙전통을 유지하고, 본문 설명이 설교 중 잘 되지 않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본문이 이끄는 설교(Text-driven Preaching)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힘쓰는 설교 운동이다. 강해설교와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동의어이다.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청중들이 본문 밖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안내하는 설교이다.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본문에 더욱 충실한 설교를 지향하므로 본문 설명을 더욱 강조한다. 그렇다면 본문이 이끄는 설교가 위에서 제기된 현대 설교에서 본문 설명을 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 위에서 제기된 설교 중 본문 설명이 잘 되지 않은 두 가지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결점을 제시한다. 첫째로, 본문이 이끄는 설교는 성경의 충분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설교대학원 학장인 데이빗 알
특별히 노인목회는 영혼구원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지역과 주민들에게 봉사와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영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사역으로 진행돼야 한다. 노인목회는 궁극적으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우며 목회적인 노력을 통해 영적 필요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인도되도록 영적공급을 제공하는 사역이 돼야 한다. 노인목회는 신앙훈련을 통해 영적 필요를 제공하며 여기에 더해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인생을 회고하고 정리하며 죽음에 대한 의미와 경험에 대처하도록 도와야 한다. 인생을 평가하고 점검하며 보완함을 통해 조금 더 만족스러운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우며 나아가 죽음을 초월하는 삶의 소망을 제시해 생활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교회는 노인사역을 통해 인생을 통합하도록 도우며 구원의 확신과 영생의 소망을 제시하고 죽음에 대비해 현세를 살아가도록 인도하며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의 삶과 천국의 소망을 연결시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3) 인생을 재설계를 위한 재교육 최윤식은 고령화가 몰고 올 한국교회의 위기를 예측하며, 은퇴 후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계하는 일의 중요성을 교회가 인지하는데
침례교인들(Baptists, Baptist Christians)에게 붙여져 있는 몇 가지 별명들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그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불립니다. 물론 여기서 “그 책”은 성경책을 의미합니다. 구·신약 성경 66권을 신앙과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권위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침례교회들이 밀집해 있는 미국의 남부와 남서부 지역을 “Bible Belt”(성경대, 聖經帶)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세기 중반기에 크게 활약했던 침례교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설교 중에 “성경이 말씀하기를”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침례교인들은 성경을 “오류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권위”로 믿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의 핵심구호였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문자 그대로 충실하게 믿는 것이지요. “그 책의 사람들”이라는 말과 밀접하게 연관된 또 다른 별명은 “신앙고백들의 사람들”(People of the Confessions)이라는 말입니다. 침례교역사에서 침례교인들은 많은 신앙고백들을 작성하고 채택해 발표했습니다. 영국과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