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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쉼 (창 1:2~2:3)

유수영 목사와 함께하는 창세기 여행 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여섯째 날의 창조를 마치신 하나님은 처음으로 ‘심히’(‘참’)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쩐지 이 부분에서 그간 미소만 짓던 하나님이 크게 웃으며 기뻐하시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이렇게 창조의 설계는 실제 세계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만드시기로 결정하면서 세우셨던 다른 계획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죠.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기 전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 자체는 이것이 마지막이었기에 하나님은 안식을 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하나님의 일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하나님도 쉼이 필요하다는 점은 어쩐지 좀 낯설게 느껴집니다. 전능한 신이고 시간과 공간을 모두 뛰어넘는 분이라면 휴식 따위는 필요치 않을 것 같거든요.


때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하나님의 이미지에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자의 이미지를 덧붙이곤 합니다. 신은 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분이며, 그가 할 수 없는 것은 세상에 없고, 엄중한 그분의 힘 앞에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생각은 사실 기독교적 하나님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람의 선입견에 더 가깝죠. 창세기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더 정확하게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곳곳에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죠. 시작하고 끝을 맺으시는 하나님, 안식하시는 하나님,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시고, 우주를 창조하시되 작은 생명이 살아가는 환경까지도 고려하시고, 계획을 다 이루시고 나서는 참 좋다고 기뻐하는 하나님이심을 창세기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그분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된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특히 안식이 그렇죠. 일곱째 날의 안식을 혹자는 ‘하나님이 쉼이라는 개념을 창조하셨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공감이 가면서도 동의하고 싶지는 않네요. 일곱째 날의 안식을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로 표현하는 일에 거부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쉼은 때로 일의 연장이 되기도 하는데, 휴식이라는 이름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처럼 끔찍한 일도 없습니다. 쉼은 아무 조건 없는 쉼 그 자체여야 합니다. 여섯 날 동안의 창조를 마치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의 성취에 그 어떤 부족함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섯 날의 창조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했으니까요.


수많은 계획과 걱정, 신경 써야 하는 일들에 파묻힌 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우리 삶에 이런 쉼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완전히 손을 떼고 쉬셨던 하나님이 부럽고 멋져 보입니다. 


여섯째 날 마지막에 창조된 인간은 다음 날 하나님이 쉬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것입니다. 즉, 오늘날의 일요일이 일주일의 첫날인 것처럼 사람의 첫날이 하나님의 쉼으로 시작된 셈이죠. 섭리대로 창조된 아름다운 세계와 하나님의 쉼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어렴풋한 책임감을 가졌을 겁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상을 다스리도록 창조된 인간으로서 천지 만물이 거룩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잘 인도해야 한다는 부담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부담은 인간이 오히려 쉼에서 멀어지도록 작동했을 수도 있겠죠.


아마도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쉼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 중요한 원인일 것이고요. 사람이 과연 자기 힘과 의지로 참된 쉼에 이를 수 있을까요? 참된 쉼을 누리고자 한다면 진정한 쉼을 누리시는 하나님과 동행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여러 이야기를 통해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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