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랑하는 내 주님을 기다리네! 가실 때 다시 오신다던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내 마음의 창가에 기대서서 먼 하늘 바라보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내 주님의 발자국 소리 들리는 것 같아 어느새 한줄기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네! 철없는 내 마음은 이름 없는 한 마리의 작은 나비가 되어 먼 창공 높은 하늘로 사랑하는 내 주님 마중 간다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길목에서 우리 곁에 다시 부활의 계절이 찾아왔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절망과 어둠 속에 갇힌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빛을 선사한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다. 4월 5일, 전국 각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일제히 부활의 기쁨을 찬양할 준비에 분주하다. 각 교단과 연합기구들은 이미 준비위원회를 가동하며 부활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대규모 집회와 화려한 성가대 찬양 뒤편에 감춰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돌아보면, 과연 부활의 진정한 의미가 현장에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주요 기독 언론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의 핵심 화두는 ‘평화와 희망’이다. 이는 장기화된 경제 침체와 양극화,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긴장 고조 속에서 교회가 세상에 던져야 할 마땅한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선언문과 구호들이 행사장의 열기가 식음과 동시에 잊혀졌던 과거를 기억한다. 진정한 부활 신앙은 박제된 교리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의 삶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뢰도 하락과 다
언론(言論). 사전적 정의로는 매체를 통해 사실을 알리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말한다. 하지만 이 단어 앞에 ‘교계’라는 두 글자가 붙는 순간, 그 정의는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복잡하고도 숭고한 무게를 갖게 된다. 생애 첫 직장으로 침례신문에 입사해 현장을 누빈 시간은 그 무게의 실체를 마주하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며 산다. 평신도로서, 목회자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저마다의 역할에 책임을 다한다. 교계 언론은 이 모든 이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신앙의 프레임’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가장 고통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언론의 본질이 정직과 진실을 바탕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교계 언론은 그 위에 ‘기독교적 가치’라는 거대한 기준을 하나 더 얹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기독교적 가치’는 때로 양날의 검과 같았다.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지점은 ‘은혜’와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조건적인 희생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당한 절차나 상식이 가려질 때, 혹은 ‘은혜’가 갈등을 덮어버리는 무기가 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초년병
현대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연결돼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소리 없는 죽음이 일상이 된 ‘고독한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 불이 꺼진 창문 너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는 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자화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2024년)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중은 전체의 35%를 넘어섰고 통계조사 전년도인 2023년 한 해에만 약 4000명의 이웃이 차가운 방 안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구축한 현대 문명의 공동체성이 얼마나 처참히 무너졌는지를 증명하는 엄중한 지표다. 유튜브 등 미디어와 현장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듯, 고독사의 핵심 원인은 단순한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관계의 단절’에 있다. 3월,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시작의 활기가 넘치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어진다. 사회적 고립이 심화하며 발생하는 이 비극적인 현상에 대해, 이제 교회는 영혼 구원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넘어 실질적인 ‘사회적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교회는 지역사회 내에서 가장 촘촘하고 건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유일한 공동체이기
20세기 중반부터 타 교단에서부터 여성 목사 안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성 목회자들의 활동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단 내의 일부의 교회들도 여성을 목사나 사역자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의 가정을 포함한 사회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성평등과 여권 신장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문화⋅사회 변화에 교단 내의 지도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정확히는 1979년 근본주의자들이 총회를 장악)부터 2000년 전까지 교단 내에서 벌어졌던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의 싸움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하여 교권을 장악함으로써 여성의 사역과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 무오성과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고수해 여성 목사 안수 및 사역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은 대표적인 침례교 전통 가운데 하나인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사역의 문제를 지역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나름 균형 잡혀 보였던 교단의 양 세력의 균형이 1984년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여성목사 안수 금지를 결정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결의안은 각
최근 ㈜지앤컴리서치가 조사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다. 신뢰와 불신의 격차는 56.4%포인트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호감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구조적 불신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는 몇 차례의 조사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뚜렷한 반등 없이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특정 사건이나 논란 때문이라기보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점차 굳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교회 성장이나 교세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회가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이미 다른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교회 조직뿐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과 신자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서는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3.7%로 나타났으며, 개신교인의 말과 행동 역시 불신 응답이 7
최근 ㈜지앤컴리서치가 조사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다. 신뢰와 불신의 격차는 56.4%포인트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호감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구조적 불신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는 몇 차례의 조사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뚜렷한 반등 없이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특정 사건이나 논란 때문이라기보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점차 굳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교회 성장이나 교세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회가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이미 다른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교회 조직뿐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과 신자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서는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3.7%로 나타났으며, 개신교인의 말과 행동 역시 불신 응답이 7
처음부터 조선의 왕이 적색 곤룡포를 입은 것은 아니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이는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완전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권지고려국사(임시로 고려를 다스리는 사람)’라는 직책만 내렸던 굴욕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후 태종 1년(1401) 정식 책봉이 이뤄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세종실록”에서 세종 26년(1444)에 ‘대홍직금곤룡포’가 등장한다. ‘홍직(紅織)’은 적색으로 짰다는 뜻이다. 이 무렵부터 적색 곤룡포가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고종(조선 26대)은 황색 곤룡포를 입게 됐을까?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승리하게 됐다.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 황색 곤룡포의 착용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는 외교 질서의 변화와 함께 상징 체계도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권력은 색으로도 드러난다. 그러나 색이 바뀌었다고 권력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곤룡포는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단종의 비극이 보여주듯 권력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조선의 왕이 입던 곤룡포는 단순한 왕의
본보가 지령 1600호를 맞이했다. 창간 이후 71년 동안 본보는 침례 교회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현장을 지켜왔다. 교단과 기관, 지방회와 연합회, 그리고 개교회가 협력하는 사역의 ‘바로미터’를 제시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위대한 명령을 수행해 왔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도 본보는 침례교 정체성을 수호하는 파수꾼이자, 전국 3500여 교회를 하나로 묶는 영적 가교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지나온 길에는 폐간의 아픔과 재정적 위기 등 잊을 수 없는 고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교 가족들의 애정 어린 사랑과 기도, 물질의 후원은 본보의 문서 사역을 끊임없이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숭고한 헌신을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본보를 위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교회와 목회 동역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연의 사명이 있으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영혼 구령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교회가 목회를 포기하지 않도록 조력하며, 이웃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전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이제 침례 교회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 그 중에서 고고학박물관에 가신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사람 아닌 사람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사람 모양의 토관들이다. 이 유물은 지금부터 3300~3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용한 것이다. 그 사람들의 관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가자에 있는 텔 테이르 엘-발라(tel Deir el-Balah)에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유명한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모세 다얀(Moshe Dayan)이 개인적으로 무단 발굴해 소장했다가 1981년 박물관에 기증․판매된 ‘다얀 컬렉션’의 일부이다. 이 토관은 보통 사람 키보다 크고(160~195cm), 이집트 오시리스 수염과 팔 모양을 한 모습으로 마치 이집트 미라를 위한 관 모양과 유사한데 관 안에서는 고인의 유골과 함께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토기, 장신구, 청동거울, 무기 등이 함께 발견됐다. 이 토관의 주인공들에 대한 규명은 명확하지는 않다. 이집트 사람과 밀접한 교류 지역이니 이집트 사람일수도 있고, 아니면 이집트 장례문화의 영향을 받은 블레셋 사람 또는 가나안 사람일 수도 있다. 아직 DNA분석까지 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 고고학 박물관에 갈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