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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도 왕만큼이나 자기를 부인할 수 있다!

이창우 목사
카리스아카데미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대부분 부자 청년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그는 율법적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십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날 이와 같은 청년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결국, 청년은 근심하다가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증언입니다. 한번 가정해 볼까요? 만약 이 청년이 재물을 다 팔았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혹은 이 청년에 대한 세상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먼저 세상의 판단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날 정말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전 재산을 다 바친 청년이 있다면, 세상은 이 청년을 존경할까요? 존경은커녕, 아마 미쳤다고 하진 않을까요? 그를 괴짜라며 비웃거나 어리석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 그 부모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대성통곡을 할지도 모를 일이고 당장에 그를 잡아와 정신병원 의사의 감정을 받게 한 후에, 아들이 정신이 나가서 한 행동이니, 재산을 도로 돌려달라고 소송을 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청년에게 이런 미친 짓을 하라고 요구하신 겁니다. 이제 이 요구조건대로 청년이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선한 행동, 단 하나의 고상한 결심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세상에서 배운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어쩌다 행한 하나의 작은 선한 행동만 봐도 놀랍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조차도 세상에서는 보기 드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의인’이라고까지 부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와 다르게 가르칩니다. 재산을 파는 것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그것은 기껏해야 시작일 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좋은 시작일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재물을 나누어주는 것은 첫 번째 단계입니다. 즉, 이것은 십자가를 떠맡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지속적으로 행해야 하는 다음 단계가 필요합니다. 곧, 다음 단계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청년이 한 번에 재산을 다 팔았다고 해서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런 일은 날마다 일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여기에 ‘날마다’라는 단어를 추가한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또한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사도 바울처럼, 우리의 모든 이기심에 대하여 죽지 않는 한, 이 세상에 대하여 날마다 죽지 않는 한,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따를 수 있을까요? 


하나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이런 요구조건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잣대로 크리스천이 돼야 한다면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 없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주님께서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단돈 1000원 정도를 요구했다고 가정해 볼까요? 부자 청년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재산이 많은 부자 청년에게 단돈 1000 원을 요구하는 것, 그에게 아주 보잘것없는 일로 보이는 것을 요구하는 것, 이것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참나, 별꼴 다 보겠군. 당신을 따르는 일은 아주 쉽군요. 하지만 당신의 제자가 되는 것은 싫습니다. 많은 불쌍한 사람들이나 불러서 제자 삼으시죠.”


아마 대충 청년의 반응은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청년은 사소한 일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도 아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자기 부인이란 겸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소한 일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일도 얼마나 어려운가요!


당신은 고상한 자기부인을 한 적이 있는지요? 그래서 많은 재물을 바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주 사소한 일에서 자기부인을 한 일이 있습니까? 기독교의 요구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요구조건이 시시할수록, 더 작을수록, 더 하찮을수록,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모욕감은 더욱 증폭됩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의 찬양을 빼앗습니다. 이때, 겸손은 곧 자기부인이고, 과연 이 요구조건은 가혹했나요? 당신은 어떤 자기부인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나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처럼, 마치 외딴곳에 있는 것처럼 산다면, 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어렵습니까? 당신이 누군가의 칭찬을 들을 때, 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더 쉬운가요?


어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것이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귀감’이 될 수 있고, 그는 이런 일을 통해 명예와 존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자 청년에게 단돈 1000원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오히려, 이런 요구는 찬양과 명예를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에 있어서 어떤 본질적인 차이도 없습니다. 많은 것을 요구했든, 작은 것을 요구했든 상황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이 그의 상황에 따라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거의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이런 점에서는 거지도 무조건적으로 왕만큼이나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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