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미처 다 이해되기도 전에 세상은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다. AI의 혁명, 첨단과학의 시대, 자동화 시대 등 이 시대를 칭하는 많은 용어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때로는 혼란스럽게도 한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이제 기계가 사람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것은 편리함과 예측 불가능한 변화라는 양날의 칼을 마주하며 사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시간 지속된 팬데믹은 사람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며 소통하는 일상을 마비시켰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을 매우 고독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편리함이 주는 부작용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편리함의 중독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속절없이 밀려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현실과 유사한 비현실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으로 가장 빛나야 하는 젊음이 기계의 통제와 가상 공간이라는 인위적 환경에서 시름시름 시들어 가고 있다. 어쩌면 일부 특정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모두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불안감과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 많은 관계가 갈등과 분열이 되기도 하고 마음을 다해 믿었던 신뢰가 깨어지고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을 겪으며 개인의 근원적인 외로움은 점점 깊어지기도 한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 삶은 그 많은 것들의 역습을 받는 현대인은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고 이것을 미처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삶은 점점 무기력해진다.
이런 어두운 현실이지만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이자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행진을 하면서도 가끔은 나만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을 위한 음악을 소개한다. 바로 리스트(F. Liszt, 1811∽1886)의 피아노 작품 “위로(Consolations)”라는 음악이다.
19세기의 서양 음악의 한 획을 그을 만큼 탁월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리스트는 보수적 잣대로 보면 그다지 그리스도인다운 면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변화와 방황의 끝에서 결국 인간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자각과 함께 신앙으로 다시 돌아왔던 리스트가 음악으로 표현한 삶의 결론은 선한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나눔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의 창작의 근본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1849년경, 작곡가가 30대가 되기 바로 전에 작곡된 “위로”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된 작품으로 6곡의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음곡 형식의 음악이다. 6곡 모두가 아름답고 그윽한 선율로 가득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곡은 3번으로 피아노의 선율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에 기름을 바르는 듯한 따뜻함을 가진 음악이다. 이 곡은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자인 나단 밀스타인(Nathan Milstein, 1904∽1992)은 이 곡을 바이올린곡으로 편곡해 자신의 연주회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하기도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것은 리스트의 빼어난 선율과 음악적 표현이 어떤 악기로 연주해도 그 아름다움이 유지될 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씀으로 채우고 기도로 풍성해지는 것이고 이것이 삶의 바른 자세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날마다 이런 성화의 과정이 연속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사노라면 나를 위한 작지만 특별한 위로의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고 이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음악이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풍요롭고 충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리스트의 음악은 더 귀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초여름 리스트의 피아노 선율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는 잠시 여유로움을 갖는 작은 호사를 만끽해보면 좋겠다.
최현숙 교수
한국침신대 융합실용기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