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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키르케고르 산책-6
이창우 목사
카리스아카데미

다윗이 얼마나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복수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다윗의 복수의 기도는 여러 편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이 억울한 일을 당합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복수는 더욱 강력합니다. 인간의 복수는 미워하는 자를 벌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복수는 미워하는 자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벌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에게 죄를 짓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삼대, 사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릴 것이다”(출 20:5, 새번역).


그렇다면, 다윗의 복수의 기도는 정당한가요? 여러분의 복수의 기도는 정당합니까? 하지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는 거름보다 더 심한 악취가 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복수보다 더 끔찍하지 않습니까? 


믿음은 세상을 이긴다고 합니다(요일 5:4). 이런 식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세상은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다윗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는 다르게 그의 사랑은 변화와 변조의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마도 그의 원수를 미워하는 방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원수 갚은 일을 하나님께 맡겨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가 복수를 여호와께 남겨 놓았을지라도, 왜냐하면 복수는 그분께 속한 것이니까요. 그는 복수의 달콤함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인간의 미약한 복수보다도 훨씬 더욱 두렵다는 것을 아는 것은 더욱 달콤하고 시원한 청량음료 같습니다. 인간은 그의 원수를 저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경건치 않는 자와 그의 후손들을 자자손손 저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인간의 어떤 복수도 하나님의 복수만큼 끔찍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하나님께 복수의 기도를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복수는 훨씬 더 달콤하니까요. 우리는 약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복수할 만한 힘과 능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하나님께 복수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복수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 다윗의 기도를 인용하면서 당신의 원수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기도의 순간에 당신의 원수를 묵상하며 당신의 원수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사랑이 죄를 덮는다고 말할 때에, 당신은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죄를 덮었습니까? 아무리 복수의 기도가 시원하고, 아무리 복수의 기도가 달콤하다 해도, 아무리 하나님의 복수가 어떤 복수보다 통쾌하다 해도, 이 기도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그때, 사랑이 가장 태평한 순간에도 복수의 불안은 항상 한쪽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외눈박이가 되기 원하는 것입니까? 물론, 당신은 두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기보다는 원수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이것은 눈이 사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까? 한쪽 눈으로는 하나님을 보고, 한쪽 눈으로는 원수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이 거의 꿈을 꾸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분노는 앉아서 조용하게 받았던 것과 줬던 것, 내 것과 네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주고도 자신이 준 것을 모릅니다. 아니, 자신의 가장 값진 것을 주고도 기뻐합니다. 


그러나 준 것을 계산하고 있고 내 것과 네 것을 따지고 있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분노의 종입니까? 물론, 누구든지 순교의 길은 열려있습니다. 사랑의 순교자가 될 것인가, 분노의 순교자가 될 것인가의 차이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것이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입니다. 본질과 다른 것으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오직 단 하나의 것은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모든 것을 줍니다. 이 사랑은 모든 것을 주기 때문에 빼앗길 것이 없습니다! 요구하기 위해 남겨진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결국 잃어버릴 것도 없습니다. 사랑은 저주받을 때, 축복하고 또 축복합니다. 사랑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원수도 사랑의 이웃입니다(마5:44). 그때 사랑은 복수를 여호와께 남겨 놓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분께서 여전히 원수에게 더 큰 긍휼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


이제 우리는 이 사랑이 어떻게 허다한 죄를 덮고 숨기는지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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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침례교회로 세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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