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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기고

고영희, 김정은 우상화의 아킬레스건

정교진 박사의 북한 바로보기 - 18

이번 주 월요일에 우리학교 대학원 북한학과 학위논문 콜로키움이 있었다. 필자는 후배 두 명의 논문에 대해 논찬을 했다. 그 중 한 논문주제가 김정일-김정은 시기 과학정책 및 기술담론을 비교하는 것이다. 논문의 요지는 김정일 시기에는 과학기술이 체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도구로써 활용된 반면, 김정은 시기에는 체제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북한의 과학기술을 정치적 매커니즘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과학의 정치화’라는 이론으로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북한에서의 과학기술은 북한 특유의 체제 속성상 극단적으로 정치에 종속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김정은의 과격한 도발을 보면서 문득, “만일 김정은이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면 그의 신변에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때부터 김정은의 도발을 체제 유지 및 리더십 공고 측면으로 비중을 두게 됐는데, 현재 북한은 김정일 시기보다 훨씬 강도 높은 비상계엄상태이다. 전시체제로 돌입했을 뿐만 아니라, 전 지역이 서로 앞 다퉈 미국의 트럼프정부를 성토하는데 여념이 없다. 동시에 김정은 결사옹위 구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김정은의 전략대로 움직여가고 있다. 김정은 리더십 공고의 한 축인 핵도발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축인 김정은 우상화는 그리 녹녹치 않은 것 같다. 가장 큰 난제는 그의 생모 고영희의 존재가 우상화의 걸림돌이자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이다.


여성 대표 잡지 ‘조선녀성’(1946년에 창간)은 김일성-김정일 시기에 조선여성들이 가장 흠모하며 따라 배워야 할 인물로 김정숙을 내세웠다. 김일성 시기에는 ‘수령결사옹위’의 대표적 희생의 아이콘으로 그녀를 내세웠고, 김정일 시기에는 ‘선군의 어머니’로 부르며 선군혁명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내세웠다. 김정숙 우상화 작업은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확보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기제가 됐다.


한편, 김정은은 정권을 승계한 지 6년차를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그의 생모 고영희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이 자신의 생모 김정숙을 1974년부터 내세우고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우상화를 진행한 것에 비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조선녀성’은 1998년부터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 동지를 따라 배우자’라는 고정코너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고영희와 관련된 코너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소개도 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김정숙 우상화에 그 포커스를 맞춘다. ‘조선녀성’이 북한 전체 여성들에게 혁명적 여성리더를 내세우며 따라하게 만드는 대표적 잡지인 것을 감안할 때, 고영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답보상태에 놓였다.


2012년도에 정권을 승계한 김정은은 자신의 우상화를 위한 포석으로 파격적인 정치 행보를 보여 왔다. 바로 그 해에 김정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으로, 김일성과 더불어 김정일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했다. 또한, ‘김일성주의’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확장시켰으며, 2013년 말에는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2016년에는 새로운 직제인 ‘당위원장’, ‘국무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2017년에는 ‘백두산 3대 장군’에 등극함으로써 그야말로 6년 어간을 거침없이 종횡무진 달려왔다. 그런데, 유독 자신의 생모 고영희를 내세우는 일에는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영희(1952~2004)는 김정숙처럼, 전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묻어만 둘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해도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생모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고영희를 내세워야 되는 것이 김정은의 난제이다.
고영희는 북한의 계층별 성분 분류(3계층 51개 부류 구분사업, 1970년)에 따르면, 가장 하위계층인 ‘적대계층(복잡군중)’에 속하는 재일교포출신이다. 북한이 1981년 1월부터 ‘북송재일교포 요해사업’을 추진한 이후부터는 64개 부류로 늘어났다. 재일교포들은 국군포로나 반혁명 종파분자와 같은 부류에 속해 있었던 만큼 고영희의 비상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에 와서 만수대 예술단의 무용수였던 고영희는 1970년대 후반 김정일의 눈에 들어와, 1983년 1월 8일에 김정은을 낳았다.


고영희는 1999년 사망한 재일교포 고경택(고태문이라는 설도 있음)의 딸로(2006년 국정원이 밝힘) 1962년(고영희 10살 무렵) 10월 21일 ‘제99차 귀환선’으로 북한에 들어왔다.
김정일의 총애로 그녀는 자녀들과 함께 자유분방하게 유럽여행과 도쿄 디즈니랜드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5월 고영희의 친동생인 고영숙과 그녀의 남편 박건이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함으로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김정일의 식지 않는 애정이 1998년경부터 북한군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가 잠깐 시도되기도 했다.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 ‘존경하는 평양의 어머님’이라고 불렀으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 동지와 꼭 같으신 분’ 등으로 칭송하며 고영희를 ‘국모’로 떠받들었다. 김정일의 총애 아래 고영희는 막후정치를 펼치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아들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한 모종의 모략을 꾸미기도 했다. 2004년 5월 프랑스에서 유선암으로 사망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는 것은 지켜보지 못했지만,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을 받는데,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 길을 닦은 인물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대로, 그녀는 현재 김정은 우상화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과연, ‘조선녀성’에서 고영희를 추켜세울 날이 올까. 노심초사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생경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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