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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기고

비정상의 정상인지화’ 논리함정, 북한정권에 면죄부만 남발

정교진 박사의 북한 바라보기-27

평창동계올림픽 북한선수단 및 응원단 참여문제로 한국교회 안에서는 두 가지 주장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주 북한을 위해 중보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들렀을 때, 그 단체와 동역하는 한 선교사와 개인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는 “주님이 큰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저에게만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금식기도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평창올림픽에 대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반면, 평화의 슬로건을 내세운 단체 리더는 “평창 땅을 통해 평화의 대로가 열리는 환상을 주님이 2010년대에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끊임없이 기도했고, 그 응답의 결과가 평창올림픽입니다. 평창은 ‘평화’가 ‘창성한다’라는 의미입니다.”라고 평창올림픽 북한참여에 대해 환영을 넘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주님의 뜻, 성령의 감동(영감), 예언들을 앞세운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은 우리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물론, 어느 한 쪽을 취한 이들은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하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어 한결 홀가분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성도들은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를 되내이며 마음 한구석이 착잡해진다. 


북한학자이기도 한 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사안에 대해 북한매체의 반응들을 면밀히 살피며 팩트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지난 칼럼에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거론한 이후, 20일이 되는 어간에 북한의 대표매체인 노동신문에서 평창올림픽을 다룬 기사가 단 한건밖에 없다고 제시한바 있다.
주변 지인들의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정말 그게 실화냐”와 “그게 뭐가 문제인데, 북한에서는 당연한 것 아냐?”라는 상반된 반응이다. 두 번째 반응은 나름대로 북한을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났다.


“북한을 잘 아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지며 고민에 빠져 보았다. 때때로, 우리는 북한을 잘 안다는 것으로 인해, 북한정권의 불법에 대해 무덤덤해지는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필자는 ‘비정상의 정상인지화’라는 신조어로 표현해 본다. 이 개념은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 점점 무뎌진다는 논리로 하나의 함정과 같다. 이 논리함정은 우리로 하여금 북한독재정권에 대한 면죄부를 너무나 쉽게 던져주게 만든다.


“억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 반하여 외국 땅에 갇혀 억지로 중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이 문장은 국가전복죄라는 죄명으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735일 동안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케네스 배 선교사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지사가 배 선교사의 수기, ‘잊지 않았다’의 추천의 글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말에 동조하는가? 동조한다면, 이 논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불변한가? 만일, “그들이 가서 뭔가 잘못한 일을 했겠지”라고 생각이 든다면 이 논리적 사고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분명한 논리가 없었다면, 빌 리처드슨은 케네스 배 선교사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슨의 추천의 글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케네스의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가족들과 친구들의 노력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우리 정부가 행동하게 된 데는 그들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나는 외교 문제에 시민들이 참여해야 하고 또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들의 관심 및 참여행동은 이 같은 분명한 논리로 저 북한정권을 바라보아야 가능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안에는 이 같은 분명한 논리가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북한정권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들(김정욱 선교사를 비롯한 5명)의 상황에 대해 끝까지 아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는다. 순간적 감정(충동)으로 단말마에 그치고 만다. 구명운동은 가족들만의 절규로 허공의 메아리가 될 뿐이다. 공감대는 온데간데없고 국민여론형성은 언감생심이다. 원인은 논리부제 탓이다. 그로인해, 정부는 이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한다.


이번 평창올림픽 협상테이블이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우리 국민들을 구명할 호기였음에도 우리 정부는 의제로 올리지 않았다.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지도 않았다. 단지,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만이 각기 다른 칼럼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할 뿐이었고 그 주장은 긁어 부스럼 정도로 치부됐다.
평화운동하는 사람들은 남북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오히려 비판했다. 이처럼, 문제의식을 갖는 이가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우리네 정서이다.


평창올림픽 회담 및 준비과정에서 북한정권에 저자세로 일관하는 우리정부도 문제지만, 북한정권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인지화’라는 논리함정에 빠진 우리의 정서가 더 큰 문제이다.
“나는 외교 문제에 시민들이 참여해야 하고 또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한 빌 리처드슨의 말이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이 시기, 우리 모두가 갖추어야 할 의식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 논리의 함정 속에 헤매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김정은 정권에게 면죄부 남발현상이 국민정서로 굳어져서는 안 되겠다.


정교진 소장

침례교통일리더십연구소,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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