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곳곳에서 캐롤이 울려 퍼지고, 트리의 불빛이 반짝이는 이 성탄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우리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서막, 즉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시 마주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무대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은 연극과 같습니다. 무대는 이미 준비되었고, 대본은 하나님이 쓰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위대한 드라마 속에서 어떤 배역을 선택하고, 어떤 연기를 펼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는 은혜의 소식 앞에서 세 가지 다른 배역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을 통해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를 원합니다. 2. 하나님은 은혜의 이야기를 쓰신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우연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은혜의 이야기를 쓰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장은 이 은혜의 이야기가 얼마나 섬세하고 계획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감동적으로 펼쳐집니다. 무대는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동네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매일 수많은 병원균에 노출되지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면역력 덕분이다. 병에서 빨리 회복하는 사람에게는 웃음과 대화가 많다. 몸의 건강은 마음의 면역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면역력을 높일 때 몸의 면역력도 높아져서 건강해질 수 있다.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는 1912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이브닝 포스트지 기자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1940년 새터데이리뷰로 자리를 옮겨 1972년까지 30년 이상 편집장 및 발행인을 역임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교 의학부 대뇌연구소 교수로서 의료 저널리즘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1964년 8월 53세 되던 해 러시아를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미열이 나고 몸살기가 돌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목, 팔, 손, 손가락,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적혈구 침강 속도가 80을 넘었다(감기와 같은 질병은 30~40정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적혈구 침강 속도가 150을 넘기자 중병에 든 것을 알게 됐다. 그가 받아든 병명은 콜라젠 질환과 강직성 척수염이라는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5~10월은 건기에 해당되지만 11월부터 그 다음해 4월까지는 비가 내리는 우기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이 두 시기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건기는 뜨거운 날씨에 비가 전혀 내리지 않으며 풀들은 모두 말라버려 거칠고 황량할 뿐이다. 하지만 우기에는 산과 들 그리고 계곡과 평야는 물론 심지어 광야마저도 풀들이 자라고 꽃들이 가득 피어난다. 우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12월쯤, 그래서 봄이 더욱더 간절히 기다려질 때, 이스라엘 땅에는 그 누구보다 서둘러 봄을 예고하는 전령사가 나타난다. 바로 아몬드 꽃이다. 예루살렘에서 국도 1번을 따라 텔아비브로 가려면 소렉골짜기와 아브고쉬를 지나야 한다. 시가지를 지나자마자 소렉골짜기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난다. 도로 옆 비탈과 골짜기 반대편 산기슭에 뭉개 뭉개 피어난 아몬드 꽃이 보인다. 햇살을 맞으며 피어오른 엿은 분홍빛 아몬드 꽃을 볼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복사꽃 피어나는 고향 마을을 떠올리곤 했다. 우리말 성경에서 아몬드 나무나 꽃을 찾을 수 없다. 성경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 번역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아몬드
우리는 언제나 밖을 본다. 그리고 멀리 있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갈망한다. 타인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외부의 기준을 살피느라 늘 분주하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이 밖을 향해 있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자기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를 알아가려 하는 모습은 그래서 애처롭고 불안하다. 스스로를 모르는데 타인에게 나에 대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뿌리와 토대를 모르는데 무엇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혼자 상대방을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대의 입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듣는 것, 이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귀하다. 수가 적어서 귀하고 가치가 있기에 귀하다. 그런 귀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은 더욱 귀하다. 당신의 가면은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겹 혹은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복장이나 화장처럼, 우리는 가면을 그렇게
성경을 이해(understand)하고 해석(interpretation)하기 위해서는 그 성경이 쓰여진 땅, 역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지 답사를 하다 보면 그 중요성에 비하여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것에 무관심하다는 현실에 놀라곤 한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빌립과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는 과정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담고 전개된다. 우리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과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문맥 전체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을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다나엘이 왜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에 발끈하고 그를 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는지,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말씀에 나다나엘의 태도가 급변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이스라엘 땅에서 그 문화적 배경 안에서 쓰인 것이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래서 성경의 지리, 역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절실해지는 까닭이다. 먼저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사렛에 대한
요한복음 13장 2절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생애를 좌우한다. 생각의 여하,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수십 년 전 미국 뉴저지주 역에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이 내렸다. 그의 이름은 에드윈 바네스였다. 그는 대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의 파트너가 되길 원했다. 에디슨의 회사를 찾아간 그는 직원에게 자신이 에디슨의 파트너가 되겠다고 했지만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바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에디슨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갔다. 에디슨은 그가 회사의 청소부와 설비 수리공을 맡도록 허락했다. 바니스는 이 자리에서 몇 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디슨의 제품판매원들이 새로운 발명품을 비웃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바로 구술기록기였다. 사람들은 비서가 기계보다 유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자 바니스는 일어서서 “제가 해보겠습니다. 저는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부에서 판매원으로 변신했다. 한 달 동안 바니스는 뉴욕 전역을 돌아다녔다. 오랜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했고 그는 7대의 구술기록기를 팔았다. 그리
성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나무는 그들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가나안 땅의 7가지 주요 생산품 가운데 하나가 포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신 8:8). 성경을 읽다 보면 포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접하게 된다. 성경이 시작되는 창세기에서 포도주에 취한 노아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창 9:18~27), 계시록에는 포도주 틀로 비유된 심판 이야기가 등장한다(계 19:15). 가나안 답사 이야기(정탐꾼 사건)에서는 가나안 땅의 포도송이가 얼마나 컸던지 두 사람이 장대에 걸어 어깨에 메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은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포도주 의식으로 그 사역을 마무리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포도원을 비유로 가르치시더니 급기야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요 15:1). 그만큼 성경시대 사람들에게 포도나무는 삶의 일부처럼 친밀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포도나무는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상징으로 이해했을까? 성경의 표현을 빌면 포도는 이들에게 기쁨의 원천이요 축복의 상징이었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보면서 가는 길 오래전 한강물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 검룡소를 방문해 본 적이 있다. 태백에서 발원해 충청북도 경기도를 흘러 수도 서울을 지나 서해안을 통해 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처음 본 검룡소의 샘솟는 물줄기는 참 신기했다. 좁은 골짜기를 지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 것이다. 30년전 대학 캠퍼스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한 학생을 만남으로 시작된 이 사역은 그 당시 오직 구령의 열정과 복음의 사랑에 붙들려 캠퍼스를 돌며 복음을 전할 때 한 형제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고백을 상담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그 손짓의 시작으로 여기까지 흘러왔다. 마치 태백 검룡소의 물줄기가 골짜기를 지나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고 흘러내려 넓은 바다로 흡수되듯이 이 길을 걸어온 것이다. 준비되지 못한 나 자신과 경험 없는 무지한 때에 할 수 있었던 일은 힘들고 아픈 영혼과 함께 있어 주는 일이었고 그 마음으로 3년 동안 형제와 함께해 온 시간들이 머리를 스쳐 간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통해 이 시대의 문제와 고통을 아시고 누군가는 필요했기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게 해 오신 것이다. 상담치유를 통해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의 모습, 오롯이 종교적
돌무화과나무의 용도가 이렇다 보니 탈무드에는 2층 이상의 집을 지을 때 안전을 고려해 지붕 들보를 백향목보다는 돌무화과나무를 사용하도록 했다(Talmud, Bava Metzia117b,11). 이 같은 용도와 가치 때문에 다윗은 돌무화과나무를 배양하는 전담 장관을 세울 정도였다.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돌무화과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대상 27:28) 이런 돌무화과나무는 그 열매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칠칠절이 끝나는 시기(즉 밀 수확이 끝나는 시기/5월)가 되면 이 나무에는 수많은 열매가 열리게 되는데 그 열매에 일일이 흠집을 내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줘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무화과 맛을 내게 된다. 이 과정을 전문용어로 블리사(Blissa)라고 부르는데 목자들이 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돌무화과나무는 비가 많고, 날씨가 온화한 지역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이 나무는 요르단 계곡 또는 평지(쉐펠라)에서 많이 재배됐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돌무화과나무) 같이 많게 하였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당신의 진실된 칭찬 한 마디와 격려는 다른 사람의 ‘삶의 보약’이 된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귀한 보배’이다. 린칭쉔은 대만의 유명한 작가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그는 장난기 많은 학생이었다. 학업 태도와 품행은 늘 선생님들에게 실망과 반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국어 선생이었던 왕위창만 유독 그를 인정해 주었다. 자신이 휴가를 갈 때면 린칭쉔에게 국어를 가르치게 했다. 왕위창은 린칭쉔에게 “국어를 수 십년 가르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너는 큰 인물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이 말에 린칭쉔은 감동했다. 그는 분발하여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어느 날 양고기 집을 지나던 린칭쉔에게 낯선 사람이 인사했다. 그는 20년 전 그들이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린칭쉔은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였다. 경찰서에 취재 나간 날, 도둑이 잡혀 들어왔다. 경찰은 “이 도둑이 여러 차례 범행을 저질렀지만 이번에야 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