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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채널방송, 6·25전쟁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그날의 기억’


C채널방송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 ‘그날의 기억’ 편을 방송한다.
C채널 6·25특집 다큐멘터리 ‘그날의 기억’은 1·4후퇴 때 가족들과 함께 화물열차를 타고 피난 온 이대운 장로, 전쟁 중 나라와 민족을 위해 뜨겁게 기도한 정금준 장로, 월남한 아버지를 이어 교회를 지켜나가고 있는 피난민 2세대 방서호 장로를 만나 그들의 헌신적인 신앙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또한 조국을 위해 뜨겁게 청춘을 바친 참전용사의 이야기를 통해 6·25전쟁 70주년이 주는 의미를 되짚어본다.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아픔을 남겼다. 약 100만 명이 전쟁 중에 사망했고, 6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피난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좌절과 절망이 가득했던 시대였지만, 피난길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국난 극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고향인 북녘 땅을 떠나 월남한 기독교인들은 부산에 피난민 교회를 세우고 열정과 헌신으로 한국 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


이대운 장로는 1·4 후퇴 때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 온 1세대다. 6세 때의 일이지만 온 가족이 화물열차를 타고 피난하여 영도에 자리 잡은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영도교회를 세운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언제나 가정보다 교회가 우선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그는 헌신의 신앙을 배웠다. 이대운 장로는 아버지를 이어 영도교회를 지켜나가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세대교체가 될수록 6·25전쟁의 의미가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고 있다.


​올해 97세인 정금준 장로는 해방 직후 고향인 평안북도 철산에서 부산으로 월남했다. 정금준 장로는 밤마다 부산 초량교회를 찾아 눈물로 기도를 올렸다. 부산 지역교회에서 회개기도 운동의 일환으로 열린 구국기도회에도 참석했다. 이제 100세를 바라보는 정금준 장로의 간절한 소망은 눈 감기 전 고향 땅에 가서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를 재건하는 것이다.


속초중앙교회를 섬기고 있는 방서호 장로는 피난민 2세대이다. 함경도가 고향인 아버지가 아바이마을에 자리 잡은 후 속초중앙교회를 설립했고, 그 뒤를 이어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 속초 아바이마을은 고향을 그리워한 함경도 피난민들이 설립한 마을로 현재는 2세대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


방 장로에게 6·25 전쟁은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과거의 역사이지만,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피난민 2세대 방서호 장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피난민뿐 아니라 참전용사에게도 70년 전 그날은 생생한 아픔으로 기억된다. 박명근 장로는 한창 꿈을 키워나갈 19살에 6·25전쟁에 참전했다. 위생병으로 근무하며 수없이 많은 부상과 죽음을 지켜봤고,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덧 백발이 된 그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찾는다.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박 장로의 진솔한 기도가 많은 시청자의 가슴을 울릴 예정이다.
피난민과 참전용사 이야기를 통해 6·25 전쟁의 역사를 되새기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특집 다큐멘터리 ‘그날의 기억’ 은 오는 6월 22일 오후 3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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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