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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에 새바람 일으키는 젊은 농어촌 목회 사명자

남포침례교회 장정수 목사 민도영 사모 부부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사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이나 학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9월, 전라남도 강진 시골 교회에 젊은 목회자가 부임했다. 남포교회 장정수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결혼한지 일주일만에 강진 땅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다 무너져가던 교회를 리모델링하며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장정수 목사는 한평생을 농촌교회에서 사역하며 헌신해온 아버지 장성익 목사(수금)를 본받아 신학교 시절부터 오로지 농어촌교회에서 사역할 것을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아는 장성익 목사 또한 아들의 결정에 대견해하며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남포교회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유튜브에서 목회 브이로그를 통해 자신들의 사역을 널리 알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정수 목사의 아내 민도영 사모가 촬영과 편집을 맡은 해당 영상들은 교회를 리모델링하는 모습부터 심방하는 모습 등 여러 장면을 아름답게 담아내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자는 이렇듯 조용한 강진의 시골마을에 새로운 활력소로 자리잡고 있는 장정수 목사 부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범영수 차장(기자)=“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정수 목사(목사)=“네 저는 장정수 목사고요. 결혼을 하고 바로 일주일 만에 여기 담임목사로 부임을 하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여러 교회에서 파트 사역도 했었고 또 천안에서 전임 사역도 했었고, 그리고 수금교회(장성익 목사)에서 전임으로 사역하다가 이렇게 목사 안수를 받고 바로 여기 남포교회로 부임해서 지금 1년 6개월 정도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목사=“네 2020년 9월에 했습니다.”

 

기자=“이렇게 젊은 분들이 시골에 오기로 결정하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그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목사=“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희 아버지 목사님(장성익 목사, 수금)을 보면서 나도 농어촌에서 목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런 비전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꿈꿔오고 기도하며 이야기해 왔던 것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은 다 도시 교회로 가고 대형 교회로 가고 할 때 “나는 농어촌교회에 가서 사역을 하고 싶다”라고 그렇게 이야기도 계속 해왔는데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뤄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서 작지만 그래도 좋은 교회를 주셔서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자=“아버지 목사님께서 사역하시는 정읍과 지금 목사님께서 계신 강진은 굉장히 먼 느낌인데요. 어떻게 이곳과 연결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목사=“원래 처음에는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진도에 그 목회자가 없어 비어있는 장로교회를 침례교회로 바꿔 사역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교회가 당시 거의 무너져 가는 그런 교회였 는데 그곳을 이제 침례교 선배 목사님하고 우리 아버지 목사님하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거기에 가려고 마음을 먹고 갔는데 그 교회 부지가 ‘절대 농지’라고 해서 건물을 지을 수가 없는 그런 부지더라고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던 중에 진도에 이규선 목사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강진에도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알겠습니다”하고 아내하고 둘이 상의해서 기도하고 결정을 해서 그래서 오게 됐죠.”

 

기자=“제가 오면서 들었는데 여기 막 오셨을 때 교회 건물이나 사택 상태가 좀 많이 안 좋았다고 들었어요. 그때 어떤 감정 드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목사=“나는 그래도 목회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있음에 감사 하면서 “그래도 와서 어떻게든 해보자”라는 그런 마음으로 왔던 것 같고 우리 아내는 아마 마음속으로 아마 많이 울었을 거예요. 이렇게 무너져 가는 교회를 처음 와본 것이니까요. 저는 아버지가 목회를 농어촌에서만 하셨고, 작은 교회도 있었고 중형 교회같은 그런 교회도 가봐서 농촌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은 없어요. 근데 아내는 이런 곳이 처음이다 보니까 아마 그런 게 좀 낯설었을거예요.”

 

기자=“사모님은 도시 출신이신 거예요?”

 

민도영 사모(사모)=“그렇죠. 전주에 도심 쪽에 있었죠. 처음에 왔을 때는 진짜 교회가 밖에는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나무가 막 무성하고 안에는 곰팡이가 엄청 많이 있어서 구멍도 여기저기 있었어요. 비가 오면 세서 교회에 고이고 뱀도 나온다고 성도님들이 그러셨어요. 여기 뒤에 대나무가 한 300그루 있었어요. 거기서 뱀이 사는 거예요. 전에 계시던 목사님이 이불을 꺼내려고 손을 넣으셨다가 새끼 뱀을 꺼내셨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었어요.”

 

목사=“(강진이 바닷가라) 교회 내부가 습하기 때문에 곰팡이가 되게 많이 있었어요. 여러 곳에 다 시퍼렇게 곰팡이가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데 여러 도움의 손길들이 있어서 그래서 공사를 하게 됐죠.”

 

기자=“제가 이 남포교회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이 목회 브이로 그를 찍은 유튜브 영상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되셨나요?”

 

목사=“기록을 남기고 영상을 제작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아내가 만들었거든요. 나는 전도를 간다고 하면 그냥 같이 가고, 그리고 교회 일을 하면 또 성도님하고 같이 일하기만 하고 거의 사진이랑 영상이랑은 사모가 찍어서 취미 겸 교회 홍보 겸해서 한번 만들어보자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됐어요.”

 

사모=“제가 촬영이랑 편집을 하고 있어요. 교회를 홍보하는 목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제가 먼 곳에 살게 됐으니 양가 부모님들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어떻게 사는지 보여드리려는 목적도 있었어요.”

 

기자=“교회를 리모델링하는 영상도 봤습니다.”

 

목사=“리모델링 할 때는 우리가 이곳에 거주를 안하던 시기여서 자주 못 내려왔어요. 그래서 사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한 번씩 와서 공사가 잘 되고 있나 확인하고 또 요청 사 항을 말씀드리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한 달 반에서 두 달에 걸쳐서 교회와 사택을 리모델링 했죠. 교회 옆에 사택이 바로 붙어 있는데 그곳도 전임 목사님이 안 사셔서 몇 년 동안 그냥 아예 비어 있었어요. 그래서 사택도 곰팡이로 가득하고 그냥 창고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폐허여서 두 달에 걸쳐서 공사를 다 했던 것 같아요.”

 

기자=“유튜브 영상을 본 지인분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목사=“다 행복해 보인다고 좋아 보인다고 그랬어요. “열심히 하네”라고 선배 목사님들은 그렇게 말씀도 해주시고 “더 열심히 하고 그렇게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다 함께해 주실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해 주셨던 것 같아요. 대부분 동기들은 다 대형교회에 있어서 별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동기 중에 한 명이 한번 놀러 온 적이 있어요. 그 친구는 학부만 같이 나왔는데 “너 이렇게 목회하는 거 보니까 나도 이렇게 목회하고 싶다”라고 하더군요.”

 

기자=“지금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가 16명이라고 들었어요.”

 

목사=“처음 이곳에 왔을 때 5명이었는데 지금 16명으로 늘어났죠. 지금은 아직 등록은 안 하시고 출석만 하시는 분들이 2명더 있어서 이제 곧 18명이 될 예정입니다.”

 

기자=“지금 남포침례교회가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사역이 있으신가요?”

 

목사=“따로 하는 사역은 없고 거의 그냥 일반 목회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심방하고 전도하러 다니고 그리고 교회 행사 있으면 하고 그렇게만요.”

 

기자=“그렇게 돌아다니시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화가 있나요?”

 

사모=“제가 전도를 다니고 있어요. 전도 대상자 할머니 몇 분이 계셔서요. 그런데 그분들 대부분이 한글을 잘 모르세요. 그래서 한글을 가르쳐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이제 한 분은 시작을 한 상태예요. 그래서 기역, 니은, 디귿, 이렇게 시작을 한 상황이고 할머니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겠다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분주하게 전도를 하는데 한 50% 정도는 마음을 닫고 계시고 있어요. “나는 우리 조상 대대로 교회에 다녀본 그런 분이 한 명도 없다. 그러니 나도 절대 안 나갈 거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몇 분은 이제 제 얘기만 들으시고 그런 상황 이에요. 그래도 될 때까지 방문을 하려고 매주 찾아뵙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건강이 좀 악화돼서 잠깐 중단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중점적으로 하는 사역이 있다고 한다면 이렇게 전도하고 한글을 가르쳐드리고 하는 일들을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목사=“아내가 한국 무용을 전공해서 기회가 되면 교회로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서 교회 홍보도 하고 전도 목적으로 공연도 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자=“목사님이 보시기에 농어촌 목회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목사=“농어촌교회는 아무래도 사람이 없다든지 어린이들도 없다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그래도 찾아보면 또 있다는 것이 이곳의 현실이기도 한 것 같아요. 두 명이든 한 명이든 있기는 있더라고요. 작은 마을에 가면 한두 명의 어린 아이들이 있고 그러니까 어린이들에 대한 그런 비전도 어느정도 가지고 농촌 사역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기자=“마지막으로 농어촌교회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목사=“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제 친구들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다 대형교회나 서울 쪽으로 많이 가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아무래도 농어촌으로 오는 목회자들이 없어지니까 공백이 커질 것 같아요. 그리고 농촌에는 젊은이들보다는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잖아요. 그분들에게 빨리 복음을 전하고 또 이왕이면 복음을 전했을 때 믿을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농촌에도 이렇게 목회자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작은 마을일지라도 또 어르신들밖에 없어도 이렇게 와서 목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남 강진=범영수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