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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정을 품은 진도 보전교회를 가다

 

익어가는 수수밭을 지나면 자그마한 언덕 위에 보전교회(강희정 목사)가 보인다. 1995년 6월에 부임해 오늘까지 묵묵히 한 길을 가는 강 목사 부부를 만나본다. 시골스런 작은 예배당과 탁트인 교회 앞 전경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예배당은 몇 년전 수리를 해서 좋아 보였고 나머진 시골에 있는 예배당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 30여 년동안 땀과 눈물로 주 앞에 희노애락의 목회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두 분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강목사는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청년시절 지독한 정신적 방황의 시기를 거치면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있게 만나게 됐다. 심한 통증을 겪으면서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할 때 말씀으로 치료하시며 확신을 주셨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12:6). 

 

 

하나님 은혜에 깊이 잠겨 이젠 오직 주를 위해 살겠노라 결단하며 확신 속에 30세에 신학교에 입학해 주의 길을 가기를 소망했지만 4학년 2학기 졸업을 두 달 남기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 양돈사업에 뛰어들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곁 길로 간 결과, 사업은 빚만 남기고 말았고 피폐해진 마음과 잃어버린 사명 앞에 울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들려주신 주의 음성이 있었다.

 

“사람 낚는 어부로 불렀더니 지금 돼지나 키우면서 뭣하고 있느냐?” 

 

하나님은 기관지, 폐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채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역시 암(골육종)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던 지금의 이주희 사모를 만나게 하셔서 새로운 사역의 길로 부르셨다. 그 이후 급하게 일하신 하나님은 두 사람을 1994년 6월에 결혼하도록 하셨고 신혼여행지로 지금의 보전교회로 부르셨다. 그 다음해 6월 보전교회로 부임해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뜰살뜰 한결같이 동행하는 이주희 사모는 청년 시절 골육종암을 치료하기 위해 대형병원들을 거쳤지만 한결같이 다리를 절단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고 큰 절망에 빠져 기도하던 중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기적적으로 치료를 받고 회복해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다. 그런 약함이 있음에도 양가 가족들은 강 목사와의 결혼을 선뜻 허락했다. 이는 세상 방법이 아닌 강 목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고 결혼 후 불편한 다리로 7년을 한결같이 사역하며 주만 바라볼 때 그 충성의 결과는 아들 둘을 주시는 축복으로 이어졌다.

 


부임 후 새벽마다 강단에 엎드려 울며 기도할 때 마을 사람들은 “저 교회 목사는 새벽마다 왜 저리 우는가?”라며 우는 교회로 소문났다. 하나님은 그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역을 보게 하셨고 한 영혼씩 교회로 인도해주셨다. 


또한 부임 초기에 강 목사는 미리 배워둔 수지침으로 전도의 접촉점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전도의 접촉점을 통해서 주민들을 교회로 일단 나오게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도시교회들이 농촌교회에 찾아와 펼치는 전도집회, 마을잔치, 마을수리, 의료봉사 등은 농촌교회의 전도에 큰 유익이 되고 있다.


섬마을 특성상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요소가 강해 바른 믿음생활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사역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교회는 계속해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오는 기적이 나타났다. 그렇게 30여 명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20여 명이 예배드리고 있다. 농촌교회 성도들의 헌금은 목회자 사례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강 목사는 지금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들은 모두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이라 귀하기만 하고 최근에는 살기 좋은 진도로 귀농, 귀촌하시는 이들도 있어 그들 중에 교회로 찾아오는 이도 있어 주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의 재정적인 여건은 취약하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강 목사는 지역 특산품(미역 다시마, 흑미, 돼지감자가루 등)을 도시교회 바자회시 자매결연 등을 통해 판매하기도 한다.


보전교회 3대 목회자로 처음 부임했을 때 주민들은 3년 정도는 눈길을 주지 않았고 만나면 “언제갈거요?”라고 묻기도 했다. 강 목사는 그럼에도 꿋꿋이 주만 바라보며 지역민들과 같은 눈높이로 함께 일하며 마을 일에 적극 협력하고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기에 전념했다. 또한 주민들의 애·경사를 꼭 찾아가고 의료봉사, 마을잔치, 커피봉사 등을 열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러한 강 목사의 열정을 주민들도 마음으로 받아 두 번이나 마을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그동안의 강 목사의 마을목회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근 30여 년을 함께 살다보니 모두가 다 이웃이고 교회 일에도 많이 협력해주는 분위기이다. 강 목사는 곧 주님께서 한 영혼씩 열매로 거둬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한다. 강 목사는 사명을 받았을 때 아무도 가지 않고 가장 힘든 곳에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가장 남쪽 진도는 강 목사의 기도 응답이고 부임 당시 교회는 열악한 농촌 교회 중 한 곳이었다. 농촌목회는 일단 인내하고 기다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주님이 나를 보내셨으니 뼈를 묻겠다는 일사각오의 사명감으로 버티고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모범이 되기에 힘썼다. 


보내신 분이 책임지실 것을 믿고 그 확신과 믿음으로 오직 주만 바라보며 나갔다. 또한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사역에 매진하니 하나님은 돕는 자들을 보내시고 일하시도록 일감도 채워 주셨다.

 

강희정 목사 부부의 기도제목

1. 우리 부부가 남은 사역의 시간 동안 건강하고 성령충만하게 끝까지 사역을 마무리하도록
2.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예배당을 아름답고 아담하게 건축하기 위해
3. 지역특산물을 판매해 지역 전도와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도시교회들이 관심을 가져주세요(미역, 다시마, 흑미, 돼지감자가루 등)
4. 큰아들 취업을 위해(강마루, 29세), 둘째아들(강석우, 직장인) 배우자를 위해
5. 국내선교회 기금상환(매달 50만원)을 매달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호남제주지방국장 김경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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