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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단 군선교의 발자취

3사단의 순직자 침례교 군목 故부인봉 목사

 

고 부인봉 목사(대위)는 육군 3사단에서 침례교 군목으로 임관해 군 선교 활동을 하시다가 순직하셨다. 그는 박준택 목사와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64년 입학 동기생이었다. 현재 살아계시면 85세이시다. 그는 1967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사병으로 전역했음에도 군 복음화의 귀한 사명을 깨닫고 1967년도에 군목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아 1968년에 3사단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군복음화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환경도 열악해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강원도 철원에 있는 3사단에서 군목 사역을 시작했다. 1969년 3사단의 23연대(현 여단) 군목으로 예배와 병사들의 신앙전력화에 열정을 담았다. 


그러던 7월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주일 날, 부인봉 목사는 주일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그 당시 이동 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를 가는 중에 군용트럭과의 불의의 사고로 1969년 7월에 순직하게 됐다. 


군 부대는 그의 안타까운 순직을 기념해 장례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 사병이었던 박준택 목사는 공병대대 연병장 텐트를 치고 장례식 위원 병사로 대대장의 임명을 받아 장례식을 주관했으며 침례교 총회장과 임원들이 참석해 함께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박준택 목사에게 그는 군 생활 속에서 잊을 수 없는 동료이지만, 그가 군 선교의 초석을 놓은 귀한 사명은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늘날 군대는 황금어장이라고 한다. 20대 젊은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곳은 군대밖에 없다. 그들은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없고 오로지 명령에 의해 움직이기에 복음을 전하기에는 너무나 최적의 장소이다. 이 귀한 사명에 대해 고 부인봉 목사는 일찍이 깨닫고 그 사역에 헌신하고자 스스로 군목이 된 것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헌신으로 군 선교에 대한 초석이 놓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그의 사역을 기려 군에서도 추모비를 세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사명은 잊혀졌다. 박준택 목사는 어느 날 기도 중에 55년 전 동기였던 고 부인봉 목사가 떠올랐다. 하나님은 그에게 “죽은 자도 너의 이웃”이라는 마음을 주셨고, 박 목사는 곧장 3사단의 군종 목사를 만나 간절한 주님의 마음을 전했다. 눈물로 박준택 목사의 간절한 마음을 받은 군종 목사는 고 부인봉 목사의 추모예배를 3사단 삼성군인교회에서 하도록 허락했고, 드디어 인천지방회 목회자들과 55년 전의 침례교단의 군선교 사역을 조명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침례교단의 군선교의 역사 현장을 다시 한 번 조명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에 감사드렸다. 


지난 10월 20일 고 부인봉 목사 추모예배는 인천지방회 회장 민인남 목사(밀알)의 사회로 지방회 총무 김철기 목사(새성)의 기도, 침례교 군선교사 이동재 목사가 성경봉독하고 김기덕 목사(새인천)가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박준택 목사(하늘샘)는 추모 화분을 보내준 교단 총회(총회장 이종성 목사)에 감사를 표하고 3사단 군종부에 금일봉을 전달했다. 3사단 군종과장 윤대운 목사의 환영과 감사 인사, 지방회 전도부장 김종국 목사(반석)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후에 기념 촬영을 한 후에 3사단에서 군 생활하고 교회를 개척한 이병익 목사의 안내로 고 부인봉 목사의 추모비를 방문해 침례교단의 군복음 역사 속에 숭고한 첫 순교자의 자리를 확인했다. 되풀이 하지만 우리는 군선교를 위한 초석을 놓은 고 부인봉 목사의 사역과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동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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