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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침례교의 항일운동사

일제강점기 한국침례교의 항일운동사-8

또한, 9인의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대해서도 공통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및 천년왕국의 출현을 기원한 내용의 설교를 했다.”라고 지적했는데, 9명 각각의 죄명에 대해 다음과 같다.


제1 피고인 이종근(中山川行)은 어렸을 때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을 배우고, 성장해 농업에 종사하던 중 동아기독교회의 교리 신조를 따라 타이쇼(大正) 2년(1913년)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됐고, 타이쇼(大正) 8년(1919년) 교사가 됐고, 타이쇼(大正) 12년(1923년) 목사가 됐고, 쇼와(昭和) 12년(1937년) 3월 감목으로 선임되어 현재에 이른 자이다. 함경남도 원산 영정 소재의 동 교회 총부에 있어서 (1) 쇼와(昭和) 16년(1941년) 8월 중으로 날짜는 상세하지 않지만 원로인 피고인 전치규 전 감목, 명예 목사인 피고인 김영관 외 4명을 소집하여 재만 지방교회가 만주국 기독교국에 포섭 통합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하여 방책을 협의했고, 그 실행위원으로 하여금 피고인 전치규 외 3명을 만주에 파견할 것을 결의해 보냈다. (2)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15일부터 쇼와(昭和) 17년(1942년) 1월 상순경까지 3회에 걸쳐 조선 내 각 구역에 포교 자료인 동아기독교회 편찬 성서 약 30부, 복음 찬미 약 1700부를 배포하고, (3) 위 기간 중 매 주일 수요일의 예배 시에 신자 김중출 외 30명에게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및 천년왕국의 출현을 기원한 내용의 설교를 했다.


제2 피고인 전치규(陽田宇成)는 어렸을 때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을 익히고 성장해 농업에 종사하던 중 동아기독교회의 교리 신조를 따라 메이지(明治) 42년(1909년)경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됐고, 타이쇼(大正) 4년(1915년) 목사가 됐고, 타이쇼(大正) 13년(1924년) 감목으로 선임되고, 쇼와(昭和) 9년(1934) 사임 이후에는 안사로 천거되는 동시에 원로 겸 원산구역 명예 목사가 되어 현재에 이른 자이다. (1) 쇼와(昭和) 16년(1941년) 8월 중 감목인 피고인 이종근의 소집을 받아 전게 제일의 기록내용의 협의를 했다. (2)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15일부터 쇼와(昭和) 17년(1942년) 1월 상순경까지 매월 2회 평균 전 총O부에서 예배를 할 때 신자 김중생 외 약 30명에게 전기와 마찬가지의 설교를 했다. (3) 쇼와(昭和) 16년(1941년) 8월 중 강원도 통천군 통천면 서리 소재 원산구역 내 서리교회에서 최명선 외 20명에게 침례를 베풀고 이를 교인으로 했다.


제3 피고인 김영관(金山榮官)은 어렸을 때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을 배운 후 농업에 종사하던 중 동아기독교회의 교리 신조를 따라 타이쇼(大正) 2년(1913년)경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됐고, 동 12년(1923년) 교사가 됐고, 다음 해(1924년) 목사가 됐고, 쇼와(昭和) 9년(1934년) 감목으로 순서를 따라 승급했고, 쇼와(昭和) 13년(1938년) 3월 사임함과 동시에 원로 겸 명예 목사가 되고, 현재에 이른 자이다. (1) 쇼와(昭和) 16년(1941년) 8월 중, 감목인 피고인 이종근의 소집에 응하여 전게 제1의 (1) 기재 내용의 협의를 했다. (2) 감목인 피고인 이종근의 강력 요청에 의해서 같은 해 7월 중 만주국 간도성 OOO대파교회 외 한 교회에서 4회에 걸쳐서 김순철 외 120명 정도(OOOO인)에게 전기와 같은 설교를 했다.


제4 피고인 장석천(張田錫天)은 어렸을 때 기독교계 사립학교에서 성서 및 한문 등을 배우고 성장하여 농업에 종사하던 중 침례파 기독교도가 되어 동아기독교회 창설을 하는 등 당초부터 이에 가입하는 동시에 목사가 됐고, 쇼와(昭和) 15년(1940년) 10월 원로 겸 명예 목사로 선임된 이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 소재 칠산교회에서 포교에 종사하고 있는 자이다.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15일부터 쇼와(昭和) 17년(1942년) 8월 말경까지 같은 교회에서 매 일요일 예배 시에 신자 장석철(張田錫哲) 외 약 80명에게 전기와 같은 설교를 했다.


제5 피고인 노재천(盧山光石)은 어렸을 때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을 배우고 성장해 농업에 종사하던 중 동아기독교회의 교리 신조를 따라 메이지(明治) 43년(1910년)경 침례를 받고, 그 교인이 됐고, 타이쇼(大正) 3년(1914년) 목사로 선임되어 현재에 이른 자이다. (1)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15일부터 쇼와(昭和) 17년(1942년) 9월 상순경까지 소속된 충청남도 공주교회에서 매 일요일의 예배 시에 신자 이기출 외 약 50명에게 전기와 같은 설교를 했다. (2)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중순 및 그해 8월 20일경까지 2회에 걸쳐 전과 같은 교회에서 OOO와 20명에게 침례를 베풀고 이를 교인으로 했다.


제6 피고인 박기양(木村方春)은 어렸을 때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을 배우고, 성장해 농업에 종사하던 중 동아기독교회의 교리 신조를 따라 타이쇼(大正) 6년(1917년) 침례를 받고, 그 교인이 됐고, 동 12년(1923년) 교사가 되고, 다음 해(1924년) 목사로 선임되어 현재에 이른 자이다.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15일부터 쇼와(昭和) 17년(1942년) 6월 상순경까지 매 일요일 소속된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금남교회에서 신자 장사출 외 약 40명에게 전기와 같은 설교를 했다.


제7 피고인 백남조(白原信祚)는 어렸을 때 서당에서 수년간 한문을 닦고, 성장해 농업에 종사하던 중 동아기독교회의 교리 신조를 따라 타이쇼(大正) 원년(1912년) 침례를 받고, 그 교인이 됐고, 동 7년(1918년) 교사가 됐고, 다음 해(1919년)에 목사로 선임되어 현재에 이른 자이다. 쇼와(昭和) 16년(1941년) 5월 15일부터 쇼와(昭和) 17년(1942년) 9월 상순경까지 소속 만주국 간도성 연길현 자성 종성교회에서 매 일요일의 예배 시에 신자 임승용 외 약 120명(모두 조선인)에게 전기와 같은 설교를 했다.

 

오지원 목사
한국침례교회사연구소 소장
(사)침례교 역사신학회 이사
ohjw79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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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