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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1

아래 내용은 1990년 당시 중학생이었던 양찬호 목사(아름다운)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함께 했던 김호철 목사(현 세도제일)에게 보낸 편지글입니다. 양찬호 목사는 당시 장은교회를 출석하며 주일학교 교사였던 김호철 목사의 인품과 사역을 존경했다고 한다.

 

선생님께!
이제는 무더운 여름이 기승을 부리고 모기와 파리도 제 때를 만난 듯 귀찮게 구는군요.


몇 달 동안 편지 한 번 드리지 못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두 번씩이나 선생님의 얼굴을 뵈었을 때, 어찌나 부끄럽고 어찌나 죄송스럽던지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얼굴을 들고 뵙게 될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선생님 몸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학원에 다니는 것을 생각하니 게을렀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생전 접해보지 못했던 영어를 공부하시려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전 벌써부터 영어를 포기할 직전이예요. 그러나 선생님이 하시는 것처럼 다시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주일학교는 잘 되고 있습니다. 지난번 주일에는 32명(교사 포함 36명)이나 출석했어요. 목사님과 상의해서 달란트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기쁜 것은 주일학교 교사 한 명이 늘었어요. 홍경숙이 지난 주일 9시 예배에 와서 교사해보겠다고 했어요. 목사님과 얘기도 해서 임명하기로 했어요. 그러나 섭섭한 것은 김지혜가 하지 않을 것만 같아요. 그리고 분반공부할 때에 유치부는 홍경숙이 하기로 했어요. 이제 주일학교도 많이 부흥될 것만 같아요.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 좀 해주세요. 중고등부도 매주 기도회로 모이고 있어요.
예배를 마치고 제가 인도하고 있어요. 중고등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또 부탁이 있어요. 책이 부족해요.
은미와 미자, 은정, 지혜는 책이 있는데 찬웅이는 전에 송혜정이 준 1, 2, 3과 밖에는 없고 저는 1, 2과 밖에 없어요. 책을 좀 보내주세요.


얼마 전에는 송혜정도 왔었어요. 저번 목요일 예배도 함께 드렸어요. 아버지 제사라 왔나봐요. 요즘 제가 기도가 부족한 것 같아요. 기도를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뜻대로 되지가 않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할머니도 그렇게 교회간다고 나무라지는 않아요. 일요일 날에 7시에 밥을 먹는데 아버지가 저더러 논에 가자고 하셨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 말도 않고 있었어요. 운동화를 빨고 있었는데 논에 가자고 부르셨어요. 전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교회에 갈 시간이 되면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7시 20분에 논에 가서 일을 하는데 교회 첫 종이 울려서 아버지에게 몇 시냐고 물어봤어요.


8시 40분이라고 하시고 가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논에서 뛰기 시작해 집에 오니까 8시 55분 대충 세수하고 가방을 들고 교회에 가니깐 9시 1분이었어요. 그날 땀으로 세수는 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하나님은 저와 함께 하시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보내준 책도 잘 읽고 있어요. 깨달은 것도 많았어요. 잘못했구나 하는 것도 많았어요.


좀 더 열심히 읽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해야겠어요.


이제부터 전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고 예배 시간도 잘 지키겠어요.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서도 기도할께요. 절대 잊지 않을꺼예요.


이젠 펜을 놓아야 할 것 같아요. 몸 건강하시고요. 모기에게 될 수 있으면 헌혈은 하지 마세요. 몸 건강히 안녕히 계세요.


편지 종종 드릴께요. 답장 해주세요.

 

1990년 6월 13일 수요일
양찬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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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