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만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에서 상징적 언어 또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 예수가 “나는 문이다”(요10:9)라고 선언할 때, 영생과 구원의 문이 되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예수가 그렇게 선언하실 때문이라는 물체가 그리스도의 실체로 본질이 변하는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가 문의 밑에, 함께, 또는 안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체험하는 문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의 선언에도 문은 문으로 남아 있지만 단지 그리스도가 문맥 가운데 말씀하신 내용처럼 예수는 구원의 통로가 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매개체를 보여주는 그림 언어로 작용한다. 동일하게 주의 만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언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에 대한 침례교 전통의 기념설에 의하면,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상징체의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만찬은 과거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념
V. 침례교 전통의 주의 만찬의 이해 주의 만찬에 대한 침례교 전통은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어떻게 임재할 수 있는가’란 추상적 논쟁보다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성례전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가 아니면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용돼야 하는가 하는 실천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둔다. 침례교 전통은 주의 만찬을 열린 주의 만찬과 닫힌 주의 만찬으로 구분해 실행한다. 열린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만찬에 참여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복음주의 교회의 회원들을 어떤 교리나 교회 의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게 한다. 반면에 닫힌 주의 만찬은 물에 잠기는 침례 의식을 받은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한다. 어떤 의식 절차보다도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결단하고 고백하는 것을 믿는 구원의 증거로 여기는 침례교 전통은 오직 침례(세례 또는 영세)를 받은 자에게 주의 만찬에 참여하게 하는 다른 교회 전통과는 달리 열린 주의 만찬에 문을 열어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의 침례 의식을 행한 자들에게만 허용하는 닫힌 주의 만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의 기능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이번부터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전파 사역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가장 극적인 사역인 예수님의 귀신축출 사역의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소위 ‘축귀’ 사역으로 알려진 ‘귀신축출’ 사역은 지금은 이단으로 인정된 어느 목회자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일부 목회자들에 의해 개인적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많은 목회자들은 이사역에 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무관심하기도 한 사역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신이 여러 차례 귀신들을 쫓아내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요약적 진술들에는 대부분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마 4:24; 8:16; 막 1:34; 눅 6:18). 예수님이 그의 열두 제자들을 따로 세우신 목적 중 하나는 귀신축출 사역을 계승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막 3:15). 예수님은 그의 열두 제자들로 하여금 그의 사역을 계승하며 재현하는 복음을 일꾼들로 훈련하기 위해 그들을 내보내시면서 귀신축출의 권세를 주셨다(막 6:7; 마 10:1; 눅9:1;10:17). 마가에 따르면, 예수님의 귀신축출 사역은 그분이 행하신 첫 번째 공적 사역이었다(막 1:21~28; 참고, 눅 4:33~37). 누가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기의 공
인권과 기독교 인권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권은 사회에서 교회가 책임져야 할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교회는 인권 문제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실천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단순한 대응이 아닌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인권에 대한 문제들을 성서에 근거해 적절하게 이해하는 작업과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실천 방안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 나타나고 있는 인권 문제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행을 바탕으로 인권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 정립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서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인권 실현에 대한 의지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이때 개인적 차원에서만 인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교회 간의 협력 등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도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양극화에 대한 반성 양극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발생 하는 빈부격차와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반목 현상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양극화의 심화를 겪고 있는데, 이는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화체설은 떡과 피가 직접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본질적 실체로 바뀜으로 그리스도가 임재한다고 설명했다면, 공재설은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지만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심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떡과 포도주가 공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루터는 삼위일체의 연합(일치)과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떡과 포도주의 연합은 유사한 신적 신비로 이해했다. 그가 떡을 분배할 때 그리스도가 그의 몸을 먹도록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기술한 본문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이것 위에 우리는 주의 만찬에서 우리가 참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취한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믿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떻게 이것이 발생하거나 어떻게 그가 떡에 존재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속박하거나 측정하는 것 없이 우리가 믿어야만 한다. 우리의 눈으로 그 떡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현존한다는 것을 우리의 귀로 듣는다. 공재설은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의 만찬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플라톤은 눈으로 볼 수 있
만약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실체로 대치됐다면, 떡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는 부수적인 성질들 안에 존재하게 되는가? 만약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변형되는 실체의 교환이 이뤄진다면, 역으로 그리스도의 본질적 실체는 외부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껍질(accidents)이 떡과 포도주의 껍질로도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가 되고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되는 오류를 인정하게 된다. 칼빈은 화체설의 이런 철학의 오류를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들은 떡과 본질이 그리스도로 변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는 그 백색을 그 본질과 결부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찬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여전히 하늘에 계신다고 말한다.” 화체설을 주장하는 가톨릭교회 역시 성서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화체설의 성서적 근거는 주의 만찬에 대한 본문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함에 있다. 아퀴나스는 주의 만찬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단죄하고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길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런 점들에 대해 유의하지 않고 그들은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2018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36개 OECD 회원국 중 1위로 하루 평균 37.5명, 연인원 1만 3670명으로 전년보다 9.7% 증가했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성장은 전통적인 가치관의 붕괴, 가족관계의 와해, 고립 감, 열등감, 소외감의 확대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약자인 서민층, 노인층, 여성의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나게 됐다. 성경은 자살에 대해 대체로 하나님의 징계와 저주의 결과로 야기됐음을 시사한다. 기독교는 박해의 시기에도 고의적 순교보다는 적극적인 도피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아가 알레스 공의회(452년)에서 자살은 ‘사탄적인 죄’로 규정했고 이후 공의회에서 자살한 사람이 장례를 치러주는 것과 자살한 사람의 헌금은 받지 않고, 교회 묘지 안장도 금해지는 조치들이 순차적으로 추가됐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로마교회와 개신교는 공식적으로 자살 금지 태도를 보인다.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해있기에 자살은 하나님에 대한 죄이다. 자살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교회는 사회 각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살의 위험한 현실을 직시하며 윤리적 책임성과 문제의식을 느끼
주의 만찬은 역사적 예수의 직접적인 제정명령에 의한 성서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전 11:23~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만찬에 관한 주제 특히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대한 연구는 성서신학자들의 관심사라기보다는 조직신학자들이나 교회사학자들의 주된 토론과 논쟁적 주제로 취급되어왔다. 물론 신약 학자들에 의하여 주의 만찬에 대한 신약성서 본문들의 의미에 대한 주석과 역사적 배경과 발전에 대한 탐구가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 학자들은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를 연구의 대상으로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기독교 예배와 신앙고백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신학적 주제이며 또한 신약성서 본문들의 기반 위에 세워진 교회의 예배 의식과 내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신약 학자들의 해석학적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대한 각기 다른 교회 전통에 대하여 성서해석학적 관점에서 그 신학적 의미를 재조명할 것이다. 또한 필자는 성서 해석학적 관점에서 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각기 다른 교회 전통들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주장한 견해의 장단점을 비평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가톨릭
교단의 유일한 정론지로 걸어온 침례신문이 오는 8월 19일이면 창간 67주년을 맞는다. 일제강점기 시절 교단이 폐쇄되고 사분오열이 됐지만 해방과 함께 교단이 재건되고 한국전쟁 당시 미남침례회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교단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교단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오며 복된 소식을 알리고자 1955년 ‘침례회보’가 창간됐다.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당시 침례교회의 상황과 소식들을 담아낸 침례회보는 활자 하나하나가 산 역사로 남아 있다. 미약한 교세와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 처해 있을 때에도 교단을 위해 헌신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폐간의 아픔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을 대표할 수 있는 교단지의 필요성은 어느 교단 못지않게 뜨거웠다. 교단 목회자들의 기도와 관심, 후원으로 7년 만에 복간해 오늘에 이른 침례신문은 시대적 사명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침례교회를 전 세계에 알리고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노력하고 있다. 침례신문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역교회들을 탐방하며 현장 목회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교회 사역의 대부분을 축소하며 매서운 칼바람
매년 새로운 회기의 총회 의장단이 세워지면 새 집행부의 주요 사역으로 인해 기존의 총회 사업은 자연스럽게 대체된다. 현장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1년이란 한계로 인해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그동안 침례교회는 교회의 부흥과 다음세대를 위한 다양한 사역들을 펼쳐왔다. 매회기마다 기본 전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역은 당회기만의 사역으로 멈춘 사역들이 비일비재했다. 연속성이 끊어진 이유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전 회기의 사업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결국 개인의 명예와 세력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하고 기존의 사업은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교단의 시대적 사명과 역할을 생각하고 미래 지향적 사업에 대해서는 총회가 그 뜻을 훼손하지 않고 잘 계승 발전해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협동 사역이 목회자자녀영성캠프와 목사인준자교육, 다음세대부흥위원회, 라이즈업뱁티스트 등이다. 이에 반해 현실과 상황에 따른 교단 차원의 사업도 존재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교회들을 돕기 위한 긴급 구호 사역은 많은 교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됐다. 이와 같은 총회 사업은 불가항력적
112차 정기총회 의장단 예비 후보등록이 지난 7월 8일 서울 여의도 총회에서 우리교단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안동찬 목사) 주관으로 진행됐다. 후보 등록은 총회장 예비 후보에 현 1부총회장 김인환 목사(함께하는)가, 제1부총회장 예비 후보에 이욥 목사(대전은포)가 각각 단독으로 예비등록을 마쳤다. 이번 2명의 총회장 후보 목회자는 지난 111차 정기총회에서 1부총회장 선거에서 경쟁한 후보이다. 당시 총회 대의원들은 김인환 목사를 선택했으며 이욥 목사 또한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김인환 목사의 당선을 축하했다. 하지만 이번 112차 총회 의장단은 과거의 경쟁자에서 이제는 협력자이자 파트너로 함께 나서게 되면서 교단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리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에서 코로나 엔데믹에 대한 기대와 코로나 재유행이 교차되는 시점이기에 더욱 총회장 선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년 동안 총회 의장단으로 섬기며 총회 사역을 경험한 김인환 총회장 예비후보와 목회와 성경연구에 탁월한 달란트를 감당하며 교회와 목회자를 섬겼던 이욥 목사의 리더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교단은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면서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에 역점을 두고 있다
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예배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 지침으로 대면예배가 어려워지고 행정조치로 인해 예배당이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던 팬데믹이 극에 달했을 때 많은 교회들은 예배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시민연대’(예자연)는 서울시장을 상대로 대면예배 금지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했고 최근 6월 10일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대면예배 금지 처분은 교회가 음식점 등과는 달리 생산 필수시설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해 집합을 금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의 심적 위안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증오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등 안정된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순기능이 있다”며 “장기간 시행된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우울증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이 생산필수 시설에 비해 열등하거나 중요도가 덜하다고 볼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감염 예방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이를 통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비례의 원칙이나 평등원칙에 반해 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그동안 교회 예
오는 7월 16일, 서울광장이 음란과 죄악의 장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한국교회 내에서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동성애축제(퀴어축제)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시민위)는 지난 6월 15일 회의를 통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신청한 서울광장 사용 신청 안건을 수정, 가결했다. 시민위는 애초 조직위가 신청한 행사 기간(7월 12∼17일)을 7월 16일 토요일 하루로 줄이고, 신체 과다노출과 청소년보호법상 금지된 유해 음란물 판매·전시를 안 하는 조건으로 광장 사용 신청을 받아들였다. 시민위는 무대 설치 등 행사 준비 시간을 주기 위해 행사 전날인 7월 15일 오후부터 조직위가 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동성애축제가 처음으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것은 2015년부터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오프라인 집회가 금지된 기간을 제외하고 불허된 적이 없이 매번 시민위를 통해 사용신청이 통과됐다. 지난 2019년 당시 서울시의 다수의 공무원들이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며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서 ‘서울광장은 시민의 건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