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가족 모임이 있을 때 서로의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덕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 가정의 자녀들의 외모를 칭찬하며 관례적으로 하는 말들 중에 “야,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잘 생겼구먼” 하는 농담이 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오히려 마음 뿌듯해 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주 드물지만 어떤 분들은 이러한 농담을 불쾌해 한다. 심지어 정색하며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모임의 분위기가 자못 썰렁해지는 부작용이 따라오곤 한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기 자녀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대단히 기뻐하기 마련이다. 자녀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가 그 자녀들을 낳고 키운 부모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제 간에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노래를 잘 불러서 각종 음악콩쿠르의 대상이라도 탄다면 스승은 누구보다도 이를 기뻐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간혹 이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못난 스승들도 있긴 하다. 제자가 너무 잘 해서 혹시 자신의 영역이나 자리까지 넘보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과 두려움으로 인해 제
간증은사집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 믿음 속에서 개인적으로 체험한 특별한 하나님 체험들을 다른 성도들과 공유하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유익하다. 하나님을 맛보아 체험하라고 하신 시편 34편의 찬송과 같이, 간접적으로나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함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우려할만한 간증은사집회들과도 자주 만난다. 예컨대 천국을 보았다는 강사들이 나서서 천국을 비성경적으로 홍보한다든지, 무당 냄새가 나는 강사를 강단에 세워놓고, 문제 있는 교인들로 하여금 예언기도를 받게 하면서, 헌금 얼마를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위험한 발언들을 쏟아놓는 집회들도 있다. 이러한 집회들이 일시적으로는 불신자들을 끌어 모으는 등 교회에 유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연예인들과 같이 대중인지도가 높은 강사들이 등장하는 간증집회는 무슨 목적으로 집회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할 때가 많다. 물론 강사들 중에는 진정으로 거듭난 믿음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신앙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간증집회를 하는 것인지,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영적 혼란을 주는 사례도 많이 있다. 이러한 부류
얼마 전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의 배다른 장남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테러를 당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던 이 사건으로 인해서 많이 회자된 말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이다. 스탠딩 오더란 명령권자가 특정 명령을 내린 후 또 다른 취소 명령을 거론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유효한 명령을 뜻한다. 과거 김정은은 김정남의 살해 숙청을 지시한 이후 따로 취소 명령을 내린 바 없기 때문에 수년간 북한 정보당국 등이 끊임없이 살해를 기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의 복심을 실천하며 성취하기 위해서 그의 부하들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이러한 테러사건으로 표출됐다고 한다. 흔히들 최고 권력자의 신임을 얻어 보다 높은 서열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을 “충성경쟁”이라고 한다.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자신을 어필해 개인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 김일성 동상에 쌓인 눈을 맨손으로 닦아내는 사람들, 관제데모에 참여한 실적에 따라 예산을 조정하겠다는 지침을 내렸다는 청와대 권력자들의 소문, 시진핑의 눈에 들기 위해서 사드보복의 일환으로 한국 기업들을 자발적으로 괴롭
남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제국과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당할 당시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이 외적들의 침략에 의한 하나님의 징계를 예언했다. 특히 이사야는 외부로부터 오는 징계 외에 내부로부터 촉발되는 징계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이사야 29장에 기록된 ‘봉한 책’과 ‘사람의 계명’은 패역한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내적인 징계의 기이한 방식이었다(사29:14). ‘사람의 계명’으로 인한 징계는,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 율법에 의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이 가려지게 함으로써, 영적인 지혜와 총명이 사라지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영적 암흑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탄생 전까지 약 400여년간에 걸쳐 진행된 이른 바 ‘영적 암흑기’와, 지금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바라보지 못하는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아둔함의 징계 속에 이 예언의 말씀은 성취되고 있다. ‘사람의 계명’은 마태복음 15장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직접 인용하심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사야 29:13에 기록된 ‘사람의 계명’이 마태복음 15:2에서는 바리새인들의 의해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말로…
구약성경에는 여전사들에 관한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사기4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가나안왕 야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사 겸 여전사 드보라, 적장 시스라를 천막 말뚝으로 처리했던 야엘, 사사기9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자기 형제 70명을 척살하고 스스로 왕이 된 패륜아 아비멜렉을 맷돌로 응징했던 세겜 망대의 여인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사무엘하 20장에 기록된 아벨성의 지혜로운 여인이다. 그 당시 압살롬의 반란이 겨우 진압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치화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다윗의 실정이 기폭제가 되어 이스라엘에는 내분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괴수는 사울왕조를 배출했던 베냐민지파 비그리의 아들 세바였다. 그는 유다지파 우대정책을 빙자하여 왕권회복을 꿈꾸었다. 대체로 권력자들은 거짓말과 선동정치에 능한 사람들이다. 많은 역사들 속에서 히틀러와 같은 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방법,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 전략들 중에서도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유언비어선동정치가 가장 잘 먹힌다. 몇 년 전 집권세력을 흔들어 권력을 빼
보통 드라마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은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극복한 주인공들이 마침내 큰 행복으로 보상받는 것을 마치 시청자들이나 관객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으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잠자는 백설공주를 깨워 결혼한 왕자가 왕이 되어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게 됐다면, 백설공주에 관한한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다. 알렉산더대왕이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날 때에는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30대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는 알렉산더의 죽음과 그의 죽음 이후 제국이 세 조각으로 찢어지는 역사적 비극까지 영화가 계속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포함한 약 90명에 달하는 왕족들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해피엔딩을 이뤘지만, 무려 3,000명에 달하는 남창들과 놀아나다가 측근들의 돌아섬으로 인하여 15년 만에 본의 아니게 황제의 자리를 내려놓아야 했던 역사는 본인에게 있어서는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경량화하고, 사거리를 확대하고, 추적이 어려운 이
성경에는 사람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예수님 이전의 구원의 문제, 인간의 불순종을 미리 아신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설치한 이유, 네피림의 정체,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 사탄의 배반의 죄의 출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및 사울왕의 구원의 여부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때때로 지명도 높은 신학자들의 견해를 빌려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곤 하지만, 그 신학자들 역시 유한한 인간의 한 사람에 불과하므로 그들의 주장이 곧 바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역사상 가장 머리가 비상한 위대한 신학자로 평가받는 ‘어거스틴(Augustinus)’ 조차도 성경에는 사람의 머리로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많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난제들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겸손케 하시려고 성경에 신비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므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놓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단정 짓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히브리서 6장에 이미 받은 구원도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듯한 구절이 있어서,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최고의 전략가 아히도벨의 전략을 물리치고, 위장 잠입한 후새의 거짓전략을 수용함으로써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은 쿠데타에 실패하였다. 반란에 실패한 압살롬은 반란괴수로서의 책임을 죽음으로써 마감해야하는 극단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악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아들인지라, 자식에 대한 인정을 과감하게 끊지 못한 다윗은, 요압을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반란은 진압하되 압살롬을 죽이지는 말라고 명령했다.그런데 군사령관 요압의 생각은 다윗의 그것과 달랐다. 다윗왕의 말년을 불행하게 만들고 다윗왕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 모든 사건들의 진원지가 압살롬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를 살려두면 안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압살롬이 패전하여 도주하다가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인하여 나뭇가지에 걸려 대롱거릴 때 요압은 창으로 그의 심장을 찔러 죽였다. 아들의 죽음이 알려지자 다윗은“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는 비가로 울부짖으며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그의 울부짖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적당한 선에서 그쳐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의 울부짖음은 요압이 왕궁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요
민주주의의 핵심요소 중의 하나인‘다수결주의’의 단점을 논할 때 으레 등장하는 단어가 중우정치(ochlocracy, Mobocracy)라는 단어다.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라고 개념 지을 수 있다.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민중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폭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으로 부족한 다수의 빈민들이 이끄는 정치라는 뜻으로 ‘빈민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플라톤은‘배의 비유’에서 선주, 선원, 키의 조종 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선주’를 민주정체의 주인인 민중 ‘선원’은 민중 선동가인 현실정치인 ,‘키의 조종’은 나라의 경영을 의미한다.민중을 상징하는 ‘선주’를 “덩치나 힘에서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지만, 약간 귀가 멀고 눈도 어두운 근시안이라, 항해와 관련한 다른 것들에 대해 아는 수준도 평범하다”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민중선동가를 포함한 현실정치인을 상징하는 ‘선원’은 “점잖은 선주를 최면제나 술 또는 그 밖의 다른 것으로 세뇌함으로써 판단이성을 마비시킨 다음, 배 안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배를 지휘하는”존재들이라고 비판한다.그런데 항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은 선원이
며칠 전 TV를 보다가 정말 봐서는 안 되는 장면을 보았다. 전라도 전주에서 새벽 5시쯤 산책을 가던 70세 노인을 20세 청년이 무차별 폭행하는 장면이다. 서로 길을 가다가 어깨가 조금 부딪쳤는데, 청년이 기분 나쁘다고 술김에 3분 이상이나 방어능력이 없는 어르신을 폭행한 것이다. 그 청년은 정말 비겁하다. 자신보다 확실하게 약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약자 앞에서 갑질하고, 조금 강한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는 사회는 저주 받은 사회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병든 영혼에서 비롯된다. 육신은 마음의 지배를 받고 마음은 영의 지배를 받는다. 성령을 거부하고 악령에 사로잡혀 살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패륜으로 치닫는다. 창궐하는 동성애의 패륜도, 별 거리낌도 없이 벌어지는 불륜도, 싸이코패쓰적인 묻지마 살인도, 부자관계를 망각한 경영권다툼도, 악랄하게 조교를 괴롭히는 어느 교수의 행패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빚어지고 있다.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악한 행동들 역시 그 근원이 악한 마귀의 영에 있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성령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이 사회가 다시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91)전적으로 의뢰의 노래찬송가 중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하는 노래가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찬송가의 선율은 인도의 민요에서 차용된 것이고, 가사를 쓴 작사자는 ‘썬다씽(Sundar Singh, 1889~1929)’이라고 한다. 썬다씽은 힌두교의 귀족계급에서 태어났지만, 그 당시 그 근처에 다닐 공립학교가 없어서 영국 사람들이 세운 사립 미션스쿨에 입학했다. 그는 성경공부시간마다 성경을 찢어버리는 등의 반항의 세월을 보내다가 14세 때 모친이 별세한 이후부터 급격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도마에게 보이셨던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16세 때부터 이슬람국가인 아프가니스탄, 티벳 등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20세 때 사도요한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식 신학공부를 마친 이후, 실종된 40세가 될 때까지 티벳선교에 자신의 황금기를 아낌없이 바쳤다. 추운 겨울날 눈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힘들게 업고 가다가, 자신만 살겠다고 먼저 가버렸던 동행인이 오히려 먼저 눈 속에 얼어 죽어 있음을 발견했다는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다. 젊
하나님을 빙자한 사기꾼의 노래몇 년 전 어떤 교회에 모 호텔 지배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찾아왔다. 깔끔한 양복차람에 키도 훤칠한 잘 생긴 남성이었다. 자기도 모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라고 했다. 용모단정하고 성실한 여자 청년을 소개해 주시면 취업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취업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명함까지 내밀며 정중하게 부탁하는 그 젊은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당장 마음에 떠오르는 여자 청년을 소개했다. 그리고 곧 바로 그 청년의 집으로 연락을 취했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잠시 출타중인데 곧 돌아온다는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단 부사역자를 청년의 집으로 보냈다. 그 동안 목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서 그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 지배인은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은 그는 즉시 자칭 호텔 지배인에게 와서 따졌다. 낌새를 눈치 챈 그는 손쓸 틈도 없이 큰 걸음으로 도망 가버렸다. 유괴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 사건을 접한 모든 교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4.3.21. 헌금하면 천국에 보내주겠다고 사기를 친 이모 여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사건을 감추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까지 살인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하셨다. 나단은 다윗이 저지른 범죄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 예화를 활용한다. 많은 양과 소를 소유한 부자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가축을 잡는데, 자신의 양을 잡지 않고 겨우 한 마리의 양을 애지중지하는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접대에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아내와 첩들을 거느린 다윗이 남의 아내를 빼앗았음을 고발한 예화이다. 몇 년 후 다윗은 또 하나의 예화와 접하게 된다. 드고아에서 온 여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형제간에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투다가 어느 날 형이 동생을 폭행치사 했고, 마을 사람들은 살인죄를 저지른 형마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상황이라 왕께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실화로 시작되었지만, 다윗이 여인의 큰 아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암논을 쳐 죽이고 외국으로 도망간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에 관한…
1621년 ‘유몽인’이 저술한 ‘어유야담’에 실린 논개에 관한 내용이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계사년에 창의사 김천일이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어 군사들은 패배했고 백성들은 모두 죽었다. 논개는 곱게 몸단장을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바위 아래는 깊은 남강의 강물이었다. 왜적들이 그를 바라보고 침을 삼키면서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차, 왜장 하나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논개가 미소를 띠고 그를 맞이하니, 왜장이 그녀를 꾀어내려 하였지만, 오히려 논개에 붙잡혀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최경회가 전라우도의 의병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를 훈련할 때 그의 소실 논개는 의병 훈련을 뒷바라지했다. 1593년 최경회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2차 진주성 전투를 할 때에도 성안에서 전투의 뒷수발을 들었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일본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강가에 서서 술에 잔뜩 취한 왜장을 유인해 그를 끌어안고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술에 취해 호기를 부리다 물고기의 밥이 되어 버린 불쌍한 인간, ‘게야무라 로쿠스케’. 잡다
‘엔하위키미러’에 실린 설명이다. 과거에 어린이들이 많이 사용하던 ‘동무’라는 단어는 ‘친구’의 의미로서 본래 한국 전역에서 쓰이던 말이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공산혁명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의미변형을 시켰기 때문에 강한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해왔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동무라는 단어가 거의 죽은 말이 되다시피 하였고, 이 단어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오랜 세월 옥살이를 했던 정원섭 목사에 따르면, 1964년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교회 전도사로서 ‘모여라 동무야 여름성경학교로’라는 현수막을 교회 앞에 내걸었다가, ‘동무’라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온종일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적인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70년대에 제주도에 살던 고교교사 한 사람이 술에 취해 동무라는 말을 내뱉었다가 전기고문까지 당해서 정신병자가 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동무가 ‘친구’로 대체되었다. 순 한국말로 대체하고 싶을 때는 ‘벗’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어깨동무’, ‘길동무’, ‘말동무’ 등과 같이 합성어로서는 자주 사용되고 있다. 문제 청소년이나
교단 내 임시총회에 향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은 거의 매년 임시총회를 열며 전년도 총회에서 미비했던 문제들을 다뤄 나갔다. 하지만 건설적인 결론이 도출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매번 대의원권 문제, 총회비 문제 등으로 시작도 전에 시간을 거의 잡아먹어 버려서 정작 논의해야 할 문제들은 제대로 된 이야기 한번 못 나누고 종결돼버리는 일이 종종 있어 왔다. 또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이 규약이 맞다” “저 규약이 맞다”며 입씨름만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총회(총회장 박문수 목사)는 오는 4월 13일 오후 2시 여의도 총회 예배실을 비롯해 전국에 지정된 장소에서 대면과 비대면을 병행해 임시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임시총회는 △총회 규약과 기관 및 위원회 정관 (규정), 총무 사무규정 수개정의 건 △다음세대 부흥위원회 신설의 건(규약기관) △원로목사(홀사모 포함) 지원의 건 △기관 재정립의 건을 다룬다. 이번 임시총회의 안건들을 살펴보면 크게 원로목사 지원의 건과 다음세대 관련 안건, 그리고 총회 기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게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기관에 대한 문제다.
완연한 봄 날씨가 성큼성큼 다가왔지만 아직 우리는 메마른 땅에 우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한국에서는 지난 2020년 1월 20일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하고, 2월 16일까지 3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당시 확진자 증가 추세가 하루에 한두 명 수준이고 확진자의 동선 정보 공개도 바로바로 됐지만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모 사이비 종교를 통해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확진자 수는 수백 배로 치솟았으며,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아메리카의 확진자가 폭발하기 시작한 2020년 3월 10일 이전까지 확진자 수 순위가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인구수 대비로는 세계 1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때부터 한국사회는 물론 교회들의 수난이 지속됐다. 3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면예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확진자 수의 증가는 전국을 사실상 얼어붙게 했고 때때로 조금씩 완화되기는 했지만 1년이 넘도록 비대면예배가 지속되는 아픔을 겪게 했다. 총회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산되면서부터 전국 교회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응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총회장이던 윤재철 목사(대구중앙)는 “코로나
올해 부활절은 오는 4월 4일로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땅의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죄목도 찾지 못하고 단지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많은 교회들이 부활절은 전후로 해서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키고 부활절 감사예배를 준비한다. 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왜 죽으셨는지를 전하며 교회는 새로운 활력을 찾으며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교회도 부활절을 기념해 지역별로 수많은 교회들이 함께 참여해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고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며 회복임을 선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연합찬양대의 찬양과 설교, 헌금을 통한 구제와 나눔은 한국교회가 쌓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부활절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예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부활절과 관련된 여러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비대면으로 부활절을 기념했다. 주의 만찬을 대면행사로 여기는 방역당국의 지침으로 인해 ‘드라이브 스루 주의 만찬’이라는 신개념을 임기응변으로 실
지난 2월 26일 국내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일상으로의 복귀가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없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 지이겠지만 한국교회에게 코로나19 팬데믹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상황이 이리 오래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고 대면예배를 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목회자는 물론이고 성도들의 피로 감은 계속 쌓여만 갔다. 하루빨리 예배당에 모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국내의 코로나19 1차 대유행은 대구의 모 이단 종교단체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대구·경북의 교회는 코로나 이전에도 해당 종교단체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1차 대유행 사태를 통해 더욱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 당시 본보는 해당 지역의 몇몇 교회들과 연락을 취해 그 당시의 상황을 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미디어 선교의 중요성을 알고 미리 대비했던 교회나 그나마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목회자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예배를 지속해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 들의 경우 그저 하염없이 교회의 문을 잠가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가 준비됐다 하더라도 성도들이 인터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교회는 대면예배의 제한과 기타 모임 금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다수가 모이는 시설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교회는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어느 기관 못지 않는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옮겼다. 실제 신천지를 제외하고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은 8.2%라는 최근 통계도 나오면서 정부는 “교회의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 방역수칙을 준수한다면 대면예배 자체가 감염위험도가 높은 행위가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교회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여전하다. 매주일 시도공무원들의 교회 방문은 이제 일상적인 상황이다. 방역지침 점검을 내세우며 교회를 방문해 인원을 파악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점검하는 것에 대해 교회를 철저하게 이 지침을 준수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대면모임 비율은 수도권은 20%, 비수도권은 30%이며 예배 이외의 모든 모임은 일체 금지된 채로 1년의 시간이 지나왔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소상공인과 주요 업종별 관계자들은 헌법소원과 소송, 시위, 공청회를 거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정부 측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