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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인생-2

고흥식 목사
영통영락교회

우리 신앙의 모든 기초는 하나님의 목적과 본성에 있으며, 주님 안에서 자신을 계시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 줄만 남은 비파의 이야기가 있다. “왈츠”라는 사람의 “소망”에 대한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둥근 지붕 위에 어떤 젊은 여인이 외롭게 앉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눈은 수건으로 싸 매여져 있다. 그래서 앞을 보지 못한다. 그 가슴에는 비파를 안고 있는데, 비파 줄은 다 끊어지고 오직 한 줄만 남아 있다. 뒤에는 희미한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앞이 안 보여도 비파 줄이 하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켤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소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또 여러 가지 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믿었던 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망의 줄만 있다면 능히 모든 것을 이기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두 사람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게 됐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감방에 있으면서 철창을 붙들고 밖을 내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은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며 시 창작에 몰두했다.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면서 주옥같은 글을 만들었다. 또 한 사람은 언제나 땅만을 바라보며 원망과 불평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땅을 보고 원망하고, 또 날이 개어도 항상 먼지 자욱하게 일어나는 땅을 바라보면서 자학하며 자신을 파괴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 두 사람은 각각 출옥을 하게 됐다. 그런데 하늘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를 지은 사람은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는 생의 보람과 환희를 맛 볼 수 있었고, 땅을 바라보며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믿음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 잡아맨다. 


소망은 믿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포괄적인 장래를 향해 개방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소망은 믿음과 떨어질 수가 없다. 신앙이 믿고 있는 바를 소망은 예기하고 기대한다. 신앙은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믿고 “소망은 이 진실이 나타날 때를 기다린다” 신앙은 소망이 의존하는 기초이며, 소망은 신앙을 배양하고 유지시켜 준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있어서는 믿음이 우선됨을 가지고 있지만, 소망은 수위권을 가지고 있다. 신앙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주고 이 지식 없이는 소망이 다만 이상향의 꿈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소망 없이는 신앙이 장래를 향하여 전진하지를 못할 것이다.


신앙은 우리에게 진리에로의 길을 보여주지만, 우리에게 이 길을 계속하여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은 소망이다. 나는 목회의 강단에서 “3V”를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그것은 꿈(Vision)을 선포한다. 삶의 환경과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꿈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활력(Vitality)을 심어준다.
은혜와 역동적인 신앙의 삶으로 기쁨, 희망, 축복을 받게 하는데 있다. 도전(Venture)을 갖게 한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자세와 태도임을 전하는 것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소망을 주며 나가는 이 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훗날 반드시 우리를 인정해 주실 날이 올 것을 믿으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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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