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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활기적의 확고한 신앙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19세기에는 유물론과 이성적 합리주의가 서구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유물론은 물질과 그의 운동 및 변화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오직 볼 수 있는 물질과 실험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합리주의자들은 모든 경험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구하며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모든 문제들의 주된 지침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이성을 최고의 권위에 올려놓고 말았다.


그러므로 후기 계몽주의자들은 여기서 나아가 현대과학의 관찰과 이성에 기반을 두며 결론을 유출하는 귀납적 방법을 통해 탐구를 시도했다. 여기서 과학의 업적에 의한 실제 세계는 목적에 의해 통치되는 실제 세계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곧 자연이야말로 존재하는 것들의 총체요, 진정한 실제라고 봤다. 따라서 과학자가 자연의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는 마술사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합리주의 신학자들, 곧 신신학자로 불리는 자유주의 신학자들마저 기독교 신앙에 뺄 수 없는 꼭 필요한 기적 사건을 과학과 상충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속단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불트만(Bultmann)은 성경을 진화론적 해석으로 접근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법칙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를 부인하는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하여 자가당착에 빠지게 됐다. 기독교 신앙에서나 성경에서 기적을 빼버리면 도대체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요, 역사 계시의 종교이다. 기독교 신앙은 실제 사건들의 문맥 가운데 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연구는 이러한 많은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확인시켜 준다. 고고학의 발견으로 입증되기에 앞서 오직 신앙으로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을 인식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지식에서 신앙의 사실로 나아간다. 하나님과 신앙은 자연주의적 질서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이성이 용납 못할 초월적 사건을 신앙은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은 마치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진전시키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자연 질서 속으로 하나님의 의지를 주입시킬 수 있다. 자연법칙이 단순히 우주를 작동시키는 하나님의 상용법이라면 기적적 사건은 하나님의 비상한 작동방법이다. 그러기에 기적은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연법칙을 잠정적으로나 일시적으로 제외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기적도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이므로, 파괴적 행위는 물론 아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을 틀림없이 믿는 데서 신앙은 분명 확고해진다. 자연법칙 밖에 있든, 자연법칙을 파괴하는 것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신앙은 기적의 의미와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다.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를 파악하고 난 뒤, 인간의 응답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신앙은 역사적, 과학적, 이성적, 철학적 지식에 동요돼서는 안 된다. 성경의 모든 기적을 틀림없이 믿을 때, 그 같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음을 계속 증거하고자 한다. 기적은 행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따라 기도하고 살 때 나타나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인데, 모든 기적 중의 기적인 부활신앙을 빼버리면 우리의 신앙에는 무엇이 남겠는가(고전 15:14).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속에 있는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부활 기적도 확실히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말씀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하셨고 이 한 마디 말씀은 송장 나사로가 수의를 입은 채 석굴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예수는 스스로 부활과 생명임을 증거했다.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의 신앙의 극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인류 역사 가운데 예수 외엔 부활한 사람이 어느 누구도 없으므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복음의 핵심은 곧 예수의 부활이다. 곧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끝났을 것이다. 예수는 극악의 사형수로 십자가에서 사라지고 제자들은 흩어져 기독교 2000년 역사는 없어졌으리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 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 예수 부활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회가 우리 교단 내에 있어 몇몇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렸을 때, 그 교회를 방문해 설교를 몰래 듣고 35년간 이단사설을 연구하고 살피고 정죄하고 고치게 한 원칙을 따라 이단도 이단성도 사이비도 아니기에 복음의 두 핵심 십자가와 부활을 똑같이 가르칠 것과 기타 다섯 가지를 교정해준 일이 있었다.


12제자, 120명 문도, 바울 사도, 스데반 집사가 순교 직전 천상에 나타난 부활의 주님, 기독교 역사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와 사역의 몇 사례를 생각해 본다.
1945년 첫 아들을 안고 인도 선교사로 갔으나, 4년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귀국해 오리건 주 맥민빌에 있는 순복음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주님의 큰 은혜를 갈망하며 기도하던 중 하티 하몬드 여사의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십자가와 가브리엘 천사 및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오직 그는 “오! 어떻게 하여야 주님을 기쁘게 할까?”의 마음으로 변화됐다. 이리하여 오스본(T. L. Osborn) 목사는 신유복음 전도자로 세기의 구령자가 됐다.


세롤로(Moris Cerullo) 목사님은 자신의 간증을 하면서 그가 16세의 소년이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게서처럼 그에게 나타나셔서 먼저 동족인 유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나아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기적을 통해 전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그의 단순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메시지는 청중들의 마음에 와 닿았고, 감동과 회개와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됐다.


그가 인도하던 서울 남산집회와 대구 공설운동장 집회에 참석한 후, 나도 옥중에서 나온 직후라 개척교회 교인들은 떠났고 교회 이전 고민 중에 동래로 가는 버스 속에서 “너는 내려서 사직동을 둘러보라”는 영음을 듣고 내려서 황무지 사직동에 옮겨서 개척하여 교회당을 짓고 8년 후 주일학생 포함 500여명의 전교인을 뒤로하고 서울교회로 사역지를 옮겼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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