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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떠오른 두 사람의 간증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아버지는 천자문에 사자소학과 명심보감까지 배운 나에게 어느날 두각객이란 여승의 말을 들은 어머님의 조언에 따라 절에 대리고 갔다. 거기서 성가여래상과 관음보사상, 북두칠성단에 7번씩 절을 하게 불교신자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교회에서 귀신병을 고친 이후에 180도로 달라져 3년 동안 나를 교회를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셨고 결국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말았다.


나는 교도소 선교를 하다가 교도소 8개월을 살고 나온 뒤엔 더욱 열심히 갇힌 자의 이웃으로 교도소선교회장까지 하면서 혜경 스님을 만났고 서울교회에 온 뒤 그를 초청하여 간증집회를 열었다. 사도 바울의 개심을 연상케 하여 나의 눈물방울을 맺게 했다.


대한 불교 정토종 교육국장이었던 혜경 스님(본명 : 김성화)이 불교단체의 내분과 정치 문제로 김해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늘상 하던 대로 불경을 읽기 위하여 대출 신청을 했다. 그런데 그날은 대출 신청한 불경이 아니라 기드온에서 발행한 조그만 신약성경 한 권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스님은 의아해서 신청하지도 않은 기독교 책을 왜 가져왔느냐고 하자 성경을 가져다 준 청년은 “여기에도 진리가 있을 것이니 한번 읽어보십시오. 저는 내일 제대합니다.”고 했다.


스님은 속이 상하면서도 하는 수 없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님은 그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 늘 염원하던 생사의 문제가 비로소 성경에서 해결됐다.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불교에서는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데, 기독교에서는 생명의 삶에 기쁨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스님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전율을 느끼며 근본적인 인생문제의 해결과 참 진리를 찾았음에도 즉시로 개종하는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수십만의 불교 신도들과 수백의 승려가 따르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용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8개월 가량을 고뇌하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 교도소에서 출감해 친구인 은두기씨를 찾아갔다가 의논한 결과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받고 부산으로 내려가 생명을 각오한 결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전혀 새로운 인생이 되었다.


그렇다. 다른 길은 없다. 참 인생의 문제는 예수님 안에서만이 해결될 수 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신다면, 바로 지금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다. 막상 종단을 떠나니 생활에 어려움이 오고 금전적 문제도 힘들지만 밀려오는 핍박은 더욱 힘들었다고 했다. 특히 불교 종단 정토종파에서 아주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이상 꿋꿋이 참고 견디어 새 생명의 복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뜨겁고 은혜로운 그의 간증을 기억한다.


나는 한남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앞으로 침례신학대학원을 마치면 목사가 될 것을 생각했기에 위대한 신앙의 선구자들의 자서전을 많이 읽었다. 영국 교회의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3대 인물은 제2의 성경인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역(John Bunyan)과 선교사의 아버지인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그리고 최상의 설교자요, 목회자인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으로 배웠다.


찰스 스펄전(1834~92) 목사는 19세기 영적 거인으로 영국 에섹스 캘버던 출생으로 그의 집안은 위그노들을 핍박하던 16세기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후손들이다. 조부와 아버지도 모두 목사로서 어릴 때부터 그는 엄격한 말씀 속에 양육받았다. 7세에 콜체스터에서 교육을 받은 후 15세에 뉴마케트의 유명한 교수 존 스윈돌(John Swindel)의 학교에서 등록해 그의 탁월한 지혜와 수학 중에도 인생의 내적 갈등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본 교회로 예배하러가기엔 너무 늦어서 눈길 속에 조그마한 교회에 들렀다. 보아하니 몇몇 안 되는 교회인데 목사도 눈길에 못 왔는지 예배시간이 지나자 허름한 옷을 입은 한 교인이 앞에 나서서 예배를 인도하고 이사야 45장 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45:22)는 말씀을 읽고 10여분 설교를 하다가 밑천이 떨어졌는지 웅크리고 앉은 낯선 15세의 소년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다.


“청년이여, 그대는 왜 고민하는가? 하나님을 앙망하시오! 바라보시오!”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는 순간 말씀이 마음에 닿았고, 주님은 그의 인을 소년의 영혼에 치셨다. 나의 영혼의 먹구름은 사라졌다.
“나는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만을 사랑하고 나의 전 생애를 통해 그분의 뜻을 확장시켜 나가는 일과 그분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는 데 바치기를 서약합니다. 나는 이 엄숙한 서약에 성실하기를 바랍니다.


바로 단 한가지의 목적, 오직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만을 염두에 두면서, 오 주님 저를 도우사 주님을 존귀케 하며 지상에서 살 동안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게 하옵소서”라고 절규의 기도를 드렸다.
그는 16세가 되던 그 이듬해 워터비치의 한 교회의 초빙으로 목회사역을 시작했다. 순종과 확신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어 18세의 나이로 런던의 메트로폴리탄 천막교회(Metropolitan Tabernacle)로 사역지를 옮겨 42년 동안 한결같이 봉사하여 수천 명의 성도를 섬기다가 1892년 1월 17일 주일 저녁 예배를 마지막으로 58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오, 여보, 나는 그렇게도 복된 시간들을 나의 주님과 함께 누리어 왔다오, 이제 나는 나의 사역을 끝마쳤소!”라는 유언을 남기고 바로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광명의 나라, 천국으로 향했다.
장례 행렬에는 교회당 뜰에 키워온 비둘기 떼가 장지까지 하늘에서 배웅했다고 한다.
그는 그냥 지나쳐 버릴 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이었다. 눈길 속에 코트를 뒤집어 쓴 15세 소년 스펄전이 바로 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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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 역사신학회 일본 역사탐방 침례교역사신학회(회장 임공열 목사, 사무총장 안중진 목사)는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1일까지 ‘조선의 마게도냐인’으로 알려진 이수정의 흔적을 찾아 일본 역사 탐방을 진행했다. 역사신학회 회원 15명이 함께한 이번 탐방은 조선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해 주도록 미국 선교지에 호소하여 알렌, 헤론, 언더우드, 아펜젤라 등이 조선의 선교사로 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수정과 조선의 선교에 있어 일본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탐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역사신학회 탐방일행은 첫 날 1919년 3월 1일, 3.1운동의 직접적 계기가 된 2.8 독립선언의 현장이었던 조선 기독교 청년회관을 찾아 조선의 분개와 독립의 서막이었던 조선 유학생들이 품었던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함성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선언문 등 기타 역사 자료들을 관람한 후 이수정이 일본에서 예수를 믿고 세례받은 시바교회(전 노월정교회)를 방문해 이수정이 예수를 믿게 된 과정과 세례를 받은 과정 등에 대해 현 담임목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 일본 요코하마로 이동해 일본 개항초기 선교사들이 일본 선교를 위해 잠시 기숙했던 성불사와 종흥사, 최초 장로교회 선교사 루미스가 설립한 요코하마 시로교회,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