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기다림

백동편지-40

김태용 목사
백동교회

해가 바뀌는 시간에 뉴욕의 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어느 뉴욕의 노란색 택시 기사는 여느 때와 같이 콜택시 요청을 받고 해당 주소로 차를 몰고 갔다. 도착해서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또 한 번 경적을 울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 손님이 그 날 교대 전 마지막 콜이었기에 그는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포기하고 차를 돌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일단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손님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마침내 문이 열렸고, 적어도 90살 이상 돼 보이시는 작고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문가에 서 계셨다.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계셨다. 문이 열린 틈으로 집안이 살짝 보였는데, 깜짝 놀랐다. 집 안에는 사람 산 흔적이 싹 지워진 듯했다. 모든 가구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휑한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단지 사진과 기념품이 가득 찬 상자 하나만 구석에 놓여 있었다.


“기사 양반, 내 여행 가방 좀 차로 옮겨줄래요? 부탁해요.” 할머니의 요청대로 가방을 받아 들고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돌아가 팔을 잡고 천천히 차까지 부축해 드렸다. 택시에 탄 뒤, 그분은 목적지의 주소를 알려주며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음…. 시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게 될 텐데요.” 기사는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 할머니는 괜찮다면, 급할 게 없으니 돌아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 곳 말이죠.”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가셨다. “의사가 말하길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재빨리 미터기를 껐다. “어디 가보고 싶은데 있으세요?” 그 후 두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함께 그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할머니는 젊은 시절 일했던 호텔을 보여주셨고, 함께 시내의 여러 장소를 방문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과 젊었을 적, 함께 살았던 집을 비롯해 소싯적 다녔던 댄스 스튜디오를 보여주기도 하셨다. 어느 골목에 다다르자, 천천히 가 달라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우리는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할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피곤하네요. 제 목적지로 가 주세요.” 최종 목적지인 요양원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착한 요양원은 생각보다 작았다. 도로 한 편에 차를 세우니 두 명의 간호사가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들은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웠고, 나는 트렁크 속에 두었던 여행 가방을 꺼내 들었다.


“요금이 얼마죠?” 할머니는 핸드백을 열며 그에게 물었다. 기사는 대답했다. “오늘은 무료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 사람아, 생계는 꾸려나가야지.”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승객은 또 있으니까 괜찮아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할머니를 꼭 안아드렸고, 그 할머니 역시 기사를 꽉 안았다.


 “이 늙은이의 마지막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할머니는 제게 말씀하셨다. 악수한 뒤, 할머니가 건강하시길 빌며 그는 택시를 몰고 길을 떠났다. 기사는 “내가 오늘 이 손님을 태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분 집 앞에서 경적 한 번에 그만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면?”이라는 말을 남긴다. 탐욕으로 가득하여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가려고만 하는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했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출40:36~37)  주님,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한 발 한 발 걷게 하소서.



배너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