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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얻든지 못하든지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정주영 회장님이시네요.” “뉘신가요?”
“여기 중구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회장님의 지금 연세는 어떻게 되셨어요?”
“남의 나이는 알아 뭐하려고 물어?” “매우 건강하게 보여서 물었지요.”
“올해 일흔넷이 되었네.”


이때 롯데호텔 로비 이곳저곳에서 비서와 경호원으로 보이는 5~6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나를 붙잡아 일으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정회장을 모시고 승강기로 갔다. 복음전도도 못하고 어떨결에 갖고 있던 전도지마저 주지 못했다.


거무스레한 얼굴에 크고 작거나 검고 옅은 색깔의 검버섯 열 개 정도의 정 회장 얼굴이 가끔 떠오르는 것은 30초 가까운 구령의 기회를 놓친 나의 잘못을 후회하고 또 천국에서 그 싱긋이 웃으시던 정주영씨를 다시 만나지 못할 때의 나의 뉘우침이랴! 올해 내 나이 84세가 되니 옛날 만나서 전도를 못한 정회장이 별세하셨다고 전해 들은 그 나이가 됐구나!


‘오늘은 구정 설 명절이니 가족들과 시간 보내며 쉬어보자’하고 비스듬히 침대에 눕는데 10여년전에 쓴 ‘기적을 믿는가’라는 제목의 책 결론 부분에서 게으르고 가련한 미국 산골 농부가 “아예 편히 놀아요(Just play'd it safe!)”라는 해학적 얘기가 떠올랐다.


무너진 오두막 앞에 누더기 옷을 입고 맨발로 초라하게 앉은 농부가 있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물 한 그릇 얻어 마시려고 가까이 가서 물었다.
“목화 재배는 어떻소?” “심지도 않았다오.”
“그러면, 다른 것은 심었소?”라고 나그네가 다시 물었다.
“아뇨, 바구미 벌레가 겁이 나서 못 심었소.”라고 농부가 다시 대답했다.


“옥수수를 심지 그랬소?” “심지 않았소. 비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두려워서이지!”
“그렇다면 감자라도 심지 그랬소?” “아니요, 감자 벌레가 극심해서….”
“정말이요? 그럼, 무엇을 심었단 말이요?”라고 나그네가 따지듯이 물었다.


“아무것도! 나는 아예 편안히 노는 것이라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언 6:6)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머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옷을 차려입고 집에서 나가서 샤인 빌이란 골프장 등산길을 따라 내려가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용인시내로 가다가 한복을 잘 차려입은 분을 길에서 만나 “선생님은 요사이 보기 드물게 명절에 어울리는 한복을 잘 차려 입으셨네요!”라는 인사를 건네니 그도 웃으며 기뻐했다.


대화가 어우러져 교회에 나가 보셨는지 물으니 그는 은퇴 장로라고 했고 나는 은퇴 목사라고 소개하고 대화를 이어갔고 그는 자기도 전도하기 위해 길가에 나왔다고 해서 나는 장로가 명절날 길에 나와 전도하는 것은 평생 처음이라 반갑고 놀라워 헤어지면서 나의 전도지를 주고 고개를 숙였다.


어려서 아빠에게 공자와 유교에 대해 배워온 나에게 양남댁이라는 여승의 꼬임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주사골 동굴법당에 올라가서 석가모니상, 나무아미타불상, 보살상 및 북두칠성단 네 곳에 각각 7회씩 모두 28번 절을 하고 양남댁 여승앞에 불자로 팔렸다.


그런데 그즈음 부인의 앙탈에 못 이겨 목 매 죽은 부친의 오촌 동서 귀신이 아버지께 붙어 자주 난동을 부리다가 졸도하는데 온갖 약이나 의사의 치료에도 치유가 안되어 끝으로 2박3일의 무당과 박수가 함께 온 악귀축사 굿놀이에도 효험이 없든 차에 윗동리 이외분 집사의 권고로 어머니가 교회 간 후 그날 교회의 목사와 집사가 심방해 주일과 수요일에 한달간 예배한 뒤 악귀가 떠나 깨끗하게 치유되므로 온 가족이 저동교회에 나가게 됐다.


문설주와 안방과 벽에 붙인 붉은색 부적을 떼고 대신 여러 곳에 붉은색 십자가 종이가 붙여졌다.
사역자 없는 부산 남문교회에 1971년 자원해 부임한 뒤, 앞뒤 모르고 열심히 사역하다 목사안수를 받았는데 목사 자격이 안되어서 강제로 주님은 서대문 교도소라는 특수기도원에 보내셨다고 깨달았다.


보리밥을 주어도 돈 안내는 하숙방이 천국으로 변해갔다. 못된 교만을 뿌리 뽑아 내려놓고 시건방진 혈기 핏대를 가라앉히니 구치소가 아니라 교도소요 낮아지고 찌그러지고 깨어지니 새롭게 말씀으로 창조되는 역사가 돈 안드는 하숙방에서 이뤄져 신구약성경 17독에 일반서적 50권을 읽고 200여명에게 전도하고 주범에게 전도해 침례를 주고 죄인들의 온갖 꼴을 다 보았고 죄악의 두려움을 체험했다.


세상 사람들은 “죄는 지은대로 공은 닦은대로”라고 말하듯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구원이다. 죄로 말미암은 심판은 믿음의 회개로 구원의 은사가 확실함을 체험했다.
8개월후 출감할 때 면회 온 아내에게 나가고 싶지 않고 요셉처럼 2년간 교도소라는 인생 수업을 마치고 나가고 싶다고 했으니, 나의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인생 교육장이었다.


부산에서 목회중 20여년 서울교회에 한미전도대회를 진행했다. 다른 교회에 초청받아 통역으로 사역해 왔지만 “목사님, 60평생 내 생애에 수십년 목회사역에서 이 세상에서 이처럼 환대를 받은 일이 없어 정말 감사합니다.” 한미전도대회로 서울교회에 강사로 오신 길크리스트(Gilchrist) 목사의 귀국 후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감명깊게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심장이 좋지 못하여 큰 소리로도 설교를 못하고 많이 걸을 수도 없어 가정 심방을 제대로 못했는데 정말 죄송했습니다. 3일간 저녁예배 설교에 이어 주일은 내 평생 처음으로 1~5부예배까지 5회나 설교를 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었지요. 또 평생 처음으로 환송예배때 교회적 선물과 여러교인들이 준 그렇게 많은 선물 받은 것은 내 평생 처음이었습니다.”라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셨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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