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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봄을 보지 못합니다

비전 묵상-43

한재욱 목사
강남비전교회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한 눈 먼 거지 소녀가 있었습니다.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적선을 했지만, 다들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그 푯말에다 몇 마디를 써주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들이 소녀에게 돈을 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가 써 넣은 문장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봄을 보지 못합니다.”


눈 먼 거지 소녀에게 다가가 문구를 고쳐준 사람은 프랑스 시인 로제 카이유였습니다.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봄을 저는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공감의 시였습니다.


구름은 바람이 움직이고, 사람은 사랑과 공감이 움직입니다. 아무리 옳은 것, 좋은 것이라도 공감 있게 표현하지 못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견해가 일치할 때보다 공감할 때 가장 따뜻함을 느낍니다. 공감은 힘이고 능력입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도 ‘공감의 시대’에서 21세기에 있어서 최고의 강자는 ‘공감의 능력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매운 고추는 마른 고추도,빻은 고추도, 파란 고추도,빨간 고추도 아니라 ‘눈에 들어간 고추’입니다. ‘눈에 들어간 고추’라고 말하는 순간,자신과 대상이 하나가 되고,그 매운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생어(生語)가 됩니다. 대상과 합일되는 가슴의 글, 공감의 설교가 최고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언어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달랐습니다. 첫째, 그 뿌리가 하늘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늘의 음성을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땅의 언어’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위트와 친화력과 공감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인문학적 언어 사용의 귀재이셨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힘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고 짙은 공감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음성을 공감 가득한 땅의 언어로!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 7: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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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