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회충약 아끼기

하늘붓 가는대로 -148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

1950년대에 초등학교에서는 회충 제거 약을 무료로 공급해 줬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변변치 못한 영양섭취에 그놈의 회충이 갉아먹으니 아이들의 얼굴은 거의 노랑 색깔이었다. 그때 학생들에게 나눠주신 알약은 대게 5개 정도였다.


저녁은 굶고 밤에 회충약 5개를 다 먹고 아침에 회충이 몇 마리가 나왔는지 담임선생님에게 필히 보고케 했다. 홍길동? 6마리요. 김춘배? 4마리요. 박석태? 10마리요. 권혁봉 2마리요. 출석부를 보고 호명하고 결과 보고를 듣는 장면이 일제말엽 잔재 군국주의 시대의 끝머리임이 틀림없다. 학생들은 약간 창피스럽게도 여겨지지만 어떤 경우에는 많이 나왔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내 경우엔 어머님의 의학 지식이 문제였다. 어머님은 회충이란 놈이 배 안에 있어서 식욕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놈이 밥 먹자고 하니 식욕이 당겨서 밥을 많이 먹게 되는데 만약 회충이 싹 죽어 없어지면 식욕감퇴가 된다는 것이 어머님의 의학지식이었다. 그러니 회충 한 마리 정도는 둬야만 식욕도 당기고 또 그놈이 씨를 퍼트려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우습고 가엾은 어머님의 의학지식에 따라 나는 5개 중 1개의 알약은 먹지 않았다.


이런 의학지식은 나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모든 어머님들의 공통된 지식이었다. 가소롭다. 어처구니없다. 율법은 회충약이었다. 율법을 완전 폐기 처분하면 도덕 생활이 엉망이 되니 대부분의 율법은 완성 그리고 폐기됐다 하더라도 한 개 정도의 율법은 살려주고 지켜 생활하는데 모범적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식이다.


경건한 성화(?)의 삶이 유지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신약복음 은혜의 시대인데도 살려놓고 지켜야 할 몇몇 율법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율법은 어떤 것이 있는가?


안식일 준수, 십일조 준수, 10계명 준수다. 이들의 준수근거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이 만큼은 예수 십자가에 실제로 피 흘리시기 전이니 즉 율법의 체계가 살아있을 때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라면 이 구절의 말씀은 없었을 것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39).


 신약시대 사람도 지킬 계명이라는데 그건 아님이 바로 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게 율법이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40) 회충약 알 5개를 다 먹지 못하고 단 1알을 남겨두라는 어머님의 의학지식은 복음 이해 부족과 율법 오해에 관련된 현실적 이야기였다.


한 개의 율법이라도 지킨다면 그게 무슨 큰 변이라도 되는가? 암, 변이되고 말고다. 성경이 말해주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2:2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롬 4:15)


어머님의 자식 사랑 동정은 백 번 이해가 되지만 현실은 불행한 것이었다. 회충이 남아있으니까. 율법의 옛 미운정 고운정 못잊어 한 개 지키자는 것이 인심 좋은 사람의 육신의 뜻이지 영의 생각인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