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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옛터에 봄이 오니

하늘붓 가는대로 -149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

황성옛터는 바벨론으로 대치되고 봄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하늘 천국으로 대치해보면 어떨까. 내가 황성옛터 유행가를 즐겨 부르는 이유는 요한계시록 18장의 멸망하는 바벨론과 19장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대비시켜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황성옛터 가사 전체를 실어본다.


제목 : 황성옛터(1930년) 
작사 : 왕평  작곡 : 전수진 노래 : 이애리수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이뤄 /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끌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 속 깊이 품고 /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있거라.


쇠락해 버린 황성옛터를 찾은 나그네의 서러움이 극에 달하지만 별 수가 없단다.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며 있노라”는 나그네였다. “이몸은 흘러서(?) 옛터야 잘 있거라”


작별하는 나그네였다. 우선 계시록 18장의 패망하는 바벨론을 보자. 도무지 바벨론은 무엇이었던가? 세상이었다. 사탄이 머리로 있었던 사람의 조직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있는 교회와 대립 대조되는 세상(cosmos)이였다.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18:2~3)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들렸다.


거기서 나오라고.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바벨론에 내린 재앙을 보라.


“그러므로 하루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요18:8~10) 번성해서 재미보던 사업가들이 애통한다.(계18:11~19)


이때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으니 보라.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요18:20) 바벨론을 중심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뒤 폭풍뒤에 고요하듯 평화 장면이 나온다.(계19:1~3) 혼인잔치 참여자들은 축복자들이었다.(계19:9)


비근한 대중 노래도 하나님은 쓸만하게 사용하시니 황선옛터라는 노래도 바벨론의 패망을 실은 가사가 아닌가 싶다. 그래 저래 핑계 대면서 세상의 흥겨움을 혼이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기도 하니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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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