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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서의 자유(3)

일과 봉사

호밥의 산책-15

정길조 목사
천안참사랑교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2:10)

목회 사역을 한 곳에서 오래 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도 이젠 하나, 둘씩 퇴직해 서로 연락하고, 왕래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며 따라다니던 손주도 이젠 많이 자라서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습니다.


늘 부교역자를 두고 사역해오던 제가 작년에는 교회 내의 행정적인 변화로 말미암아 부교역자 없이 혼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역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 잡다한 여러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즉, 예를 들어 겨울철에 교회 현관에 있는 화목 난로에 들어갈 땔감들을 구해오는 일부터 시작해서 그것들을 주중에 절단하고, 청소하는 일까지 매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차량 관리나 쓰레기 분리수거, 심지어는 주중에 소망회 차량 봉사를 하는 등. 어떤 때는 소망회 차량 봉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원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나도 할아버지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 뒤따르는 부속적인 생각이 “혹시 이렇게 은퇴할 때까지 차량 봉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스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고하며 기도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소망회 노인들 또한 담임 목사가 직접 운전하며 봉사하니 심적으로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뒤늦게 깨달아졌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반복적으로 계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숨어있는 나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이 나이 먹어서까지 이런 일들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사역을 얼마나 했는데 그리고 명색이 담임목사인데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나이를 먹고, 어느 특정한 위치에 올라가니 섬김받으려는 속성 즉, 대접받고, 인정받고, 사람 위에 군림해 남을 부리려는 바리새인과 같은 속성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봉사한다면 내 마음속에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없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일 것입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할 수 없으니까 하는, 의무적으로 마지못해서 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쭉정이 같은 섬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와 같은 병든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말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인 욥기서 2장 10절입니다. “그래, 내가 애초에 복 받을 인간이었나? 저주받을 인간이었지. 내가 이때껏 복 받고 산 것은 과분했지. 나는 복 받고 살 인간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너무 과분한 은혜를 주신 것이야. 내가 현재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만 해도 나에겐 너무 큰 은혜며, 이보다 더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니 지금의 형편이 나에겐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지.” 하는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됐습니다.


이후로 저의 마음엔 진정한 자유함이 생겼습니다. 어떠한 봉사나 섬김에도 마냥 기쁘고, 행복함이 차고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기본 바탕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승승장구하며 앞으로만 전진해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참으로 부패한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뿌리가 썩고, 곪아 있는데 그 위에 세워진 것이 아무리 화려한들 온전했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도 높은 관직에 있는 자나 낮은 곳에 있는 자나,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법 앞에서는 공평하듯이 목회를 크게 하든 작게 하든, 널리 알려진 사역자든 한 무명의 사역자든 하나님의 법 앞에서는 공정하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확하게 자신을 잘 감찰하면서 가도록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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