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어느 종교에도 없는 기독교만의 유일한 신앙입니다. 그 날이 되면 구원 받은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 부활 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심판받기 위해 부활합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 나팔소리에 잠든 성도들은 부활의 몸을 입고 그 때 살아 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된 몸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영생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활의 영광이 각각 다르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15:39~41) 육체도 사람의 육체와 짐승의 육체와 새의 육체와 물고기의 육체가 각각 생김도 다르고 수준이 다르듯이 부활의 몸도 각각 수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해와 달의 빛이 다르고 별과 별의 빛이 다르듯이 우리가 부활하면 부활의 몸이 입을 영광도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 한 다음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고전15:42~44)라고 하면서 해의 영광 달의 영광과 별과별의 영광이 다르듯이 부활의 영광도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믿고 구원 받으면 똑같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의 몸을 가지고 심는 대로 각각 거두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받지만 부활의 영광은 얼마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살았느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자기가 행한 대로 부활의 몸에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 하는 것도 목사님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각각 자신의 부활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족의 죽음도 부활을 믿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박해를 받을 때 악형을 받게 되어도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습니다(히11:35).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하여”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부활이 다 같은 것이 아니고 더 좋은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영광을 믿었고 부활의 영광은 각자 행한 대로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며 사명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 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 라.”(고후5:9) 우리도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각각 선악 간에 이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6절 므나의 비유에서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라고할 때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며 한므나를 가지고 열심히 장사해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줬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하면 충성한 만큼 다스릴 권세를 주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사하여 므나를 남긴 것이 주인을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착하고 충성한 종은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상이 큽니다. 이 땅의 부귀영화는 100년도 못 누리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히 누립니다.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을 위해 100년도 못 가는 몸과 시간과 물질을 가지고 영원한 부활의 영광을 위해 투자 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핑계만 되고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세월만 보내고 한 므나를 그대로 들고 온 종은 한 므나 마저 빼앗기고 말았 습니다(눅19:24). 신앙생활은 자신이 현세에 받을 복과 부활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충성할 수 있는 기회 주심을 감사하며 신앙생활 잘 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삶의 푯대를 천국에다 세우고 더 좋은 부활, 부활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삽시다.
유병곤 목사 / 새울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