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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음악으로 풀어보는 성경이야기(270)

거절에 대한 감사의 기도송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귀히 사용하시는 최고의 복음의 사도에 걸맞은 수많은 고난과 싸워야 했다.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유대인들의 위협과 참소로 인하여 늘 생명의 위협과 살해의 위협 속에 살았다. 여러 차례 감옥에 투옥되는 고난도 겪어야만 했다.

 

그는 이 모든 고난을 기꺼이 감당했다. 하지만 그 많은 고난들 중에서도 그의 몸에 박혀있던 육체의 가시는 정말 참기가 힘든 것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바울이 곱추였다는 설, 선천성 말더듬이였다는 설, 심한 안질이 있었다는 설, 간질이 있었다는 설 등이 있다.

 

의사 누가가 사도바울을 계속해서 동행했다는 점과, “사탄의 사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의 가시는 간질이었다는 주장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세 번이나 이 가시를 제거하기 위하여 주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는 응답을 주시고는 사도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다. 인간적으로 섭섭함을 가질 수 있는 거절이었다. 육체의 가시 없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상황을 상상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거절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요나처럼 불순종의 몽니를 부릴 수도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면서, 오히려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였다(고후12:9).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치면서, 감옥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인생들을 향하여, 건강한 육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권면했다(살전5:16).

 

기도의 거절에 대해 감사하는 성숙된 모습은 다윗에게서도 발견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초라한 성막 대신 멋진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려던 그의 기도는 일언지하에 거절되었다. 인간적인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목적에 부합하는 기도였음에도, 단번에 거절하신 하나님의 결정이 인간적인 섭섭함을 불러일으킬만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다윗은 특별히 시간을 할애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성소로 갔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은 사람의 법이니이다하는 감사의 노래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노래로 나아갔던 그의 감사의 기도의 이유는 주 여호와여 이것은 사람의 법이니이다라고 고백했던 이 한 구절로 집약할 수 있다. 해석하기가 애매한 구절이라 이해하는 각도에 따라 다소 불경스러운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결코 하나님의 법사람의 법으로 비하하려는 의도에서 드려진 기도가 아니다.

 

다윗은 비천한 일개 목동의 신분에서 파격적으로 고대근동의 최고의 왕의 신분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어찌 사연이 없었겠는가? 골리앗을 무찌르는 기적과 함께 사울왕의 딸 미갈과의 혼인과 이별, 요나단과의 우정,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무기를 휘둘렀던 사울왕의 시기심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숱한 고비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원수의 나라와도 같은 블레셋의 왕 앞에서 미치광이 연기를 했던 아찔한 순간들이 기도할 때마다, 찬양할 때마다 파노라마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사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한편의 기적과 같은 드라마였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설 때 마다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어찌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스스로 놀랍기만 했다. 조건 없이 은혜를 무작정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어떤 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편파적으로 편애하기 마련인 부모나 가족의 모습과 같이 여겨졌다.

 

단 한 점의 오점이나 죄가 없어 완벽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으로는 불안전한 자신에게 그렇게나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 없다는 것이다. 죄로 얼룩진 불완전한 필부에게 편파적으로 주어지는 사랑과 은혜는 가족과 같은 사람의 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절 자체도 당연히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다는 그의 고백이다. 그 만큼 주님을 향한 다윗의 감사의 기도는 그의 정직한 영에서 솟아난 기쁨의 노래였다.

 

노주하 목사 / 대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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