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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드러내는 자기표현

상담&치유-51

우리 모두의 삶에는 여러 모양의 산과 계곡과 평지가 이어진다. 늘 좋은 일에 기뻐하고 축하만 하며 살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고 싶고 피하고 싶어도 우리 모두가 지나가야 하는 슬픔이 존재한다. 바로 상실의 순간이다. 글에서조차 화두로 올리기 쉽지 않은 주제이다. 상실의 모양은 여러 가지다.

 

요즘처럼 바이러스로 일상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일도 있다. 연애하다 차일 때, 친구와 싸워서 절교할 때, 교회를 옮길 때, 사업을 접을 때 등등 다양하다. 인간으로서 모두가 지나가야 하는 깊은 상실도 있다. 아이가 자라 부모의 품을 떠날 때, 부모를 잃을 때, 꽃다운 젊은이가 쓰러져갈 때, 열정을 불태우던 직장에서 은퇴할 때와 같이 우리는 떠나보내고 떠나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어떤 상실은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준비시키며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의 삶에서 귀중한 무엇인가를 통째로 뜯어낸다. 축하보다는 슬픈 소식이 많은 이 특수한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상실의 순간을 대면해야 할까?


평소에도 자주 보고 수다 떨고 웃던 분의 갑작스럽고 황망한 소천의 소식을 들으며 장례를 준비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든 절차가 간소화된다. 장례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집약적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을까 싶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가 펼쳐진다. 때로는 민망하고 씁쓸하고, 때로는 가슴이 무너지고, 때로는 진한 감동을 남긴다. 우리가 움켜쥐고 쌓으려고 그렇게 애쓰던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뼛속까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는 오롯이 홀로 가는 길임을 알게 된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며 우리의 마음에 유익하다(전 7:2~3)는 말씀이 떠오른다. 먼저 떠난 사람의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가 태어날 때처럼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서로 적응해가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런데 누군가를 보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거리두기의 시대에 혼자 남겨져서 주저앉은 사람의 어깨를 안고 두드리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상실은 고스란히 각자의 몫이 된다.


엘리자베스 로스는 상실을 지나가는 데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부인(denial)의 단계로 현실에 대한 부정이다. 상실을 의미하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무 생각도 눈물도 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동생을 잃었을 때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때도 한동안 눈물이 나지 않았었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이다. 엄청난 충격을 겪을 때 우리의 마음을 본능적으로 보호하는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싶다.


둘째는 분노(anger)의 단계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왜 하필 나나 내 가족이어야 하는지 분노한다. 자신에게, 주위 사람에게, 그리고 하나님께조차 화를 낸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고 결론 낸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실의 책임을 지우고 비난하고 싶어한다. 


셋째는 타협(bargaining)의 단계이다. 상실을 늦추고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한다. 일어난 일을 별 것 아닌 것으로 합리화하기도 하고 하나님과 거래를 제시하기도 하거나 약속을 하기도 한다. 


넷째 단계에서는 깊은 우울(depression)을 경험한다. 상실감이 젖어드는 비처럼 스미고 비로소 마음을 장악하는 것이다. 허무하고 무기력하다. 그리워하며 울게 된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거의 반년을 계속 꿈속에서 통곡했던 기억이 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기 전 충분하게 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의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꽃을 더 많이 받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감사보다 후회가 더 많아서’라는 말이 생각나는 때이다. 그 슬픔과 죄책감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상실의 마지막에 가서야 우리는 그 이별을 받아들인다. 진정한 수용(acceptance)에 이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비로소 받아들이고 정리한다. 상실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에게 마음의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떠나는 사람은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보내야 했던 사람은 남겨진 삶을 살아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에게 받아들임은 또 하나의 잔치를 준비하는 순간이 된다. 진짜 집에 가는 것이다. 상상도 못 하게 좋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국은 우리의 상실이 끝이 아님을 알려준다. 장례는 남겨진 자에게는 잠시 이별의 순간이지만 분명 출발하는 자를 위한 환송의 순간이다. 상실의 마지막에는 반전이 있다. 시작이 있다.

심연희 사모
미국 RTP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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