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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탈진에 대하여-3

변상규 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

목회자가 탈진하는 이유에 관해 존 샌포드는 목회자의 일이 끝이 없다는 것, 출퇴근이 없는 직업이며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 불가하며 하던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직이라는 것을 예로 들었다. 다섯째로 목회자는 교인들이 기대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다뤄야 한다. 월요일만 되면 핸드폰을 아예 꺼두는 목회자들이 있다. 그날만큼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는 그런 목회자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월요일에 목회자가 필요한 날이 있는데 너무 목사님이 자신만 생각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거의 119대원과도 같은 것이다.


여섯째로 목회자는 매년 동일한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어딜 가나 골치 아픈 사람, 까다로운 사람, 교만한 사람 등이 있게 마련이다. 목회자는 이들을 피하거나 골라 가르칠 수 없다. 다 받아줘야 한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만 되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목회자도 있다. 다음 날 그 사람을 다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표정관리가 잘 될까 고민이 많아진다.


일곱째로 목회자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일하기 때문에 특히 에너지 소모가 많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목회자야말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원래 다른 직업보다 목회자라는 직업은 누군가를 돕고 싶어하는 긍휼의 은사가 많은 성품의 소유자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긍휼 많은 목회자도 사람이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다른 하나의 문제가 생겨난다. 삶 자체가 반복이지만 이런 반복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에 압도당할 수 있다. 거기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환경이 언제까지 갈지 올해 말에는 좀 사라질지 예측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주일 예배 후 교인들과 같이 모여 식사한 기억조차 이제는 가물거리는 시점이다.


여덟째로 목회자는 영적인 갈급함이 아닌 심리적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매번 다루게 된다. 사도 바울의 말씀으로 하자면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한 믿음(고전 3장 2절)을 키우지 못한 연약한 교인들, 유아적 성향의 교인들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의존적이고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런 성향과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언제든 조용히 교회를 떠날 사람들이다. 심리적 맷집이 약한 목회자들은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등질 때마다 심리적으로 휘청 일수밖에 없다. 아마 배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매번 현장에서 접하는 사람 중 목회자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아홉 번째로 목회자는 목회자라는 가면(Persona)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래 전 필자의 친구 한 명이 교회를 개척했다 하여 오랜만에 전화를 했는데 순간 아주 목이 쉰 목소리로 “할렐루야! 누구십니까?” 처음에는 그 친구 목소리가 아닌가 싶어서 “저, OOO 목사님 아니신가요?” “예 맞는데 누구십니까?” “어 나 변상규다.” 그러자 순간 옛날 그 친구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아주 가벼운 목소리로 “아 친구구나.” 순간 웃음이 나왔다. 방금까지 쉰 목소리던 친구가 나를 알아보고 즉시 아주 가벼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교인들에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가면이 그렇게 목소리로 드러난 것이다. 그 순간 한편으로 우습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이걸 요즘에는 “웃프다”라고 부른다. 어찌 보면 목회자는 그렇게 웃플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열 번째로 목회자는 실패로 인해 지칠 수도 있다. 샌포드는 이 요소가 가장 목회자를 지치게 만들고 탈진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갈수록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신학교에서 그렇게 찬송하고 기도하고 나왔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거기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코로나 시대 아닌가. 또한 같은 시기에 목회를 했는데 친구 목사는 크게 교회를 건축해서 안정권에 들어섰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한 현실이라고 했을 때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다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요 남편, 아빠 아닌가! 나름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하고 목회했음에도 교회 현실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할 때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평생을 준비해 온 목회가 뿌리채 뒤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능력 많고 업적이 큰 종”을 칭찬하신 게 아니라 “착하고(신실하고) 충성된 종”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는지 모른다.


이처럼 목회라는 현실은 시지푸스의 신화처럼 돌을 올리면 다시 굴러 떨어지고 다시 굴려 올리면 떨어지고를 반복하는 직업과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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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