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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남긴 예배 모습

사모행전-4
엄현숙 사모
예사랑교회

우리 교회 이름은 예사랑교회(한명국 목사)이다. 구성원은 조선족으로 평일에는 모두 직장에서 일을 한다. 그 중 사무원도 있으나 대부분은 육체노동 종사자들이다.


새벽기도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 단체 카카오톡을 운영하며 긴밀하게 기도하고 있다.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해준다.


생각만 해도 생각하기 싫은 코로나19의 시작 때, “어둔 밤 시작되리니”라는 찬송을 부르며 옛 선지자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가고 3개월이 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며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기 어려워지자 한 성도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 예배를 드릴 수 없어 내 마음이 심히 우울하네요.” 그러자 그 성도 입에서는 이런 말을 기대했었다.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어서 우리가 정상적 예배를 드려야지요.”


“코로나가 풀려야지요.”라는 대답에,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모든 것이 움츠려 있을 때, 먼저 그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이 생겨야 하는데, 쉬운 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훌륭하고 좋은 간증을 듣고 한 주간 동안 퀴즈 문제로 내어 시상금을 주기로 했다. 10만원, 5만원, 3만원, 1만원으로 시상을 매주하니, 잘 듣고 수첩에 적기도 하고 외우기까지 하여 침체되어 있는 영적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어려울수록 나눠야겠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최고의 도시락을 예쁘고 맛있게 준비하고 교회 주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나눠줬다. 축도가 끝나면 각 가정의 대표가 나와 모인 현황과 거둔 헌금을 보고하고 도시락은 사람 수대로 가져갔다.


최고의 질좋은 고기와 식재료를 써서 준비했고, 어린이의 도시락표지엔 그림도 그리고 이름도 써서 보내었을 때, 주일을 기다리면 빠짐없이 주일 성수 보고를 받고 점점 흔들림 없는 믿음에 감사드렸다.


‘이제 안심이구나!’하는 찰나에 임대해 있는 교회 건물 주인이 바뀌어 나가야할 상황에 직면했다. 교회 건물 구하기가 어렵고, 허락하는 주인은 별로 없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려 했으나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아 망연한 주일 새벽에 불현듯 움직이는 교회가 떠올랐다. 주변과 교회에 자문을 구하니 모두 반겨줬고 그 여파로 그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버스를 구입해서 그 안을 예배와 성경공부하기 좋은 구조로 개조하고, 일만 하던 성도들이 달리며 움직이며 여행하며 드리는 새로운 즐거움에 주일을 기다린다.


주차장이나 호숫가나 공원, 산, 바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예배 할 수 있는 풍요로운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성도들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매월 비싼 임대료 아껴서 선교할 수 있고, 성도들에게는 삶의 여유를 주고 환경에 제한 받지 않아 자유롭다.


한번 예배를 드릴 때는 23명, 1~2부로 나눠서 지역을 옮겨가며 예배하는데 특별한 불편함은 없었다. 흔히들 교회가 어려워졌다라는 말, 너무 힘들어졌다라는 말이 뇌리에 맴돌지 않고 이 말씀을 떠올리며 위로받았으면 한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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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