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다원성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오직 예수’라는 주장의 함정이다. 종교다원주의자가 유일신을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일 뿐이다. 만일 이들이 기독교(예수)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기독교 밖에서는 예수의 구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오직 예수를 통한 구원은 그 내면에 오직 기독교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하나의 등산로를 택했으면 그 방향에서는 오직 그 등산로를 통해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맥락과 같다. 그러나 산은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지만, 구원의 길은 한 번으로 끝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등산과 구원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종교다원주의는 여러 구원의 통로는 서로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같다는 주장 속에서 종교 간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사랑과 대화를 주장하면서 사회의 지성적인 분위기에 편승하여 세력을 확장한다.
그렇다면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는 실제로 어떤 관련성을 가질까? 종교다원주의의 다양성 존중은 결국에는 성적 취향의 다양성 존중으로 이어진다. 여러 종교의 공존과 같은 여러 성적 취향의 공존이 종교다원주의 사상 속에서 평등의 이름으로 녹아있다. 성적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장은 종교다원주의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인 국가나 사회는 자연스럽게 그 열매가 되는 동성애를 지지하고 조장하는 사회로 바뀌는 것이다. 결국, 동성애의 뿌리는 종교다원주의이며, 종교다원주의는 성경의 관점에서 우상숭배를 인정하는 사상이다. 우상숭배의 결과 중의 하나가 동성애이며, 그래서 로마서는 동성애가 근원적인 죄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떠난 죄’인 우상숭배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규정한다.
종교다원주의 모판인 종교다원화 현상
동성애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다원화 현상은 어떤 관계인가? 종교다원화 현상은 우리 시대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한 사회적 환경 중의 하나이다. 한국 사회도 오랫동안 종교다원화 사회였고, 이스라엘을 둘러싼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종교다원화 현상이 우리 시대의 산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이 시대에 발생한 독특한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처럼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종교다원주의는 종교다원화 현상 주장과 밀접한 관련을 한다. 그런데 일부 그리스도인은 평화, 사랑, 대화와 같은 어감이 좋은, 긍정의 의미를 주는 용어들에 현혹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다원주의자가 되어가면서 표면적으로는 종교다원화 현상을 말할 뿐이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는 각 종교가 나름의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며, 이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는지를 모르거나 아니면 종교다원화 현상을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틀(frame)에 빠져서 그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는 먼저 종교다원화 현상이라는 사회 구조를 설정하고, 다음에는 그 구조 속에서 모든 종교의 평등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평등성을 기초로 종교 간의 대화가 가능하며, 이러한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 사회의 평화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선전을 한다. 종교다원화 현상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모든 종교의 동등성을 주장하기 위한 프레임이다. 비록 일부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종교다원화 현상과 종교다원주의가 구별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려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만일 종교다원화 현상이 이 시대에서 발생한 특별한 현상이라면 설령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다원화 현상이 마치 이 시대에 발생한 독특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는 종교다원주의를 미화하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구약의 배경뿐 아니라 신약의 배경도 종교다원화 사회였고, 이러한 사회에서 유일하신 하나님과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됐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종교다원화 현상을 받아들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종교다원주의를 정당화하여 유포하는 수단일 뿐이다. 즉, 종교다원화 현상으로 사회를 분석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종교다원주의로 나가기 위한 몸 풀기이다. 우리 시대에 종교다원화 사회라는 해묵은 종자를 심어서 움을 트게 하려는 ‘선전’이 종교다원주의의 모판이며 동성애를 확산시키는 숙주이다.
동성애 문제, 로마서에서 답을 찾다
신약성경이 형성되던 시대의 문제와 이 시대의 문제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신약성경은 이 시대의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기를 권고하는가? 신약성경을 둘러싼 시대의 분위기는 동성애가 깊이 퍼져있던 상황이었다. 종교성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헬라-로마 사회의 풍토와 성적인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는 문란한 성 윤리의 타락은 동전의 양면성이다. 동성애의 역사는 매우 질기고 독하다. 헬라-로마의 문화에서 다신교 사상과 함께 동성애는 신화 속의 신들과 로마 황제로부터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어른들의 어린 소년에 대한 성적 취향을 비롯해 동성애는 하나의 견고한 사회 문화였다. 고린도전서에 반영되어 있듯이 아프로디테라는 사랑과 정욕의 여신을 섬기던 고린도 지역의 상황에서 성적 타락의 문제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평가이지만, 당시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삶의 방법이었다. 다문화와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삶을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성(性) 문화였다.
사도 바울은 시대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고, 각 지역의 문제를 반영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선포했다. 바울은 구원의 방법인 ‘믿음’과 ‘성령을 통한 거룩한 삶’을 강조하는데, 로마서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로마서는 종교다원주의 상황인 신약시대의 문화를 도구로 활용하면서, 그 내면에 시대의 문제를 반영하는 해법을 제시한다. 로마서의 기본 구조는 ‘죄의 근원’에 대한 해결과 구원받은 자의 생활을 조화시키는 형태이다.
김선배 교수
한국침신대 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