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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올레길

박종화 목사의 가정사역-34

지난해 제주 가을 올레길은 3주간의 순례길이었다. 또한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고 매일 한 명씩 전도하는 날로 작정한 기간이기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절반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올레길은 주로 5코스에서 12코스에 이르는 길이다. 꼭 올레길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어떤 경우 길을 잘못 들거나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로 인해 경로가 바뀌기도 한다.


올레길에 붙여진 번호도 다르듯 만나는 사람들 또한 살던 곳과 자기 만의 경험이 다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뿐만 아니라 제주도 현지 주민들도 많이 만났다. 어느 날 해변을 걷는데 다육 식물이 가득한 집 앞에 있는 노인에게 밝게 인사를 하니 들어와 집구경을 하란다.


타주는 커피를 손에 들고 과거 이야기를 듣다가 복음을 전한다. 자신의 경험을 믿는 노인에게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기 빗방울이 떨어질 땐 한 방울이지만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 바닷물이 됩니다”라고 말하자 갑자기 정색을 하고 일어선다. 인간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 빗방울인 자신이 바닷물이 되라는 의미를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접합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알려줬다.


7코스에서 만난 85세의 노인은 올레길이 좋아 17년전에 제주도로 이사 와서 올레길만 걸은 베테랑이었다. 올레길을 걷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그의 노년은 걷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가족사의 큰 아픔이 있었지만 깊이 물어볼 순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주운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걷는 것외에 이웃과 소통하는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에게는 올레길을 오래, 그리고 많이 걸은 것을 인생의 훈장처럼 여겼다.


“사람들이 올레길 확인 도장을 찍을때, 오토바이로 와서 찍는 사람도 있고, 차를 타고 와서 찍는 사람들도 있어서 요즘에는 산속이나 꼭대기에 확인 도장을 둔다우.”


“그렇게 도장은 찍어서 뭐해요?” “자랑하려고 그러지.”


도장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들보다 더 올레길을 많이 걸은 것에 인생의 의미를 둔 노인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언제까지 올레길을 걸으실 것 같아요?”

 

당황한 기색이다.

 

“언제까지?”


나이가 85세가 됐어도 올레길만을 생각했던 자신에게 느닷없이 자기 인생의 끝을 물어본 것이다. 이내 복음을 전했다. 인생 존재의 목적과 죄의 해결, 그리고 마지막 삶의 여정을 교회와 함께 해야 됨을 말씀드렸다. 이렇게 약 20명과 인생 올레길을 함께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얼마 전에는 시예산을 받았던 퀴어 영화를 막고자 기독교 영화인들이 모여 시예산을 받은 인천여성가족영화제를 여러 편 보았다. 갈등이 있어 이혼하려는 부부 사이에서 상처받는 자녀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집에 얹혀 살면서 상처 받고 자란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치유하는 과정, 세대를 거치며 줄어드는 제주 해녀의 수만큼 오염되는 자연, 타인에 의하여 유괴되어 이뤄진 역기능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 치매 노인의 일상과 그를 이해하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날 주최측과 인터뷰를 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영화의 비평, 진행에 대한 것과 영화를 통해 역기능의 가족이 치유되고 사회가 순기능이 되는데 역할을 담당해 줄 것에 대한 당부 등을 담았다. 가족과 사회가 무관하지 않다. 가족 내 역기능의 체계는 심리적인 상처를 입혀  역기능적인 행동이나 여러 가지 중독 형태로 나타나 자신 만이 아니라 가족구성원과 나아가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순기능적인 요소를 찾아 관계하려는 용기만 있으면 치유된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사람, 따뜻한 사람, 복음으로 나보다 빛을 좀 더 비추는 사람을 만나보자.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면 먼저 객관적으로 상처를 들여다보고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며, 찬양을 해보자.


또는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의 독서, 연극, 영화, 음악 등의 작품을 만나서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찾아보며 치유해보자.


인사동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고궁의 역사를 듣고, 읽고,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순교자 기념관들을 찾아 순교자들을 마음으로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상처가 작아지고, 넓은 세계로의 이해가 열릴 것이다. 


애관극장 큰 길 건너 내리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교회다. 아펜젤러 기념관 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늦게 온 나를 위해 카페에서 봉사하는 내리교회 권사님이 마감 시간을 연장해 주셨다.


미국에 선교 도움을 요청한 이수정씨의 간곡한 편지로 조선에 오게 된 아펜젤러에 의해서 내리교회가 시작됐다며 간략한 역사를 이야기해 줬다. 자신의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처음 듣는 것처럼 열심히 듣는다. 내친김에 복음을 전했다.


“왜 착한 사람이 복음을 받기 더 어려워요?”


“다른 사람보다 착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기 더 어려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해야지요.”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함에 있어서 자기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피차간에 뜨거운 마음을 느꼈고, 헤어짐에 앞서 축복기도를 해 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예명이 션유인 분은 스페인의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이 있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은 없었고, 아내가 암에 걸렸는데 깊이 공감하지는 못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여러 처지와 환경에 대하여 실망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능력은 병뿐만이 아니고,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게 되는 힘든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음이 있음을 알려 줬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했다. 나보다 먼저 서울로 떠나는 발걸음을 기도로 축복해 줬다.


“목사님 스페인 순례길 가게 되면 안내해 드리고 싶어요. 가게 되면 연락 드릴께요.”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좋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내와 설악산 흘림골에서 오색 약수로 가는 길을 걸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산은 여러 색으로 물이 들었다. 힘든 인생 여정을 이겨낸 것 같은 장엄한 바위를 뚫고 올라온 소나무를 바라보다가 길 한가운데 삐딱하게 선 나무를 마주했다.


상처가 있을 것 같은 외로운 나무를 눈을 감고 꼭 안아줬다.


어디가 아픈 사연이 있나 들어 주는데, 나무는 어느새 나의 아픈 상처를 받아 주고 있었다. 옆에는 나처럼 젊은 우리 날을 함께 걸으며 얼굴에 주름져 가는 이쁜 소녀가 있었다. 설레어 잡았던 손이 지금은 애처롭고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 아린 마음 감추려 말을 걸었다.


“여보, 길을 가다 나무를 만나면 꼭 안아 보아요.” 아내도 나무를 안아 봤다.


그날 밤 아내가 사준 30년된 헤어진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산 길을 걷듯 손을 잡았다. 오늘은 헤어진 잠옷을 버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와 인생 여정을 함께 해주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잠옷, 10년 이상 아내가 헤진 잠옷을 버리라는 말이 야속했다. 잠옷을 버리면 아내와의 추억도 잊혀질까 두려웠었다. 


세월은 지나도 부족한 나로 인해 고생을 하면서도 든든히 내 옆에 있는 아내에게 고백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종화 목사
빛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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