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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신 그 발자취를 기억한다

故 김갑수 목사 3주기 ‘은혜의 발자취’ 회고록 출간

 

현대 침례교 역사 및 목회사역 생생한 기록 담아내

 

침례신문을 통해 장기간 기록됐던 고 김갑수 목사의 은혜의 발자취’(회고 김갑수 목사, 정리 김용복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가 소천 3주기만에 회고록으로 출간됐다. 1946년에 원당교회(김용해 목사)에서 침례를 받아 침례교인의 길을 걸었던 그는 1949년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61년간 오직 교단을 생각하고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한 소명감으로 살아왔다.

 

죽림교회를 시작으로 10개의 교회를 개척 또는 담임목사로 사역했으며 1966년 포항파 교단 총무로 교단 합동을 이끌어내는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또한 수도침례신학교 제1대 학장으로 수도권 신학교 설립과 육성을 위해 헌신했으며 국제복음선교회를 창립, 미약한 일본 교회를 일으키는데 모든 열정을 쏟아냈다.

 

이 책은 크게 제1부 소명과 교회목회 사역, 2부 침례교단의 역사와 증언, 3부 침례신학교 어제와 오늘, 4부 기억과 소명의 역사 등으로 구성됐으며 고 김갑수 목사의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 김 목사를 회상하는 시와 글, 그리고 편지, 연보와 한국 침례교 약사 대조, 몇 편의 설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목할만한 내용은 고 김 목사가 생전에 목회사역을 감당했던 내용부터 믿음을 지키기 어려웠던 일제시대, 교단 재건시기와 해방후 첫 강경총회, 대한기독교회의 분립, 남침례교와의 교단 제휴, 교단 총무 시절, 교단 합동 총회, 신학대학 인가, 침례교회의 이상과 주장, 수도침례신학교의 학교법인 설립, 4년제 대학학력 인정,

 

세계침례교대회, 한일교류선교회 활동, 투병생활, 원로목사회 활동 등 교단의 굵직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과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술한 내용이 눈에 띄고 있다. 특히 해방이후 침례교회의 재건과 분열, 합동, 신학교 설립과 통폐합, 교단 총회 풍토 등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까지 가감없이 정리하고 이를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회고록을 준비했던 침신대 김용복 교수는 오직 한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하셨던 부친의 삶이 낡은 원고와 사진, 각종 서류들 속에 남아 있는 것을 정리하면서 한국 침례교회가 걸어왔던 발자취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었다면서 평소 부친의 온유한 미소와 검소한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교단적으로는 침례교회의 앞날의 비전을 발견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평소 기록을 남기며 다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던 고 김갑수 목사는 회고록 머리글에도 주님께 받은 은혜를 회고하는 글을 남기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목회와 한국 침례교회의 역사를 자녀들과 후손들, 후배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열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 김갑수 목사는 한국 침례교회의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한국 침례교회는 견디기 어려운 박해가 올 때마다 주님이 베푸신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며 승리의 개가를 불렀다. 이런 사실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기쁘고 감회가 벅찬 일이다. 때로 우리가 걸어온 길은 정도에 빗나가는 듯 보일 때도 있었고, 그로 인해 서로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리의 신념은 그 길이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신 길이었다는 믿음이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평생 목양일념과 교단 사랑에 몸 바쳤던 고 김갑수 목사, 아직도 그의 메시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마음 깊은 조언을 새겨준다.

 

생활 속에서 터득하여 세운 나의 인생철학은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둘째, 한 푼이라도 속이지 말라. 셋째, 한 번이라도 성내지 말라. 넷째, 한 번이라도 불평하지 말라. 다섯째, 한 번이라도 원망하지 말라. 이 다섯 가지의 원칙을 어기는 것은 마귀가 틈을 타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익히 깨달은 바다. 이 다섯 가지를 잘 준수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고 은혜롭게 지키는 비결이다.”

 

아버지께 드리는 딸의 마지막 편지

 

아버지!

50여 년을 아버지와 함께 이 땅에서 살아왔지만,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아버지께 편지를 쓴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야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띄워 보냅니다.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얼마 동안을 회상해 보면, 참 신기하고 오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황급히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도 다시 거뜬하게 일어나 며칠 뒤 퇴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좋아하셨던 넷째 작은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셨고, 마침 설날이 되어 찾아온 가족을 모두 만나셨습니다.

교회에 가서는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모든 교인들에게 적지만 세배돈을 일일이 나누어주셨고, 딸과 며느리에게도 세배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돈의 전부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한 푼도 남김없이 다 나누고 가셨던 겁니다. 사실 교회재정이 어렵다고 사례비를 사양하시고 자식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주택연금으로 생활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참으로 아프고 부끄러웠습니다.

명절을 쇠고 자식들이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 그 즈음 가장 추웠던 날에, 의사가 외출은 절대엄금이라고 경고했는데도, 아버지는 무리하게 지하철을 타고 강남터미널 근처 어느 식당에서 교회 집사님을 만나셨습니다. 그건 이 땅에서 해결해야 할 마지막 남은 문제를 정리하기 위함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 집사님에게 교회문제를 정리하라고 부탁하신 뒤, 아버지는 식사도 못하시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로 앉아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평소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꿈이 그렇게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어쩜 그렇게 깨끗하게 남김없이 소명과 헌신의 삶을 정리하고 가셨습니까! 어머니나 자식들에게 힘들까봐 그렇게 갑자기 가셨습니까? 그건 평소 아버지의 성품다운 것이었습니다. 병간호라도 오래 해드렸다면 이렇게 서운하고 아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이 땅에서 오래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시간을 허락하셨고, 아버지는 이 땅에 남아있는 모든 문제를 정리하고 가실 수 있었던 겁니다.

 

아버지!

어려서는 돈이 없는 아버지여서 아쉬웠지만, 지금은 청렴하게 사셨던 아버지였기에, 그런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벌써 추모 3주기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 동안 아버지가 남기셨던 회고록을 펴냅니다. 어려운 시절, 맏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소지품과 사진 등을 보고 만지며 자란 저로서는 이번 회고록이 마치 제 자신의 이야기요, 그 자체가 제 삶의 일부인 것만 같습니다. 회고록이 발간되면 온 가족 친지가 모여서 아버지이야기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 모둔 아버지처럼 온유함과 겸손한 자세로 살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3210일 설날 아침에

맏딸 은자 올림

 

고 김갑수 목사의 회고록 은혜의 발자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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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에도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충남 강경 옥녀봉에서 찬송과 기도의 부르짖음이 울려 퍼졌다. 114차 총회(총회장 이욥 목사)는 지난 5월 10일 강경 옥녀봉 ㄱ자 복원교회에서 신사참배거부 교단기념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81년 전, 1944년 5월 10일 일제총독부 함흥재판소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교단이 폐쇄된 날을 기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뜻을 되새기는 행사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사회로 평신도부장 김태욱 목사(두란노)가 대표로 기도했다. 이어 전국여성선교연합회 글로리아합창단이 찬양하고 총회 여성부장 하숙현 권사(범일)가 성경을 봉독한 뒤, 이욥 총회장이 “하나님 말씀 순종에 목숨 건 사람들”(렘 38:5~6)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욥 총회장은 설교를 통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이자 선지자로 무너지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보며 애통한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백성들의 불순종과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다”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고난과 수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