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교회가 4월 5일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킨다. 가톨릭교회나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자들이 구약의 율법이나 의식주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형식적인 부활 기념을 지내서는 안 된다. 크고 작은 행사에 치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온 세상 사람들의 사망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도 헛것이고 신앙도 헛것이라고 선포한다. 부활이 복음의 핵심인 동시에 신앙의 핵심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얼마나 부활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의 신앙에서 얼마나 부활을 찾아볼 수 있는가? 또한 교회에서 부활절 외에도 부활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선포되고 있으며, 부활이 강조되고 있는가? 만일 부활절에만 연례적으로 ‘부활’을 언급하고 행사를 치른다면, 이는 교회가 복음과 신앙의 핵심을 모르거나 놓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복음 메시지를 들어보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구원자(Savior) 그리스도는 넘쳐나지만, 다시 부활하신 주(Lord) 그리스도는 찾아보기가 어
금년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이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온 인류를 위한 고통이었음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새로운 신앙의 결심을 하게 된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나태했던 신앙의 모습을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다. 어버이날이 되어서야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 겸연쩍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요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좋은 말이 없다. 말속에 ‘화’가 섞여 있고 ‘분’이 섞여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분을 내더라도 성도들은 그것을 순화시켜서 어찌되었든 세상을 밝게 만들어야 하는데 성도들 역시 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성도들이 어떤 가치와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려면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대로 휩쓸리어 가다가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가치는 생명이다. 또 하나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는 부활
교회의 사명은 영혼구원이 최우선이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기주의와 독선에 함몰되어 복음 전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나아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비현실적인 사역에만 치중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비롯해,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들의 독선과 이기주의, 명예 때문에 분열되는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 하나는 요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복”이라는 단어다. 그것이 세속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아마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복이 빠진 설교가 드물고, 복이 빠진 기도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예수를 믿는 것이 복인지,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인지 주객이 바뀌는 경우를 흔히 본다. 기독교 진리를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게 된 그 자체가 가장 크고 중요한 복인데, 그것을 경시하고 더 큰 복을 받겠다고 엉뚱한 일에 분주한 사람들이 많다. 이는 진리의 우물가에 앉아서 목이 마르다고 엉뚱한 포도주를 찾는 격이다. 마치 우물가의 여인처럼 영원한 생
지난 3월 5일은 총회 건축헌금 운동을 전국교회에 알리고 총회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발대 예배를 드렸다. 총회 부채에 관심을 가진 목회자와 성도들이 참석, 현재 총회 부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상환 계획과 앞으로 4월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부 원금 상황 계획에 대해 듣고 최대한 전국교회의 힘을 모으기로 했다.총회는 제100차 총회를 통해, 여의도 총회 건축을 진행했고 제102차 총회에서 건축을 완결 짓고 현재 오류동 총회 기관이 모두 이전한 상태에서 여의도 총회 시대를 보내고 있다.그동안의 여러 우여곡절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건축 초기부터 교단이 부담하기 어려운 부채를 안고 건축을 진행했던 일과 총회 빌딩에 입주할 예정이었던 모 기업의 문제로 급하게 임대사업을 준비했던 부분 등 건축과정과 임대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현재 약 90%이상의 임대율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얻고 있는 시점에서 최대한 조속한 시일 내에 총회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고 싶다.현재 총회 건축헌금으로 약정하고 들어온 금액은 약 3천 500만원이며 앞으로 오는 4월까지 약 1개월이 넘는 기간에 모금해야 할
한국교회는 현재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영적인 혼돈과 종교다원주의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진리의 왜곡과 빈곤이라 할 것이다. 모름지기 교회는 진리의 공급과 동력이 없어지면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도 세속화와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조직과는 전혀 다른 원칙과 생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은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공급으로만 활기를 얻게 되는 신령한 유기체다. 다른 표현으로 많은 돈, 사람의 수, 인간 지도자의 지도력, 조직력 등도 교회의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진리의 순수함과 공급이 사라지면, 교회는 반드시 저급하고 누추한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며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의 진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그릇된 성경 해석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 신학과 신앙때문이다. 가르치는 중요한 개념이 잘못 해석되면서 성도의 신앙생활에 엄청난 혼돈을 가져온 것이다. 교회의 교회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는 이른바 “하나님의 일”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도 애국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라 없는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유베트남이 공산화가 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작은 배를 타고 탈출하던 것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왜 나라를 버리고 떠나야만 했었는지 구차한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대한민국은 2015년 3월 1일은 삼일절을 96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삼일운동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던 시대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일어난 독립운동이었고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국교회는 해마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예배와 뜻 깊은 행사를 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삼일운동에 참가했던 많은 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삼일절의 정신은 후대에 길이 계승되어야 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려고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 삼일운동의 기독교정신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즉 엑서더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삼일운동을 전개한 가장 큰 이유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한 데 있다. 당시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고 국권을 찬탈한 일제는 우리 민족을 매우 가혹
최근 교회에서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실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대한 윤리강요가 꼭 필요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앙인들에게 교회생활만 가르쳤지 사회생활에서 빛이 되고 소금돼야 함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믿음만 강조했던 교회의 반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저서 “신학 대전”에서 자살에 반대해야 하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자살이란 각자가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공격이고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하나님의 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을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자살을 죄악시했던 경향은 중세를 지나 19세기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했다. 자살이 질병으로 생각되기 시작한 것은 19세에 이르러서다. “자살에 대한 목회 지침서”를 발간하여 교회마다 영적인 훈련에 교재로 사용하고 있음은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셀 그룹을 통해 지역, 혹은 이웃 같은 교우들의 소통을 이루고 있지만, 한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바른 신앙 교육을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시켜야 한다. 때 늦은 감은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교회의 생명은 복음적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복음이 왜곡되고 진리가 혼돈되어 참 진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특히 교회는 복음주의의 현 위치와 평가, 특징과 매력, 문제점, 나아갈 방향 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는 매우 역동적인 신앙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음 세기 동안에도 꾸준하게 성장해 나갈 전망이다.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500곳의 개교회를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그중 89%가 복음주의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주의의 세계적인 부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지역은 거의 없을 정도다. 심지어 로마 카톨릭교회의 중심지로 여겨져 온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2025년이 되면 다양한 형태의 복음주의가 수적으로 지배적인 세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독교의 미래는 복음주의 운동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지성과 감성을 조화 시키면서 복음주의 운동에 기대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복음주의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운동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신중한 반성과 함께 시작돼야만 한다. 복음주의는 서유럽에 있는 현대 교회 내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침례교회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정신에 따라 생활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또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제 자주성을 지닌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연합하여 구성된 기독교한국침례회는 성령의 교통하심 안에 서로 협력하면서 천국 확장 사업에 거룩한 교제를 이루려는 공통 임무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이 규약을 제정하는 바이다.”침례교 총회 규약 제1장 총칙의 내용이다. 우리 교단이 세워진 것은 바로 신약성경에 입각해 서로 협력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연합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총회를 비롯해, 기관, 지방회, 개교회가 상하 조직이 아닌 원탁회의처럼 모두가 동등한 위치와 조건 속에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교단 상황과 현실은 이런 우리의 연합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침례병원은 지속적인 적자 경영에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차일 피일 미루다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러 교단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이 지난 제103차 총회에 알려지면서 적잖은 교회들이 환자들을 보내고 후원헌금을
지금 지구촌 각처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들이 무지비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나라와 종교를 가리지 않고 자살테러 혹은 치고 빠지는 크고 작은 비인간적인 살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한국에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수일 전에도 뉴스보도에서 한국의 어린 청년이 터키 여행도중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그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합류했을 것이라는 추측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슬람이 몰려오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실체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선교전문가들은 한국이 부지불식간에 무슬림의 주 활동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기독교가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그 빈자리를 이슬람교가 채워가고 있음을 예로 들면서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요즘 한국에 대한 이슬람의 전방위적인 활동이 대단하다. 지난해 5월 서울대에 다니고 있는 중동지역에서 온 유학생들은 서울대 안에 이슬람선교회를 결성하면서 “서울대를 한국의 이슬람 근거지로 삼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이슬람 포교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슬람국가들이 한국을 “아시아 이슬람화”의 전진기지로 삼고 있다는 분
새해 벽두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테러로 인해 잔인한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살인하는 행위는 현대를 살아가는 문명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올 해 초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중 테러범이 부상당한 경관을 조준 사격하는 장면을 본 전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때 사살된 경관은 아메드 메라베트라는 아랍계 무슬림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계는 다시 충격을 받고 있다. 반 무슬림을 겨냥한 테러가 결국 무슬림이 무슬림을 쏘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무슬림의 희생으로 이번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세계의 증오를 폭력에 대한 증오로 승화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프랑스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가 발생한 직후, 프랑스에서 복종이란 신간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22년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권이 탄생해 모든 교직원이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하고, 미니스커트 같은 옷차림이 여성에게 제한되는 시대가 온다는 내용이다. 이슬람 정책으로 인해 여성이 출산, 육아에만 몰두하고 취업을 하지 않아 실업률이 떨어지는 상황도 담겼다.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2015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미래가 참 궁금하다. 지난 한해 나라와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10~30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미래세대에게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물었더니, “예수”는 좋지만 “한국교회”는 싫어하고, 교회는 무엇보다 “자유롭고 편안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미래 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단어는 예수(57.7%),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기독교인(58.2%)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예수님은 선호하지만, 종교인으로서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미래 세대들이 선호하는 단어를 묻는 질문에 예수에 이어 성경(19.7%), 교회(12.6%), 목사(5.2%), 기독교인(4.8%) 순으로 답했으며, 싫어하는 단어는 기독교인에 이어 목사(14.5%), 교회(10.2%), 성경(10.1%), 예수(7.0%) 순이었다고 한다.한국교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과 성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이러한 결과는 미래 세대들이 현재 교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구제 봉사활동을 잘한다(23.0%),
이 맘때쯤 누구나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이다. 2014년, 우리에게 가장 큰 기억으로 남는 일이 있다면 단연코 ‘세월호 사건’이지 않나 싶다. 여전히 9명의 실종자와 이 사건의 원인인 세월호는 아직도 차디찬 바다에 잠겨 있다. 묻혀 있는 세월과 시간 속에서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느낀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봉사단은 아직도 팽목항 부근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돌보며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아니 이젠 더 이상 희망과 기쁨을 표현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교단은 세월호사건에 연루된 우리와 유사한 교단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단체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같은 부류 아니냐”, “너희도 유OO측이냐” 순수하고 복음적인 교단·교회가 한국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이들과 동격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교단은 과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와 대응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와 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알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외 여론에 확실히 알리고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줘
연말을 맞아 여기저기서 흥청거리며 사회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아쉬움도 있겠지만 의미 없이 살아왔다면, 반성함과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를 삼아야 할 것이다.특별히 12월은 한해의 마지막 달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있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이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좋은 소식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연말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예수의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낮은 데로 임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예수가 가는 곳에는 항상 세리, 창녀 등 소위 죄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따랐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머무른 사건을 잘 알고 있다. 삭개오는 세리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세리장이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 중 하나가 세리였는데,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으니 얼마나 사람들이 미워했겠는가?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많았겠는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능하면 세리와 죄인들 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땅에서 가난하고 죄인이라고 불리는 자들 곁으로 가야 한다. 그들 곁으로 또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결코 그
지난 1년 동안의 침례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변화와 가능성을 봤는지 자문해 볼 시간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숨 가쁘게 걸어온 걸음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걸음이었는지 아니면 의미 없는 걸음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물론 모두가 의미 있고 보람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열정과 희생 다해 교회를 위해, 교단과 교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각자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반성과 자책의 되돌아봄이 아닌 더 나아지기 위한 성숙함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침례교회가 회자된 대표적인 일이 있다면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와 교단명칭이 유사해 혼돈을 줬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였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으로 뇌리에 잊혀 질 수 없는 일이 됐다.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었던, 사건은 이제 각자 마음에 묻어두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언제까지 아픈 상처만 드러내면서 살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새 힘을 줘야 할 것이다. 당연히 교회들이 앞장서서 소외된 이웃들을 돌봐야 한다. 아픔을 어루만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주며 믿음과 신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