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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역사: 바흐 마태 수난곡

 

요한 세바스천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하면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음악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작곡가이다.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던 바흐는 교회음악의 대가이며 음악을 통한 신앙과 신학을 표현한 인물로 기독교 예술과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삶 전체가 음악과 예배였다고 할 만큼 부지런한 바흐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이것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를 허비하지 않고자 하는 믿음에서 출발한 성실함이었다. 그러나 생전의 바흐는 내면을 채우는 일에는 뛰어났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을 포장하고 나타내는 일에는 관심도 없었고 재주도 없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그의 업적에 비해 유명세는 그리 타지 않았던 작곡가였고 그 결과로 사후에는 점점 그의 음악이 잊혀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흐 사후 약 80년 동안 그의 교회음악은 그리 많이 연주되지 않았고 전문 음악가들 외에 일반인들에게 바흐와 그의 음악은 생소해 지기 시작했다.

 

바흐는 b단조 미사를 비롯한 많은 교회칸타타 등 다양한 교회음악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을 음악으로 표현한 수난곡은 바흐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만큼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사복음서마다의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네 개의 수난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마태수난곡이다.

 

전체 연주시간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대곡이라 연주하기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깊은 신앙의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는 귀한 음악이다. 이런 귀한 음악이 우리에게 전해지는데 기여한 작곡가가 19세기 교회음악의 대가인 멘델스존(Jo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이다.

 

오랜 시간 사장되어 있던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찾아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멘델스존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바흐의 음악을 지금처럼 많이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발견하게 된 경위가 흥미롭다.

 

우연히 들른 어느 정육점에서 구입한 고기를 싸준 포장지가 바흐의 마태수난곡 악보의 일부인 것을 발견한 멘델스존은 바흐의 수난곡 악보를 찾게 되고 많은 노력 끝에 1829년 베를린 무대에서 연주했다. 바흐의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고 잠자고 있었던 명곡이 깨어나 세상과 다시 만난 것이다.

 

매우 다행스러운 우연이라고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연이란 없다는 신앙의 눈으로 보면 멘델스존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버려져서 허드레 포장지로 사용되었던 악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면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탁월한 작곡가였고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멘델스존의 눈에 뜨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멘델스존이 그저 가난한 음악가였다면 대곡을 연주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그에게는 당시의 작곡가들로는 드물게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고 인맥이 넓은 작곡가였기에 이 큰 사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을 바라보는 마태의 심정과 관점이 드러나 있는 마태 수난곡을 전달하기 위해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더 은혜가 되는 성가곡, 마태 수난곡은 전체가 다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중에서 아리아 불쌍히 여기소서는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담은 곡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을 회개하는 애통한 심정을 노래한 이 곡은 마태수난곡의 백미라 할 수 있다.

 

,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이 눈물을 보아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앞에서 애통히 우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주여, 보시옵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이 음악을 듣노라면 베드로의 이 고백이 주님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고백이며 기도가 된다. 올해 부활절을 준비하며 바흐의 음악과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바라보며 그 분의 은혜를 구하며 감사하는 것도 축복이며 은혜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