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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건 선교사와 함께 하는 나가사키 땅 밟기 (2)

일본의 선교 역사에 대해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AD 451년 로마 감독이었던 레오 1세는 기독교 공동체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교황권의 강화는 로만 가톨릭에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오게 되어 점차 로만 가톨릭의 세속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정치 면에서 세속 군주와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으며, 성상 숭배의 허용으로 동?서방 교회의 분열을 가져오게 됐다.

 

교황의 아비뇽 유수로 인해 절대시되던 로만 가톨릭의 권위는 실추됐고, 교황제도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에 따른 로만 가톨릭의 타락상으로 인하여 수도원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토양이 조성됐다.

또한 존 위클리프를 비롯한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을 통해 성경의 권위가 강조되고 교황과 로만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종교 개혁운동의 분위기가 확산됐다.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의 불길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이러한 종교개혁운동에 영향을 받아 로만 가톨릭 내부에서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교회 내부의 개혁운동의 하나로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카회를 비롯한 탁발수도회에 의한 해외선교가 활발하게 추진되었는데, 특히 1534년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를 중심으로 예수회가 조직되어 새롭게 발견된 항로를 따라 세계선교에 헌신하게 됐다.

 

로만 가톨릭 내부의 개혁운동의 영향으로 시작된 세계선교의 열망 속에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는 예수회의 창립멤버로서 포르투갈의 동방항로를 따라 인도와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동양선교에 헌신하던 중, 1547년 중국무역선에 승선하여 말라카를 출발한 뒤 2년만인 1549815일 일본 큐슈 남부의 사츠마(카고시마)에 상륙해 일본선교에 헌신했다.

 

이 당시 유럽의 종교개혁운동은 로만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싸움이 아니라 신실한 크리스천과 타락한 크리스천의 투쟁이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신실한 크리스천이 기독교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타락한 로만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에 대해 벌인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운동은 로만 가톨릭의 고위성직자들의 타락에 반대하는 수많은 성직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로만 가톨릭 고위성직자들의 타락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그들이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마틴 루터를 파문에 처함에 따라 교회 밖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게 됨으로써 촉발됐다.

 

그러나 이 당시 로만 가톨릭 내부에서도 하위 성직자들과 수도원을 중심으로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것이 교회 내부의 개혁운동으로 구체화됐다. 교회 밖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운동과 축을 같이해 수도원을 중심으로 내부적인 교회 개혁운동이 시작되었고 결국 로만 가톨릭 내부의 교회개혁운동은 세계선교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러한 교회 내부의 개혁운동은 타락한 로만 가톨릭 고위성직자들의 타락으로부터 돌이켜 초대교회의 순교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순교의 신앙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단한 신실한 선교사들을 통해 일본에서 실현된 것이다.

 

이 당시 포르투갈을 떠나 2년여의 험한 항해를 거쳐 일본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이미 없었다. 또한 엄격한 박해의 시대에 일본에 잠입한 선교사들은 이미 순교의 각오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전하고 있는 복음을 위해 당당히 순교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은 일본 신자들에게 커다란 신앙의 확신을 심어 주었으며 에도 막부의 잔인한 260여 년의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한 원동력이 됐다.

 

460년 전에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의 복음이 비록 로만 가톨릭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로만 가톨릭 내부에서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려는 움직임, 즉 교회 내부의 개혁운동이 지구의 절반을 돌아 일본에서 실천된 것이다.

 

이 당시의 선교사들은 무역을 통한 선교의 힘과 순교의 신앙을 모두 소유했다. 이러한 선교의 두 가지 요소를 충족한 이들은 선교 개시 후 불과 60여년만에 일본 전 인구의 5%에 달하는 70여만명의 신자를 전도하는 놀라운 선교의 부흥시대를 경험했다.

 

이는 초기 선교사들의 순교의 정신과 교역을 통한 선교전략의 결과였다. 그러나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한 이후 도쿠카와 막부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쇄국정책을 실시하면서 철저한 기독교 탄압을 시작했다. 이후 260여 년에 걸쳐 잔인한 기독교 말살정책이 계속됐고 이 과정에서 20여만명에 달하는 크리스천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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